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7일 동대문의 한 마트에서 포장돼 판매 중인 배추. 가격표에는 9500원이 찍혀 있다. (사진 곽은영 기자)/뉴스펭귄
8월 27일 동대문의 한 마트에서 포장돼 판매 중인 배추. 한 포기에 9500원이라는 가격이 찍혀 있다. (사진 곽은영 기자)/뉴스펭귄

기후위기로 배추밭이 줄어드는 대신 동남아시아에서나 볼 수 있던 장립종 벼가 해남 들녘에 뿌려지고 있다. 우리 밥상에 안남미 쌀이 오르고 김치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날씨가 바꾸는 밥상 풍경이 먼 미래 이야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달라지는 환경에 맞춰 신기술 개발과 정책 뒷받침, 그리고 예산 확보 등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해남 들녘에 등장한 동남아 벼

열대에서 자라던 장립종 벼 품종이 기후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우리 농가의 생존전략으로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폭염이 이어지면 벼 품질이 저하될 수 있는데, 아열대 기후에서 잘 자라는 벼는 중장기적으로 변화하는 우리나라 기후 환경에 잘 맞다는 판단이 반영된 것이다.

MBC가 지난 23일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전남 해남의 한 친환경 벼 재배단지에는 이미 축구장 140개 크기의 논에 열대벼가 심겨 있다. 2023년부터 시범 재배를 시작해 점차 면적을 확대하고 있는 장립종 벼로 농민들은 “기존 품종보다 고온에 강해 안정적 수확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해당 벼는 우리가 흔히 먹는 찰지고 둥근 쌀인 자포니카 품종이 아닌, 찰기가 적고 길쭉하며 가느다란 인디카 품종이다. 방글라데시, 베트남, 태국 등 동남아시아 아열대 지역에서 주로 생산되는 이 품종은 쌀알이 고슬고슬한 것이 특징으로, 세계 쌀 유통시장의 85~90%를 차지할 만큼 국제 시장의 주류 품종이다.

그동안 장립종 벼는 국내에서 ‘밥알이 날린다’며 선호도가 떨어졌지만, 국내에 체류하는 아열대권 국적의 외국인과 동남아 음식 선호 인구가 증가하고 기후환경이 바뀌면서 일부 농가에서 관심을 갖기 시작한 상황이다. 

농촌진흥청도 올해부터 5년간 ‘장립종 벼 기반 쌀 산업 혁신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국내 기후에 적합한 인디카 장립종 생리 생태를 연구하는 등 한국형 인디카 품종을 개발해 국내 재배 가능성을 넓히고, 장기적으로는 아시아 수출까지 내다보겠다는 구상이다.

동남아시아 아열대 지역에서 주로 생산되는 장립종 벼는 찰기가 적고 길쭉하며 고슬고슬한 것이 특징이다.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동남아시아 아열대 지역에서 주로 생산되는 장립종 벼는 찰기가 적고 길쭉하며 고슬고슬한 것이 특징이다.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배추밭 사라진다” 20년간 절반 가까이 줄어든 면적

반면, 폭염과 폭우가 이어지면서 우리나라 대표 채소인 배추는 갈수록 재배가 힘들어지고 있다.

지난달 19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농산물유통정보(KAMIS)에 따르면, 배추 한 포기 소매가격은 7062원으로 전년 대비 9.3%, 평년 대비 11% 상승했다. 전달보다는 1.5배 오른 수치로 한 달 만에 약 2500원이 급등했다. 일반적으로 8월 배추 가격이 전달보다 비싸다고는 하지만 올해는 그 상승폭이 더 컸다. 

이러한 상승 배경에는 잇따른 폭염과 폭우로 고온다습한 환경이 지속되면서 속무름 현상이 이어지고, 이로 인한 공급 감소가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배추 소매가격 상승과 관련해 7월까지 지속된 폭염이 영향을 끼쳤다고 밝혔다. 

배추 가격 상승은 바로 김치 가격으로 이어졌다. 경남도민일보가 지난달 20일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7월 경남 지역 김치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20.5% 올랐다. 가공식품 물가 상승률보다 4배 넘게 높은 수준이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올해뿐만이 아니다. 고온 현상이 지금처럼 이어지면 서늘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배추를 더 이상 생산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지속적으로 나왔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고랭지 배출 재배 면적은 20년 전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 3995ha에 그친다. 농촌진흥청은 앞으로 25년 사이 배추 경작 면적이 44ha로 감소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2090년에는 고랭지 배추 재배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이유는 이상고온, 집중호우, 이로 인한 병해충 증가로 요약된다. 배추는 섭씨 18~21도가 생장 최적의 온도로 여름에도 25도를 넘지 않는 강원도 고랭지 지역에서 주로 재배됐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폭염 일수가 길어지면서 배추 심지와 뿌리가 상해 수확이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가을배추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해 전국 가을배추 재배 면적은 1만2998ha로 전년 대비 줄었고 이는 2019년 이후 가장 작은 규모다.

이대로라면 김치의 안정적 공급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실제로 지난해 배추 수확량이 급감하면서 배추 도매가가 상승하고, 김장 시즌 정부가 2만4000톤의 비축 배추를 시장에 공급한 바 있다. 로이터 통신은 지난해 한국의 대표 음식 김치가 기후변화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렇게 급변하는 기후에 대응하기 위해 농림축산식품부와 농촌진흥청 등 정부부처는 현장 맞춤형 재배 기술 개발과 신속한 보급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농진청은 '신농업기후변화대응체계구축사업'을 통해 내재해 품종개발, 재배지 변동과 작황 예측, 안정 재배기술 개발 및 이상기상에 대한 피해경감 기술을 지속해서 개발하고 있다. 

지난 6월 개최된 '제3차 기후변화 대응 현장 포럼'에서는 생성형 AI 기술을 활용한 작물 재배관리 의사결정 지원 서비스와 작물 맞춤형 기상 재해를 선제적으로 알려주는 기상재해 조기경보서비스 등 기후변화 대응 연구 개발 사례를 공유, 향후 44개 작목을 대상으로 전국 확대 시행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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