기후정의란 무엇인가

  • 김지현 기자
  • 2023.05.14 00:05
(사진 참여연대 공식홈페이지)/뉴스펭귄
(사진 참여연대 공식홈페이지)/뉴스펭귄

[뉴스펭귄 김지현 기자] 언젠부턴가 기후활동가들은 ‘환경보호’가 아닌 ‘기후정의’라는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기후정의란 무엇일까? 우리는 왜 기후위기를 정의라는 가치와 연결해야 할까? 기후정의의 의미와 배경, 기후정의 운동의 흐름을 소개한다. 

1. 기후문제는 사회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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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정의는 기후위기가 환경문제일 뿐만 아니라 사회문제이기도 하다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단지 인간 전체가 기후위기를 초래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인간 안에서도 누가 어떤 집단에 속하는지에 따라서 책임과 피해가 다르다는 점에 주목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소득 국가는 200여 년 전부터 산업화로 대량의 온실가스를 배출했기 때문에 지구가열화에 큰 책임이 있지만, 지구가열화에 따른 기후변화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건 저소득 국가다.

국제 연구기관 아워월드인데이터(Our World in Data)가 1750년부터 2021년까지 전 세계 각국의 이산화탄소 누적배출량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산화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한 국가는 미국이다. 배출량 4219억684만톤으로 전 세계 누적배출량의 29.24%를 차지했다. 유럽연합이 2위(20.32%), 중국이 3위(17.28%)를 차지했다.

대륙별로는 고소득 국가가 모여 있는 유럽(30.93%)과 북아메리카(27.88%)의 누적배출량이 전 세계 누적배출량의 58.81%에 이른다. 반면 아프리카의 누적배출량은 2.83%에 불과하다.

1750년부터 2021년까지 국가별 이산화탄소 누적배출량. 미국, 유럽연합, 중국 순으로 비중이 높다. (그래픽 Our World in Data 공식홈페이지)/뉴스펭귄
1750년부터 2021년까지 국가별 이산화탄소 누적배출량. 미국, 유럽연합, 중국 순으로 비중이 높다. (그래픽 Our World in Data 공식홈페이지)/뉴스펭귄

그러나 지구가열화에 책임이 거의 없는 저소득 국가가 기후위기로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이하 IPCC)는 2022년 2월 발표한 ‘제6차 평가보고서 제2 실무그룹 보고서’에서 “소득 수준이 낮고 기반 시설이 부족한 지역일수록 기후위기에 취약하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기후위기 취약지로는 서부·중부·동부 아프리카, 남아시아, 중남미 등을 꼽았다. 2010년부터 2020년까지 이 지역에서 홍수, 가뭄, 폭풍 등으로 숨진 사람은 타지역보다 15배 더 많았다.

국제개발센터(CGD)에서 작성한 기후위기 취약 지도. 색이 진할수록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가 심각한 곳이다. 기후위기 취약지는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지역에 몰려있다. (그래픽 Center for Global Development 공식홈페이지)/뉴스펭귄
국제개발센터(CGD)에서 작성한 기후위기 취약 지도. 색이 진할수록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가 심각한 곳이다. 기후위기 취약지는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지역에 몰려있다. (그래픽 Center for Global Development 공식홈페이지)/뉴스펭귄

기후정의를 주장하는 이들은 이처럼 기후위기에 책임이 있는 사람과 기후위기로 피해를 보는 사람이 따로 있는 부정의한 상황에 주목한다. 그리고 정의를 위해 기후위기에 책임이 큰 이들이 기후위기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해야 마땅하며, 지속가능한 사회경제체제로 전환하는 과정 역시 정의로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지난 2022년 이집트에서 열린 제27차 유엔 기후변화당사국총회(이하 COP27)에서 저소득 국가의 정상들은 고소득 국가가 저소득 국가에 자금을 빌려주는 방식으로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기금을 마련해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기후위기에 큰 책임이 있는 고소득 국가가 기후위기로 고통받는 저소득 국가에 피해를 보상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2. 불평등한 기후위기

기후위기는 평등하지 않다. 기후위기에 따른 피해는 사회적 불평등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다음은 소득과 인종에 따라 기후위기에 따른 책임과 피해가 어떻게 다른지 보여주는 사례다.

고소득 국가와 저소득 국가처럼,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기후위기에 대한 책임과 피해도 다르다. 국제 환경단체 옥스팜(Oxfam)과 스톡홀름 환경연구소(SEI)가 2020년 9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1%(6300만명)가 소비활동으로 배출한 이산화탄소 양은 전 세계 배출량 15%를 차지한다.

상위 10%(6억3000만 명)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전 세계 배출량 52%를 차지했다. 소수 부자가 배출한 이산화탄소 양이 전 세계 배출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것이다.

반면, 하위 50%(31억 명)가 소비활동으로 배출한 이산화탄소 양은 전 세계 배출량 7%에 불과하다.

이는 1990년부터 2015년까지 소득계층별로 소비활동과 생활습관 등을 통해 배출한 이산화탄소 양을 비교한 결과다.

1990년부터 2015년까지 소득별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비교한 그래프. (그래픽 Oxfam 공식홈페이지)/뉴스펭귄
1990년부터 2015년까지 소득별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비교한 그래프. (그래픽 Oxfam 공식홈페이지)/뉴스펭귄

인종에 따라 초미세먼지 등 환경오염에 노출되는 정도가 다르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2019년 3월 미국국립과학원(PNA)은 미국에서 인종별로 초미세먼지 유발 책임과 피해를 비교할 때, 백인은 초미세먼지에 노출되는 정도가 17% 낮지만, 흑인과 히스패닉은 각각 56%, 63% 더 높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이는 인종별로 소비, 운전, 생활습관 등을 분석해 ‘초미세먼지 발생 책임’과 ‘초미세먼지로 입는 피해’ 정도를 비교한 결과다.

연구에 따르면 백인은 소비 규모가 커 타인종 대비 초미세먼지를 더 많이 만든다. 반면 흑인과 히스패닉은 소비 규모가 작아 초미세먼지에 대한 책임은 적지만 대기오염이 심한 지역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아 초미세먼지에 더 많이 노출된다.

흑인과 히스패닉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의 대기오염이 심한 것은 단순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인종차별의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버클리캠퍼스 연구진은 2022년 3월 발표한 논문을 통해 80년 전 미국 연방정부가 인종차별적 기준으로 낮은 주거지 등급을 매긴 지역의 현재 대기오염 농도가 다른 지역에 비해 2배 높다고 밝혔다.

연구진에 따르면 1930년대에 연방정부는 부동산 투자 위험 정도를 산정하기 위해 주거지 등급을 매기면서, 흑인과 저소득층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 가장 낮은 등급을 매겼다. 이로 인해 해당 지역의 땅값이 저렴해지면서 대기오염원인 중공업 단지와 고속도로 등이 집중됐고, 현재 해당 지역의 대기오염 정도는 위험 수준으로 높아졌다.

80년 전 인종차별 정책이 초래한 대기오염 불평등. 왼쪽은 미 연방정부가 매긴 부동산 등급을 지역별로 보여준다. 유색인종이 많은 지역은 가장 낮은 D등급(빨간색)으로 분류됐다. 오른쪽은 2010년 이산화질소 농도를 각 등급별로 보여준다. A급과 D등급 사이의 이산화질소 농도 차이는 두 배에 이른다. (그래픽 환경과학기술회보 논문 DOI : 10.1021/acs.estlett.1c01012)/뉴스펭귄
80년 전 인종차별 정책이 초래한 대기오염 불평등. 왼쪽은 미 연방정부가 매긴 부동산 등급을 지역별로 보여준다. 유색인종이 많은 지역은 가장 낮은 D등급(빨간색)으로 분류됐다. 오른쪽은 2010년 이산화질소 농도를 각 등급별로 보여준다. A급과 D등급 사이의 이산화질소 농도 차이는 두 배에 이른다. (그래픽 환경과학기술회보 논문 DOI : 10.1021/acs.estlett.1c01012)/뉴스펭귄

이 외에도 장애인인지 비장애인인지, 여성인지 남성인지, 기후변화에 취약한 직업군이나 산업 전환의 대상이 되는 직업군에 종사하는지 등에 따라 기후위기에 대한 책임과 피해가 다르다는 걸 보여주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3. 기후정의운동

이런 기후불평등에 문제를 제기하며 기후정의를 외치는 운동은 2000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COP6에서 시작됐다. 원주민환경네트워크(INE)와 지구의벗(FOE) 등 환경단체 활동가 500여 명은 COP에 참석할 수 없는 사회경제적 소수자를 대변하기 위해 ‘제1차 기후정의 정상회의’를 개최했다.

이 국제운동은 2007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COP13에서 ‘기후정의네트워크(CJN: Climate Justice Now)’로 조직화됐다. 기후정의네트워크는 기후위기가 인권 문제, 민주주의 문제, 자본주의 문제라고 보고 기후불평등을 만든 체제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이들은 기후위기 대응을 논의하는 데 있어서 정치인과 기업가뿐만 아니라 농민, 원주민, 이주민, 노동자 등 사회경제적 소수자의 목소리가 커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한국에서 기후정의운동은 2011년 5월 환경·노동·시민단체·정당 20곳이 모여 ‘기후정의연대’를 출범시키면서 시작됐다. 이들은 기후위기가 단지 환경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퇴보와 경제적 불평등과 같은 사회문제라며, 정의로운 기후위기 대응을 주장해왔다.

특히 2019년부터 기후정의를 위한 대규모 집회가 이어져왔다. 2019년 9월 12일 서울 대학로를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열린 ‘기후위기 비상행동’에서는 환경·노동·농업·인권·종교 등 200여 개 단체가 모여 정부에 기후정의에 입각한 기후위기 대응방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이 운동은 2022년 9월 24일 서울 중구 일대에서 열린 ‘924 기후정의행진’으로 이어졌다. 환경·노동·동물권·농민·장애인·여성·종교 등 400여 개 단체가 모여 △ 화석연료와 생명을 파괴하는 체제를 종식하고 △ 모든 불평등을 끝내고 △기후위기 최일선 당사자의 목소리가 더 커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414 기후정의파업에 참가한 시민들. (사진 조은비 기자 )/뉴스펭귄
414 기후정의파업에 참가한 시민들. (사진 조은비 기자 )/뉴스펭귄

올해 4월 14일 세종시에서 열린 ‘414 기후정의파업’도 이 운동의 흐름 속에 있다. 집회에 참여한 350여 개 단체는 정부에 사회공공성을 강화해 정의로운 전환을 추진하고, 자본의 이윤축적을 위한 생태학살을 멈추라고 요구했다. 구체적인 요구사항으로는 △ 민간 기업이 아닌 공공이 주도하는 재생에너지 전환으로 에너지 공공성 강화 △ 모두를 위한 공공교통 확충 △ 노동자, 농민, 지역주민, 사회적 소수자가 참여하는 기후위기 대응 △ 공항과 케이블카 건설 등 개발로 인한 환경 파괴와 생태학살 중단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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