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근거로 다시 쓴 심층 분석
2025년 9월, 환경부와 국립기상과학원이 공동 발간한 ‘한국 기후위기 평가보고서 2025’는 서두부터 냉정한 진단을 내렸다. “한반도는 전 지구 평균보다 1.5배 빠른 속도로 가열되고 있으며, 1.5℃ 임계점을 사실상 넘어선 상태다. 폭염·집중호우·해수면 상승은 더 이상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 지속되는 배경이 되고 있다.”
보고서는 데이터로 입증했다. 2024년 한국의 연평균 기온은 14.5℃, 1991–2020년 기준 평년보다 +2.0℃ 높았다. 1970년대와 비교하면 무려 +2.3℃ 상승이다. 지난 10년간 폭염일수는 연평균 22일, 열대야는 30일 이상으로 늘었고, 해수면은 연간 3.2mm 이상 상승했다. 장마철은 짧아졌지만, 시간당 100mm 이상 쏟아지는 ‘극단적 국지 호우’는 오히려 잦아졌다.
이 기사는 두 축(세계적 기록·국내 관측)을 출발점으로, 한반도 기후의 현재 상태와 가까운 미래를 과학적으로 재구성하려는 시도다. 결론부터 말하면, ‘1.5℃’는 이미 지구 차원에서 일시적 관측치를 넘어선 상태에 진입했고, 한반도는 그 영향을 더 빠르게 체감하고 있다.
과학계는 왜 1.5℃를 임계점으로 정하고 있을까. 지구 생태계와 인류 사회에 돌이킬 수 없는 ‘위험 경계선’으로 보기 때문이다.
1.5℃의 의미: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기후학자들이 ‘1.5℃’에 주목하는 이유가 있다. IPCC의 1.5℃ 특별보고서와 AR6(제6차 평가보고서)는 1.5℃와 2℃ 사이의 영향 차이를 지역·부문별로 정량화했다. 1.5℃와 2℃ 상승의 0.5℃ 차이는 지구 환경에 극적인 영향을 미친다.
해수면 상승: 2℃ 상승 시 1.5℃ 대비 10cm 더 상승해 수천만 명이 추가로 위험에 노출된다.
생태계 파괴: 2℃에서는 산호초의 99% 이상이 멸종할 위험이 있는 반면, 1.5℃에서는 70~90%가 감소하는 수준으로 멸종 위기를 낮출 수 있다.
극한 기후: 2℃ 상승 시 1.5℃ 대비 극한 폭염에 노출되는 인구가 4억 2천만 명 더 많아지고, 물 부족 인구도 2배 정도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1.5℃ 이내 억제는 생태계 피해를 상대적으로 통제 가능한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한 과학적·사회적 합의에 기반한 '안전 경계선' 으로 정해졌다.
하지만 기후 시스템의 물리적 반응은 지역별로 균일하지 않다. 대륙과 내륙, 고위도와 중위도, 해양과 접한 지역은 서로 다른 속도로 변화한다. 이 때문에 “전 지구 평균 1.5℃”라는 수식은 정책적 목표로 유효하지만, 지역 현상과 사회적 영향의 실체를 이해하는 데는 지역 맞춤형 분석이 필요하다. 한국은 그 대표적 예다.
한반도는 왜 더 빨리 뜨거워지는가: 물리와 공간의 합성
한국의 장기 관측을 보면 지난 한 세기(관측 기간에 따른 차이는 발췌 자료마다 다르지만) 연평균기온이 명확히 상승했다. 기상청, 국립기상과학원, 관련 학계의 종합 분석 결과는 한반도 온난화 속도가 세계 평균을 웃돈다는 결론을 일관되게 보여준다. 한국의 최근 연평균 기온의 급상승(예: 2023년 13.7℃ → 2024년 14.5℃)은 기후위기 부담을 한층 가중시킨다.
지역적 가속의 원리는 복합적이다. 첫째, 북반구 중위도 육지는 해양보다 빠르게 가열된다. 한반도는 대륙 기단의 영향권과 태평양 해역의 열원 사이에 자리해 대기 순환의 변동성에 민감하다. 둘째, 북극·시베리아 지역의 급속한 온난화(Arctic amplification)는 중위도 제트 흐름과 대규모 정체적 기압 패턴을 바꿔 열돔과 극단적 강수 패턴을 한반도로 더 자주·강하게 유도한다. 셋째, 한반도는 고밀도 도시화와 산업구조(고탄소 에너지 기반)를 갖추고 있어, 도심 열섬 효과와 지역적 인공열 배출이 온난화를 추가로 증폭시킨다. 이런 요인이 겹치면서 한반도는 ‘온난화 가속 지대’가 됐다.
이론·관측·모델 연구는 이 결합 메커니즘을 확인해 준다. 대기 정체(블로킹)와 북태평양고기압의 확장, 티베트 고기압(또는 ‘티벳 고원 기압’의 강화) 같은 상층의 거대 고기압 계열은 동아시아의 여름·초가을 기온과 강수 패턴을 극단화시킨다. 최근 연구들은 2020년대 전반의 기록적인 폭염·열돔 사태가 이러한 대규모 대기학적 재편과 인간 유발 기후강제력의 결합에서 기인한다고 분석한다.
관측에서 드러난 변화: 열·물·바다
한반도 기후 변화의 세 축은 ‘열(온도)·물(강수 및 가뭄)·바다(해수면 및 연안 수온)’다. ‘한국 기후위기 평가보고서 2025’에 따르면 2024년 연평균 기온이 14.5℃로 관측 이래 가장 더운 해였다. 열대야는 1990년대 연평균 5일에서 최근 30일 이상으로 급증했다. 특히 지역별 최저기온이 기록적인 상승을 보였다. 한여름의 야간 최저기온(열대야)이 올라가면, 인체는 낮의 고온뿐 아니라 밤의 복구 기회까지 잃는다. 이는 열 관련 질병·사망의 비선형적 증가로 이어진다.
강수 패턴은 ‘총량 변화’가 아니라 ‘분포 변화’로 봐야한다. 연간 강수량 합계가 급격하게 증가하지 않더라도 강수의 계절적·공간적 편차가 커지면 농업·수자원 관리·도시 배수 체계 모두가 충격을 받는다. 우리나라는 최근 장마철은 짧아지고, 시간당 100mm 이상 폭우는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집중호우의 빈도와 강도가 증가하고, 동시에 지역적 가뭄이 더 잦아지는 ‘양극화’ 추세가 관찰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IPCC의 지역평가와도 일치한다.
바다는 천천히 움직이지만 강력한 영향을 준다. 연안 수온 상승은 해양 생태계의 구조를 바꾸고, 수산업과 지역 기후(해면증발로 인한 습도·열에너지 공급)를 변화시킨다. 한반도 연안의 상대 해수면 상승률은 전 지구 평균과 비슷하거나 일부 해역에서 더 빠르다는 관측이 있다. 최근 연구는 한반도 연안의 연평균 상승률이 3.2-4.0mm로, 해역별 차이가 존재한다고 보고한다. 이 수치는 연안 인프라와 저지대 도시의 침수 위험을 현실적으로 앞당긴다.
이미 현실이 된 영향들: 건강·농업·에너지·인프라
폭염은 ‘너무 더워서 못 견디겠다’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다. 초과사망 분석(관찰 사망수와 기대 사망수의 차이)은 폭염의 직접·간접 사망 영향을 기존 집계보다 훨씬 크게 추정해 왔다. 우리나라의 일부 분석은 폭염사망이 공식 집계의 수배에 달할 가능성을 제시했다. 2018년 폭염초과사망자는 공식 집계(48명)를 크게 넘어서는 800명에서 최대 7,000명으로 예측됐다. 기존의 응급의료 체계와 야외 노동자 보호 장치가 폭염 위험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사회적 안전망에 중대한 설계 변경이 요구되는 지점이다.
농업 역시 마찬가지다. 쌀·과수의 수량·품질은 특정한 온습도 조건에 민감하다. 모델링 연구들은 2℃·3℃ 수준의 지역적 가열에서 벼의 생육 생리와 병해충 분포가 크게 변해 생산성 저하와 품질 저하를 일으킬 수 있음을 경고한다. 실제 관측도 고온에 따른 미발아·품질 저하 사례를 보고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품종 전환과 재배기술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
에너지 시스템은 폭염과 직접적으로 맞물린다. 기록적인 고온은 냉방 전력 수요의 급증으로 이어지고 전력망은 피크 대응 능력의 한계에 직면한다. 2024년 여름 전력 수요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냉방 수요 급증은 전력 피크 부하를 악화시켰고, 전력망 안정성 위기를 불러왔다. 화력발전 의존도가 다시 높아지면서 온실가스 배출의 ‘역전 현상’이 관찰되기도 했다.
인프라 측면에서 해수면 상승과 집중호우는 항만·저지대 도시·간선도로망의 근본적 재설계를 요구한다. 조위 관측과 위성고도자료는 연안 상승률과 지역적 가속의 존재를 보여줬고, 이는 중장기 도시계획의 물리적 경계를 재정의하게 만든다.
시나리오와 시간표: 2℃·3℃은 언제, 무엇을 의미하나
기후학은 ‘언제’라는 시간표를 특정하지 않는다. 대신, 다양한 배출 경로(SSP/RCP)에 따른 확률적 도달 시기를 제시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역 모델(CORDEX·국가 단위 고해상도 시뮬레이션)을 통해 얻은 결과들이 존재한다. 정부·연구 기관의 종합평가(예: 한국 기후위기 평가보고서 2025·국립기상과학원 보고서)는 배출이 급감하지 않을 경우 21세기 중후반에 걸쳐 한반도의 평균 상승이 2-4℃ 범위에 이를 수 있다고 정리한다. 반대로 전 지구적 ‘넷제로( Net Zero:순배출 제로)’ 달성 시에는 상승폭을 +1.7℃ 내외로 통제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한국이 2℃에 도달하는 연도’는 전 지구 배출 경로와 지역 내부의 기후 자전(내부변동성: 인간의 영향 없이도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기후 시스템의 변동)에 달려 있다. 그러나 현 추세와 최근 21세기 기후 시나리오를 비교하면, ‘빠른 상승’ 시나리오에서는 2030년대 후반~2040년대 초반에 지역 평균이 2℃ 수준의 일시적 초과를 경험할 가능성이 예측됐다. 그리고 2050년대 전반에는 2℃ 초과 지역이 더 빈번하게 나타날 수 있다는 연구들이 있다. 보다 악화된 배출 시나리오에서는 3℃ 도달도 21세기 중반 내외로 현실화될 수 있다. 이 범주적 결론은 국가·지역 보고서와 국제 모델 군의 일관된 추세 분석이 내린 판단이다.
주목할 점은 ‘몇 년’이라는 숫자보다 ‘시스템 반응의 비선형성’이다. 2℃ 전후의 변화는 여러 사회·생태적 임계점을 건드릴 수 있고, 그 임계점의 통과는 단순한 악화가 아니라 사회적 적응 능력의 근본적 전환을 요구한다. 즉, ‘2℃의 의미’는 숫자 그 자체보다 변화의 성격(폭염의 비선형 증가, 연안 시스템의 비가역적 손상, 식량·보건 시스템의 취약성 노출)에 있다.
‘핫스팟’으로서의 한국: 과학적 근거와 정책적 함의
IPCC는 한국이 포함된 동아시아 지역은 '기후변화 핫스팟'으로 분류한다. ‘핫스팟’은 기후학적·지리적·사회경제적 요인이 결합해 특정 지역에서 온난화의 속도와 영향이 전 지구 평균보다 크고, 그 결과 지역사회가 빠르게 압박받는 현상이다. 한국의 경우, 과학은 네 가지 결합을 지적한다.
첫째, 지리적 위치: 동아시아 중위도에 위치한 한국은 대륙·해양·극지 연결의 노드이며, 원격 영향(극지·열대의 변화)이 지역 기후에 증폭되어 전달된다. 둘째, 대기 순환의 변화: 북태평양고기압·티베트 고기압·아틱-시베리아 텔레커넥션과 같은 계열적 변화는 한반도에 반복적·동시다발적 극한을 유도한다. 셋째, 도시화·산업구조: 인구의 대도시 집중·에너지 사용 패턴은 지역적 인위 가열을 만들어낸다. 넷째, 사회적 취약성: 고령화·불평등은 피해의 불균형적 분배를 심화시킨다. 이 네 가지가 결합되어 한국을 기후 ‘핫스폿’으로 만들었다.
정책적 함의는 분명하다. 단순한 방재(재난 발생 시 대응) 차원을 넘어, 사회 전체의 구조적 재설계(에너지 전환·도시계획·사회 안전망 강화·농업의 근본적 재구성)를 요구한다. 과학은 이미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제시했고, 남은 것은 정치적·경제적 실행이다.
과학의 판정, 이제는 정책의 시간이다.
2025년 여름의 한반도는 불가마였다. 전 지구 평균 +1.55℃ 상승, 한국의 연속 최고 기록 경신. 폭염·폭우 롤러코스터... 기후변화는 ‘우연의 변동’을 인정하지 않는다. 지구보다 빠르게 달궈지는 한반도. 그 여파는 이미 건강, 농업, 에너지, 연안 인프라에 스며들었다.
1.5℃는 지구 생태계가 견딜 수 있는 한계다. 그리고 인류 문명이 유지될 수 있는 마지노선이다. 한반도는 기후변화 '핫스팟'으로 분류됐다. ‘1.5℃ 이후 세계’의 암울한 미래는 탁상 예측이 아니다. 과학은 이미 그 문턱 너머의 임계점과 후폭풍을 경고해왔다. 정책의 시간표를 다시 짜야 한다. 시간은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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