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인 폭우로 침수 피해가 속출하는 가운데 유독 강릉만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전통 방식의 기우제까지 등장할 정도로 마른장마로 고초를 겪고 있는 강릉의 모습은 집중호우로 물난리를 겪은 지역과는 또 다른 기후위기의 현장을 보여준다.
강릉시는 지난 7월 4일 가뭄 ‘관심’ 단계에 진입한 이후 평년 대비 저조한 강수량으로 이달 21일 가뭄 단계가 ‘심각’으로 격상했다.
강릉시의 주요 상수원인 오봉저수지 저수율은 24일 기준 17.8%까지 떨어져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평년 저수율(69.4%)의 25.7%에 그치는 수준으로, 오봉저수지의 저수율이 가장 낮았던 2000년 26%와 비교하면 8.2%p 낮아진 수치다.
오봉저수지는 강릉 지역 전체 생활용수의 86.6%(급수인구 약 18만 명)를 공급한다. 그러나 가뭄 이후 위성에서도 저수지를 채우고 있던 물이 사라지고 드러난 바닥이 확인될 만큼 상황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봉저수지뿐만 아니라 신왕저수지, 초당저수지 등 저수율도 바닥권을 보이면서 생활용수와 농업용수 공급에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강릉시는 20일부터 계량기 50%를 잠그며 제한 급수를 시행하고 있다. 이후 오봉저수지 저수율이 15% 이하로 떨어지면 계량기의 75%를 잠근다는 계획이다. 0% 이하가 되면 가구당 하루 약 2L의 생수를 배부하는 등 운반급수를 시행할 예정이다.
제한 급수 속에서 시민들은 빨래는 물론, 샤워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부 가정에서는 물티슈로 화장실을 청소하는 등 열대야가 겹친 8월 생활용수 부족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강릉은 지난 13일부터 11일째 열대야가 이어지는 등 대부분의 지역에 폭염특보가 발효된 상황이다.
시민들이 일상생활을 유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되자 강릉단오보존회는 지난 23일 대관령에서 가뭄 해갈을 기원하는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 강원 속초시는 강릉시에 해양 심층수 3만 병을 긴급 지원하는 등 주변에서는 도움의 손길을 뻗고 있다.
전국 물난리 속 강릉만 가뭄인 이유
강릉은 4년 전만 하더라도 집중호우로 곳곳에서 침수 피해가 잇따랐던 곳이다. 최근 전국이 집중호우로 물난리를 겪는 모습과 대조적으로 강릉시만 역대 최악의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원인은 올해 강릉 지역을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는 마른장마로 꼽힌다. 강릉 등 동해안은 올해 장마철에도 강수량이 적었는데, 강릉시의 최근 6개월 누적 강수량은 386.9㎜로 평년의 49.8%에 불과하다. 최근 한 달 사이 강수량도 평년의 16.7%에 불과했다. 지난 4월 19일부터 시작된 기상 가뭄은 125일 넘게 이어지고 있다.
하천의 지형적 특성과 취수원이 제한돼 있다는 특성도 있다. 동해안 주변 하천은 경사가 급하고 강폭이 좁아 비가 내리더라도 동해로 물이 흘러나가 버리는 구조인 것이다.
박치현 환경공학 박사는 “이 같은 기상이변은 지형과 기후 변화의 복합적 작용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태백산맥의 지형적 특징과 동해안 특유의 국지적 기후 영향이 큰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박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태백산맥의 지형적 차단으로 서쪽에서 오는 비구름이 태백산맥 서사면에 대부분 비를 뿌리고 동쪽인 강릉 쪽에는 ‘비 그림자’가 생겨 비가 적다. 산을 넘어온 공기는 하강 기류로 따뜻하고 건조해져 비 대신 맑고 더운 날씨를 만들어 가뭄이 심화된다. 여름·초가을 서쪽 기압골의 영향으로 습기를 공급하는 동풍 대신 서풍이 자주 불어 장기간 건조한 상태에 머무는 것도 하나의 원인이다.
지하수 저류댐·하수처리수 재이용 등 대체수원 확보 박차
이에 환경부는 22일 오후 오봉저수지를 방문해 가뭄 대응 상황을 확인하고 행정안전부 등 관계기관과 향후 대책을 점검했다. 중장기 대책으로는 지하수 저류댐, 하수처리수 재이용, 노후 상수도 누수율 저감 사업 등을 추진하거나 계획하고 있다.
인근 도암댐도 가뭄 해소 방안으로 거론됐다.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에 위치한 도암댐은 약 3000만 톤의 충분한 용수를 확보하고 있어 강릉시 가뭄 해소방안으로 자주 논의돼 왔지만, 수질문제, 지역 간 이해관계 등으로 해결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환경부에 따르면, 도암댐 상류 지역의 경우 2006년 ‘가축분뇨법’ 제정 이후 정부에서 축산분뇨 오염을 본격 관리하고 오염원 저감사업을 추진해 수질이 많이 개선된 상황이다.
김성환 환경부 장관은 “강릉시는 올해 최악의 가뭄으로 생활·공업용수 제한 급수까지 시행하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또다시 가뭄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지하수 저류댐 등 대체 수자원 확보와 도암댐 연계 등 기존 수자원의 효율적인 활용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하겠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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