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세, 지질학적 전환의 시대

지구 46억 년의 진화사 속에서 인류의 존재는 찰나에 불과하다. 하지만 인간은 지구 시스템 전체를 바꿔놓을 만큼 강력한 지질학적 요인으로 부상했다. 화석연료의 연소는 대기의 화학 조성을 교란했고, 산업화와 농업의 확장은 토양과 해양의 생태 순환을 흔들었다. 플라스틱은 퇴적층의 일부로, 미세플라스틱은 인체 세포막을 통과해 혈류 속으로 스며든다.

2025년 현재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산업화 이전 280ppm에서 420ppm을 돌파했고, 지구 평균기온은 1.5℃ 이상 상승했다.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2025년 현재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산업화 이전 280ppm에서 420ppm을 돌파했고, 지구 평균기온은 1.5℃ 이상 상승했다.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지질학자 폴 크루첸(Paul Crutzen)이 제안한 ‘지질인류세(Anthropocene)’ 개념은 인간의 활동이 이미 지질학적 흔적을 남기고 있음을 선언한 사건이었다. 국제지질과학연합(IUGC, 2023)은 해양퇴적층, 빙핵, 산호초, 토양 등에서 산업화 이후 인류 활동의 지표를 다수 발견했다. 특히 1945년 이후 핵실험으로 생성된 플루토늄-239는 전 지층에 남아 인류세의 ‘시그니처 동위원소’로 작용한다.

2025년 현재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산업화 이전 280ppm에서 420ppm을 돌파했고, 지구 평균기온은 1.5℃ 이상 상승했다. NASA 고다드 우주연구소의 최근 관측에 따르면 지구는 매년 0.9W/㎡의 에너지를 추가로 흡수하고 있다. 지구 전역에서 매년 5조 기의 1GW급 원전이 작동하는 수준의 열 축적에 해당한다.

이제 인류의 기술과 경제활동은 지구 시스템 내부에 깊숙이 스며들며 ‘인간–기술–지구 복합계(Human–Technosphere–Earth Complex)’를 형성했다. 네이처 지구과학(2023)은 이를 단순한 원인–결과 체계가 아닌 자기증폭적 피드백 시스템, 즉 ‘행성적 메커니즘’으로 진화한 것으로 분석한다.

지구의 불균형과 냉각의 문명적 도전

세계기상기구(WMO, 2024)는 “지구 평균기온이 이미 여러 달 동안 1.5℃ 임계값을 초과했다”고 경고했다. 빙하 붕괴, 산호 백화, 식량 위기는 연쇄적 티핑 포인트(Chained Tipping Points)로 이어지고 있다.

인류는 지구를 다시 식히려는 문명적 실험을 시작했다. 성층권 에어로졸 주입(SAI), 태양복사관리(SRM), 탄소포집(CCS), 직접공기포집(DAC), 인공광합성, 해양 복원 등이 대표적이다. 목표는 단순한 온도 조절이 아니라, 행성의 에너지 불균형(Energy Imbalance)을 재조정하는 것이다.

냉각 기술의 역사 ― 자연이 보여준 실험에서 인간의 개입까지

① 피나투보의 기억 ― 자연이 남긴 ‘기후 조절 실험’

1991년 6월 15일, 필리핀 루손섬의 피나투보 화산이 폭발했다. 단 9시간 동안 분출된 화산재와 가스는 성층권까지 치솟았고, 이 중 2천만 톤의 이산화황(SO₂)이 대기를 뒤덮었다. SO₂는 성층권에서 수증기와 반응해 황산염 에어로졸을 형성했다. 반사율(알베도)이 높은 이 미세입자들은 태양복사의 약 2%를 우주로 되돌려 보냈다.

그 결과 1992~1993년 사이 지구 평균기온이 0.5℃ 하락했다. 인류는 이때 처음으로 지구 기온이 얼마나 정밀한 복사평형 위에 놓여 있는지를 실감했다. 피나투보는 자연이 시연한 태양복사관리(SRM)의 첫 실험이었다.

과학적으로 보면, 지구는 태양에서 받는 단파복사(340W/㎡)와 우주로 방출하는 장파복사(240W/㎡)의 균형으로 에너지를 유지한다. 피나투보 이후 반사된 복사는 3W/㎡ 감소했다. 이 미세한 차이가 전 지구적 기온을 바꿔놓았다.

② 태양복사관리(SRM) ― 빛의 흐름을 조율하는 과학

지구를 식히는 방법은 단순하다. 태양에서 들어오는 복사 에너지를 줄이면 지구는 식는다. 과학자들은 이 원리를 실현하기 위해 성층권 에어로졸 주입(SAI)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높이 20km 상공에 미세한 반사성 입자를 뿌려 태양빛 일부를 우주로 되돌리는 방식이다.

하지만 현실은 복잡하다. 황산염 에어로졸은 냉각 효과는 뛰어나지만, 오존층을 파괴하고 대기 순환을 교란할 위험이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MIT와 하버드 공동연구팀(2024)은 탄산칼슘(CaCO₃)을 대체 입자로 제안했다. 탄산칼슘은 태양빛 반사율이 높고, 오존과 반응하지 않아 오존층 손상을 60% 줄이면서도 냉각 효과를 유지한다는 모델링 결과가 제시됐다.

그러나 과학의 문제는 기술적 효율성으로 끝나지 않는다. “누가 태양빛을 조절할 권리를 가지는가?”라는 윤리적 질문이 뒤따른다. 태양은 지구 생태 리듬을 지배하는 공유 자원(Climate Commons)이다. 그 빛의 흐름을 바꾸는 일은 행성의 기후 시스템을 인간의 손에 맡기는 선택이다. 태양복사관리는 과학이자 윤리이며, 기술이자 철학의 문제다.

③ 기술과 윤리의 충돌 ― ‘하늘을 다루는 과학’의 딜레마

2011년 영국의 SPICE 프로젝트는 성층권에 물 입자를 분사해 기술적 가능성을 시험하려던 작은 시도였다. 그러나 시민사회는 “태양을 조절하려는 시도”로 받아들였고, “전 인류의 동의 없는 기후 조절은 위험하다”는 비판이 일었다. 결국 프로젝트는 중단됐다.

이후 하버드대는 SCoPEx 실험을 추진했다. 미세 입자를 성층권에 분사해 반사 효과를 관찰하려는 연구였다. 그러나 실험지역인 스웨덴 키루나에서 사미(Sámi) 원주민이 “하늘은 신성하며 실험실이 될 수 없다”고 반대했다.

이 사건은 냉각 기술이 넘어서야 할 윤리적 경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기후공학은 생존을 위한 과학이지만 동시에 지구적 민주주의의 시험대다. 냉각 기술은 물리학의 문제를 넘어, “누가 지구의 미래를 결정할 권리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④ 다양한 냉각 시나리오 ― 하늘, 바다, 우주로 확장되는 실험

태양복사관리(SRM) 연구는 대기뿐 아니라 바다와 우주로 확장되고 있다.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해양 구름 밝기 조절(MCB)이다. 바닷물 입자를 미세하게 분사해 해양 상층 구름의 반사율을 높이는 방식으로, 호주 CSIRO 연구진은 2022년 산호 해역의 수온을 0.7℃ 낮추는 데 성공했다.

또 다른 냉각 시도로 제안된 ‘우주 반사막(Solar Shield)’은 말 그대로 ‘하늘 위의 거대한 햇빛 가리개’ 구상이다. 태양과 지구 사이에는 두 천체의 중력이 균형을 이루는 L1 라그랑주 점이라는 특별한 위치가 있다. 연구자들은 이 지점에 아주 얇은 나노필름 반사막을 띄워 태양빛의 일부를 반사하거나 차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 반사막이 제대로 작동하면, 지구로 들어오는 태양복사를 미세하게 줄여 전 지구적 온도를 낮출 수 있다. NASA의 제트추진연구소(JPL)는 이 방법을 장기적 행성 냉각 시스템, 즉 인공적인 ‘그늘막’으로 활용할 가능성을 탐구 중이다.

지상에서도 사막이나 고원에 반사성 물질을 살포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다만 토양 산성화나 대기오염 위험이 지적된다. 이러한 기술들은 냉각 강도와 지속성, 지역적 영향이 다르다. 과학계는 이를 ‘복합 냉각 전략(Integrated Cooling Strategy)’으로 통합해 접근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⑤ 냉각의 불평등과 종속의 위험

기후모델 기업 Climatrix(2023)의 분석은 냉각 기술의 한계를 드러낸다. 성층권 에어로졸 주입(SAI)은 평균기온을 1.2℃ 낮출 수 있지만, 인도양 몬순은 17% 약화되고 아프리카 사헬 지역의 강수량은 25% 감소할 수 있다.

기후 시스템은 온도를 낮추는데 그치지 않는다. 태양복사가 줄면 지역 간 온도차가 줄고, 대기 대순환이 교란된다. 이로 인해 어떤 지역은 폭우가, 다른 지역은 가뭄이 심화된다. 또한 종결 충격(Termination Shock)’은 냉각 기술의 가장 큰 위험 중 하나다. 성층권 에어로졸 주입(SAI)을 갑자기 중단하면, 그동안 막혀 있던 태양복사가 한꺼번에 지구로 들어오게 된다. 이때 지구의 평균기온이 몇 년 만에 1~3℃ 급격히 상승할 수 있는데, 지금의 온난화보다 훨씬 빠르고 위험한 변화다.

결국 이런 기술은 온실가스 자체를 줄이는 방법이 아니기 때문에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냉각 기술만으로는 지구를 안정시킬 수 없다. 탄소 순환을 회복하고 기후 정의를 실현하는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배출 감축만으로는 대응이 어려운 시대가 왔다. ‘탄소 순환 복원(Carbon Cycle Restoration)’ 기술이 새로운 축으로 부상하는 이유다.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배출 감축만으로는 대응이 어려운 시대가 왔다. ‘탄소 순환 복원(Carbon Cycle Restoration)’ 기술이 새로운 축으로 부상하는 이유다.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기후위기와 탄소 순환의 복원, 기술은 어디까지 왔는가.

배출 감축만으로는 대응이 어려운 시대가 왔다. ‘탄소 순환 복원(Carbon Cycle Restoration)’ 기술이 새로운 축으로 부상하는 이유다. 탄소 포집·저장(CCS)은 이미 상용화 단계에 들어섰다. 북해 해저 지층을 활용한 장기 저장 프로젝트들은 기술적 안정성을 입증했지만, 전 세계 CCS의 총 처리능력은 전체 배출량의 0.1% 미만이다.

이를 보완하는 기술이 직접공기포집(DAC)이다. 스위스 클라임웍스(Climeworks)가 운영하는 아이슬란드의 ‘오르카(Orca)’ 시설은 공기 중 CO₂를 흡수해 지하에 탄산염으로 고정한다. 공기를 ‘설계 가능한 자원’으로 바꾸는 시도다.

인공광합성(Artificial Photosynthesis)은 태양광과 촉매를 이용해 CO₂를 연료나 화학원료로 전환한다. 캘리포니아공대와 KAIST 연구진은 반도체 기반 광촉매로 효율을 높이고 있다. 탄소 제거와 에너지 생산을 동시에 달성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또한 탄소 재활용(Carbon Recycling) 기술은 포집된 CO₂를 수소와 결합시켜 합성연료(Synthetic Fuel)를 생산한다. 탄소를 폐기물이 아닌 순환 자원으로 보는 관점의 전환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 2024)는 “2050 넷제로를 달성하려면 현재보다 100배 이상의 기술 확장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며, 기술 발전과 함께 에너지 소비 패턴·산업 구조의 변화가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복원의 기술, 문명의 재설계

21세기 기후 대응은 감축의 시대를 넘어 ‘복원의 문명(Restoration Civilization)’으로 이동하고 있다. 맹그로브 복원, 건강한 토양, 해조류 양식 등 자연 기반 해법(Nature-based Solutions, NbS)이 중심이다.

인도네시아의 6,000헥타르 맹그로브 복원 사업은 연간 30만 톤의 탄소를 흡수하며 지역 주민의 생계도 개선했다. 케냐의 ‘그린라티스 프로젝트’는 5,000여 농가가 참여해 황폐한 농지를 복원하며 소득을 40% 이상 높였다.

옥스퍼드대 플래닛 랩(Planet Lab, 2024은 복원 기술의 세 가지 원칙(① 단기적 냉각보다 장기적 안정성 확보, ② 지구 시스템의 자연적 리듬 존중, ③ 복원 과정에서의 사회적 형평성 강화)을 제시한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이러한 복원 기술이 2030년까지 1억 9천만 개의 일자리와 10조 달러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핵심은 경제가 아니라 문명의 재설계에 있다.

냉각에서 복원의 문명으로

지질인류세는 인간이 대기와 해양, 그리고 행성의 열수지(에너지의 입출력 균형)까지 바꿔놓은 시대다. 인간의 활동은 국지적 환경을 넘어 지구 전체의 에너지 흐름을 흔들었다. 지구 온도를 낮추려는 시도는 이러한 인식에서 출발했다. 1991년 피나투보 화산 폭발은 냉각의 원리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였다. 그러나 이 실험은 지구 시스템의 복잡성과 인간 이해의 한계를 동시에 드러냈다.

기후는 단순한 계산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에어로졸의 농도, 입자 크기, 대기 습도, 해양 반사율 등 수많은 변수가 얽혀 예측 불가능한 결과를 낳는다. 한 지역의 냉각이 다른 지역의 강수 패턴과 해류의 흐름을 바꾸기도 한다.

오늘의 문명은 ‘지구를 제어하는 기술’에서 ‘지구와 함께 작동하는 기술’로 전환하고 있다. 지구는 외부 통제가 아닌, 스스로 균형을 유지하는 ‘자기조절 시스템(Self-regulating System)’이다. 나무는 탄소를 저장할 뿐 아니라 수분 순환과 지역 기후를 조율하며 생태계의 리듬을 유지한다. 복원이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지구가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과정이다.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 일조차 지구의 자기회복 메커니즘에 참여하는 기술적 행위다.

지질인류세의 전환점은 인간의 기술이 자연 속에서 조화롭게 작동하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그때 기술은 생명체처럼 진화하며 지구 시스템의 일부로 흡수된다. 최근 연구자들은 이를 ‘생명적 기술(Vital Technology)’ 또는 ‘공진적 공학(Co-evolutionary Engineering)’으로 부른다. 대표적 사례가 인공광합성이다. 이산화탄소를 유용한 화합물로 전환하는 과정은 자연의 에너지 순환을 보완하고 확장하는 시도다. 이 기술은 점차 자연의 리듬 속에 흡수되며 지구 시스템의 일부로 자리 잡는다.

지구는 구원의 대상이기보다 함께 진화하는 존재다. 과학자들은 “지구를 구한다”는 구호 대신, 지구의 회복력과 리듬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조화롭게 작동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옥스퍼드대 ‘행성 문명 프로젝트(Planetary Civilization Project)’는 이를 ‘복원의 문법(Grammar of Restoration)’으로 정의한다. 지구를 통제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자율적 회복이 가능한 존재로 인식하며 기술을 그 리듬에 맞춰 조율하는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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