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피스 "초르노빌 방사능 심각"… IAEA 조사보다 3배 이상

  • 성은숙 기자
  • 2022.07.20 18:35

러시아군 주둔 당시 고의 방화 추정… 방사능 물질 확산 가능성

 그린피스 초르노빌 현지 조사 팀이 방사선 조사를 마친 후 대인 지뢰가 없고 방사능 준위가 낮은 곳에서 방호복 탈복 전 오염 정도를 측정하고 있다.(사진 그린피스)/뉴스펭귄
그린피스 초르노빌 현지 조사 팀이 방사선 조사를 마친 후 대인 지뢰가 없고 방사능 준위가 낮은 곳에서 방호복 탈복 전 오염 정도를 측정하고 있다.(사진 그린피스)/뉴스펭귄

[뉴스펭귄 성은숙 기자] 지난 4월 말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전쟁 이전의 정상 수준'이라고 발표한 초르노빌(체르노빌) 원전 일대 방사능량 보다 최소 3배가 넘는 방사능량이 확인됐다는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의 조사결과가 발표됐다. 그린피스는 러시아군이 점령 당시 접근 제한구역 내에서 고의적으로 낸 화재로 인해 토양 속에 있던 방사성 물질이 대기와 인근 강으로 확산됐을 가능성도 제기하면서,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안전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20일 오후(한국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국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16일부터 18일 아침까지(한국시간) 실시한 초르노빌 접근 제한구역의 방사능 오염 실태 현지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기자회견에는 ▲토마스 브루어 (Thomas Breuer) 그린피스 독일 원자력 전문가 팀장 ▲숀 버니 (Shaun Burnie) 그린피스 독일 수석 원자력 전문가 ▲얀 반데푸타 (Jan Vande Putte) 그린피스 벨기에 수석 방사선방호 전문가 ▲막심 셰브추크 (Maksym Shevchuk) 우크라이나 거주 금지 구역 관리청(SAUEZM) 차장 ▲세르히 키레프 (Serhiy Kireev) 우크라이나 SSE(State Specialized Enterprize) 에코센터 이사 등이 참석했으며, 온라인으로 실시간 송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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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조사는 지난 4월 말 국제원자력기구가 초르노빌 원전 일대 방사능 수치에 대해 '방사선 수준은 정상 범위 내에 유지됐으며, 발전소·공공장소 또는 환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사능 누출은 발생되지 않았다(The radiation levels have remained within normal range and no radioactive releases have occurred that may impact the staff at the plants, the public or the environment.)'고 밝힌 결과를 객관적으로 검증하기 위해 시작됐다. 

그린피스 국제 기자회견(사진 그린피스 온라인 기자회견 화면 갈무리)/뉴스펭귄
그린피스 국제 기자회견(사진 그린피스 온라인 기자회견 화면 갈무리)/뉴스펭귄

그린피스 독일 사무소가 이끄는 현지 조사팀은 수십 년 동안 초르노빌과 후쿠시마 등 원전 사고로 오염된 지역을 조사한 경험이 있는 영국, 벨기에 등 유럽 지역 그린피스 사무소의 방사선 방호 전문가들로 구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 우크라이나 주 정부 기관인 '거주금지구역 관리청(SAUEZM)' 등 우크라이나 정부 소속 과학자들도 동행했다. 

조사 지역은 1986년 원전 사고로 가동이 중단된 초르노빌 원전 반경 30km의 접근 제한구역으로, 4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치사선량의 수십 배에 달하는 방사선량이 검출되는 곳이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군대 일부가 지난 2월부터 약 한 달 간 초르노빌 원전을 점령하면서 이 일대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인 '붉은 숲'에 대형 지하 참호 등을 구축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현장에 주둔했던 약 600명의 군인 중 상당수가 고농도 방사능에 피폭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린피스 초르노빌 현지 조사 팀이 접근 제한 구역에서 토양 내 방사능 물질의 종류를 조사하는 모습(사진 그린피스)/뉴스펭귄
그린피스 초르노빌 현지 조사 팀이 접근 제한 구역에서 토양 내 방사능 물질의 종류를 조사하는 모습(사진 그린피스)/뉴스펭귄

이번 기자회견에서 그린피스 현지 조사팀은 초르노빌 내 러시아군이 진지를 구축했던 토양을 분석한 결과, 같은 장소를 조사해 발표한 국제원자력기구의 결과 보다 최소 3배 높은 2.5µSv(시간 당 마이크로시버트)의 방사선량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또 이 지역의 토양 샘플에서 최대 킬로그램(kg) 당 4만5000베크렐(Bq), 최소 500베크렐의 세슘이 검출됐다며, 러시아군이 방사능 오염이 심각한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오염이 덜한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방사성 물질이 확산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확산된 방사선 물질에는 인체에 유입될 경우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플루토늄, 아메리슘과 같은 알파 방사선 핵종들이 있다는 게 그린피스의 설명이다. 

그린피스는 러시아군 진지와 진지에서 남쪽으로 600미터 떨어진 지역의 방사선량이 각각 200CPS(Count per Second, 대지에서 방출되는 감마선량 단위)와 8000CPS로 두 지역 간 방사선량 차이가 무려 40배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면서, 국제원자력기구의 조사 대상 장소가 러시아 군 진지에 국한됐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 지역은 그린피스가 자체 제작한 무인항공기(UAV) 드론으로 조사됐다.

그린피스는 이번 조사를 위해 지리·기후 정보 전문 컨설팅 업체 '맥킨지 인텔리전스 서비스'로부터 제공받은 러시아군 주둔 당시 초르노빌 지역 정보(2월~3월 말)를 토대로 초르노빌 접근 제한구역에 남겨진 다수의 러시아 군 진지를 확인했으나, 러시아군이 철수 당시 대량의 대인 지뢰를 설치한 탓에 제한된 지역에서만 조사를 진행할 수 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해당 지역의 방사능 및 화재 위험을 관리하는 과학자와 소방관들의 생명도 위험한 상황인 것이다. 

그린피스는 "러시아 군이 방사선 측정 도구와 소방장비들을 파괴·약탈해 우르라이나 정부가 초르노빌 접근 제한구역의 오염변화에 대해 정상적으로 관리하거나 통제할 수 없게 됐다"고 설명했다. 

(왼쪽부터)토마스 브루어 (Thomas Breuer) 그린피스 독일 원자력 전문가 팀장, 얀 반데푸타 (Jan Vande Putte) 그린피스 벨기에 수석 방사선방호 전문가, 세르히 키레프 (Serhiy Kireev) 우크라이나 SSE(State Specialized Enterprize) 에코센터 이사 (사진 그린피스 온라인 기자회견 화면 갈무리)/뉴스펭귄
(왼쪽부터)토마스 브루어 (Thomas Breuer) 그린피스 독일 원자력 전문가 팀장, 얀 반데푸타 (Jan Vande Putte) 그린피스 벨기에 수석 방사선방호 전문가, 세르히 키레프 (Serhiy Kireev) 우크라이나 SSE(State Specialized Enterprize) 에코센터 이사 (사진 그린피스 온라인 기자회견 화면 갈무리)/뉴스펭귄

얀 반데푸타 그린피스 벨기에 수석 방사선 방호 전문가는 "곳곳에 설치된 대인 지뢰로 인해 조사팀이 조사를 진행한 곳은 극히 제한적이다"면서 "러시아군이 군사 활동을 펼친 전체 지역을 조사하면, 방사성 물질의 확산으로 인한 피해 정도가 더욱 심각한 것으로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국제원자력기구는 협소한 지역에서 극히 적은 조사 샘플만 조사해 러시아군에 의한 초르노빌 피해가 없다고 전 세계에 공표했다"면서 "우리의 조사 결과 초르노빌은 결코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고 비난했다. 

앞서 그린피스는 지난 4월 말 초르노빌 접근 제한 구역 내 방사능 수치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의 정상 수준이라는 국제원자력기구의 조사 결과에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국제원자력기구 보고서에는 객관적인 수치나 구체적인 조사 결과가 제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러시아군 참호의 토양을 채취한 후 분석한 결과를 공개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그린피스 독일사무소 숀 버니 수석 원자력 전문가는 "국제원자력기구는 원전 사업의 부흥을 위해 초르노빌 방사능 수치에 문제가 없다고 밝힌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현재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차장 미카일 추다코브(Mikhail Chudakov)는 1995년부터 러시아 국영원자력기업 '로사톰(Rosatom)' 등에서 근무한 만큼, 공정성에 의심이 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단체는 같은 이유로 지난 3월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에게 미카엘 추다코프의 공식 업무 즉각 중단을 요청하기도 했다. 

지난 4월 발표된 국제원자력기구의 우크라이나 초르노빌 원전 일대 조사 보고서(사진 국제원자력기구 홈페이지 갈무리)/뉴스펭귄
지난 4월 발표된 국제원자력기구의 우크라이나 초르노빌 원전 일대 조사 보고서(사진 국제원자력기구 홈페이지 갈무리)/뉴스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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