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의 서재] 억만 겹의 응원을 담아, 펭귄에게

  • 성은숙 기자
  • 2022.07.27 15:08
(그래픽 뉴스펭귄)/뉴스펭귄
(그래픽 뉴스펭귄)/뉴스펭귄

 

 

착한 펭귄, 사나운 펭귄, 이상한 펭귄

[뉴스펭귄 성은숙 기자] 남위 74도, 극지연구소 남극장보고과학기지가 있는 곳. 8년여 간 이곳에서 펭귄을 관찰했던 정진우 박사가 들려주는 펭귄 이야기는 우리가 잘 아는 사진 속 펭귄 이미지와 사뭇 다르다.

검고 하얀 귀여운 외모에 뒤뚱뒤뚱 걷는 펭귄은 삶과 죽음이 함께 나뒹구는 곳에서 알을 낳고 새끼를 품는다. 용감하고 멋진 펭귄이 푸른 바다에 풍덩 뛰어드는 게 아니라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몇 번을 망설이던 펭귄들 중에서 굶고 있는 새끼 생각에 마음 급한 것 같은 펭귄이 먼저 바다로 뛰어든다. 그렇게 목숨 걸고 사냥 나갔던 펭귄은 다리가 부러져 덜렁거려도 자신이 죽으면 꽁꽁 얼거나 쫄쫄 굶어죽을 새끼 생각에 서둘러 둥지로 돌아온다.

펭귄은 마실 물 한 모금 조차 녹록지 않은 남극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용감해진 생명체다. 그동안 잘 알면서도 잘 알지 못했던, 펭귄에게 보내는 정 박사의 응원기를 함께 펼쳐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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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의 중첩점, 펭귄 둥지

(사진 unsplash)/뉴스펭귄
(사진 unsplash)/뉴스펭귄

정 박사가 남극에서 관찰한 펭귄들의 번식지는 일반적인 상상과 달리 새하얀 눈과 얼음 위에 있지 않다. 토양이 부족한 남극에선 먼저 죽은 펭귄들의 사체와 살아있는 펭귄들의 배설물이 뒤섞인 곳(구아노층)에 펭귄의 번식지가 있다. 

춥고 건조한 남극에서 썩지 않고 미라처럼 변한 동물의 사체는 펭귄 둥지 짓기에 아주 훌륭한 재료가 된다. 또 펭귄은 번식기 내내 알이나 새끼를 떠나지 않기 때문에 분변도 둥지에서 그대로 배출한다. 덕분에 펭귄 번식지는 깜짝 놀랄 정도의 악취로 가득하다. 기온이 뚝 떨어져 배설물이 꽁꽁 어는 날엔 그나마 낫다고 한다. 

이미 죽어버려 모든 것이 멈춘 사체 위에 아직 살아있어 모든 것이 활발한 생명체의 흔적이 한 데 뒤엉켜 있는 곳, 바로 그 곳에 펭귄 둥지가 있는 셈이다. 정 박사는 삶도 죽음도 모두 강렬한 이곳에서 '가능한 한 펭귄의 사체를 밟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가능한 한 많은 새끼들이 살아남아 바다로 나아가길' 기도한다. 

 

 

펭귄(pengwyn)과 펭귄(penguin)

큰바다쇠오리(사진 네이버 지식백과 EBS동영상 갈무리)/뉴스펭귄
큰바다쇠오리(사진 네이버 지식백과 EBS동영상 갈무리)/뉴스펭귄

우리가 아는 펭귄(penguin)은 펭귄(pengwyn)에게서 이름을 물려받았다. 이름을 물려준 그 펭귄(pengwyn)은 멸종됐다. 이미 멸종된, 맨 처음 '펭귄(pengwyn)'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그 새는 옛날 북반구에서 흔하게 보이던 큰바다쇠오리(Great Auk)다. 학명은 Pinguinus Impennis Linnaeus.  

그 펭귄(pengwyn)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펭귄(penguin)처럼 하얀 배에 검은색 머리와 등, 날개를 가졌다. 이 새는 유럽인들의 남획에 시달리다 1844년 마지막 개체마저 잡히면서 멸종됐다. 그 후 남극에서 이 새와 비슷한 모습의 새가 발견됐는데, 그게 바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펭귄(penguin)이다. 

남극은 전 세계에서 지구온난화의 영향을 가장 빠르게 받고 있는 곳이다. 정 박사는 해가 다르게 사라져가는 남극의 빙벽을 보며 빙하와 펭귄의 운명이 서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는 '펭귄(penguin)의 터에서 멸종한 펭귄(pengwyn)을 생각하며' 자신의 연구가 예상하기 어려운 위협으로부터 펭귄들을 지켜줄 수 있는 정보가 되길 소망한다.

 

 

펭귄 마을은 펭귄 마을로 

(사진 pexels)/뉴스펭귄
(사진 pexels)/뉴스펭귄

정 박사의 펜 끝에선 펄떡펄떡 살아 숨 쉬는 펭귄을 벼랑 끝으로 계속 내몰고 있는 인간의 발자국이 드러난다. 지구온난화로 줄어드는 남극의 빙하, 1970년 이후 해빙 감소로 최대 80%까지 사라진 크릴(크릴은 펭귄을 비롯해 물범·바닷새·고래의 먹이다), 그 크릴로 낚시 미끼나 건강보조식품을 만들겠다며 마구잡이로 잡아들이는 어업선 등은 펭귄의 멸종위기를 가속화하고 있다. 

그는 여러 장에 걸쳐 남극은 인간의 땅이 아님을 강조하고, 남극이 오랫동안 눈과 얼음의 대륙으로 남아있길 기원한다. 그건 그가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남극을 뒤로하고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에 정착한 후에도 '남극 소식을 들으며 아쉽지 않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이다'라고 고백하는 한편, '내가 가지 않았다면 조금이라도 사람의 방해를 덜 받으며 살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고민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북위 33~38도, 조금은 더 힘든 삶을 이겨내고자 열심인 펭귄들에게 응원을 보내는 곳. 펭귄 마을이 펭귄 마을로 오래도록 남을 수 있길 바라는 그의 응원이 펭귄과 남극에 닿을 수 있길 바란다. 

 

(그래픽 뉴스펭귄)/뉴스펭귄
(그래픽 뉴스펭귄)/뉴스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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