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 와도 달라지는 게 없던데?"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 기자가 찾은 9일 오후 3시께 한 요양보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날 여러 방송사, 언론사에서 다녀갔다며 주민들은 지친 기색이었다.

"더우니까 나와 있지. 방 안에 있으면 숨이 퍼덕거려"

"에어컨 있어도 없는 사람들도 있어. (1인 거주 방을 가리키며) 저기 사는 사람들은 역에 가서 놀고 와"(돈의동쪽방촌 주민 A씨)

"집주인이 전기요금 때문에 에어컨을 못 켜게 해"(돈의동쪽방촌 주민 B씨)

최근 중부지방 장마철이 일찍 끝났다는 소식과 함께 이례적인 폭염이 치솟자 쪽방촌 주민들의 어려움을 담은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반복되는 폭염과 잦은 외부인 방문에 주민들은 이중고로 지쳐가고 있었다.

돈의동쪽방상담소 관계자에 따르면 2019년 언론 보도로 쪽방촌 냉방문제가 집중 조명되면서 서울시와 민간 후원 등 지원을 받아 순차적으로 에어컨이 설치됐다. 폭염 대책으로 바람길, 쿨링포그, 차열페인트 등이 여러 차례 제안됐으나 구조적 한계로, 현재 시행 중인 건 쿨링포그와 에어컨 지원이다.

쿨링포그는 미세한 물 입자를 분사해 주변 온도를 낮춘다. 서울시에서 2022년부터 지원하고 있으며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가동된다. 관계자에 따르면 저녁 이후까지 가동할 경우 습도가 높아질 수 있어 건강관리 차원에서 중단된다.

쿨링포그가 가동되는 돈의동 쪽방촌. (사진 우다영 기자)/뉴스펭귄
쿨링포그가 가동되는 돈의동 쪽방촌. (사진 우다영 기자)/뉴스펭귄

에어컨은 설치 조건이 있고, 지역구마다 수혜가 다르다. 돈의동 쪽방촌은 '3인 거주 시 1대 설치'를 기준으로 종로구청 공동모금회 사업, 서울시 지원, 민간 지원 등을 받아 현재 100대 이상 설치됐다. 약 740개 방 중 올해 6월 기준 497명이 거주하며, 이 중 450명 정도가 수혜를 받는다. 나머지 주민들은 3명 이하 거주, 구조상 설치 어려움, 옥탑방 거주, 본인 거부 등을 이유로 수혜를 못 받고 있다.

돈의동쪽방상담소 관계자는 "종로구만 재개발 예정지가 아니어서 시범적으로 설치가 잘 된 편"이라고 말했다. 남대문, 동자동, 영등포, 창신동은 상대적으로 에어컨 설치가 제한적이다.

에어컨이 있어도 속 시원히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3인 거주' 기준 1대씩 설치된 돈의동 쪽방촌 에어컨은 복도에 설치돼있다. 에어컨을 쐬려면 방문을 열어놔야 한다.

빈곤사회연대 이원호 집행위원장은 "2~3층에 한 대가 지원된 꼴이고, 한 대도 채 지원되지 않은 곳도 있다. 층에 있는 에어컨이라도 쓰려면 방 문을 다 열어놔야 한다"면서 "층마다 없는 경우도 있는데 복도에 설치돼 있어도 에너지 통제권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복도에 설치된 에어컨. (사진 우다영 기자)/뉴스펭귄
복도에 설치된 에어컨. (사진 우다영 기자)/뉴스펭귄

기자가 취재할 당시 돈의동 쪽방촌에서는 집집마다 "에어컨을 켜도 된다"고 안내하는 조사원이 있었다. 전기료나 난방비 등이 월세에 포함돼 있고, 한전 감면이나 서울시 지원금, 에너지바우처 등으로 냉난방비 지원을 받지만 일부 주민은 집주인 재량에 따라 사용을 통제 당하기도 한다.

돈의동쪽방상담소 관계자는 "에어컨 설치하면서 집주인들이 월세를 4~5만원 정도 올렸다. 어떤 집은 저녁에 틀어주고 낮에는 다른 데 가있으라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빈곤사회연대 이원호 집행위원장도 "에어컨 리모콘을 집주인들이 가지고 있거나, 마음대로 온도를 조정한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여름을 위해 설치된 에어컨이 집주인으로부터 통제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놓인다.

에어컨 설치를 더 늘리는 것도 쉽지 않다. 3평 남짓한 방들이 붙어있고, 2~3층 구조로 모여있는 특성상 쪽방촌 안에서도 사각지대가 있다. 빈곤사회연대 이원호 집행위원장은 "쪽방촌 물리적 형태때문에 방마다 설치할 수 있는 구조가 안 된다. 에너지 비용 지원, 에어컨 설치 지원이 폭염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겨울철에는 좁은 방에 단열제를 써서 방이 좁아진 것에 더 불편함을 느낀 주민들도 있었다. 그는 "근본적인 주거대책이 필요하다. 기존 리모델링 시도가 몇차례 있었으나 건물 구조를 바꾸지는 못했다"고 덧붙였다.

"예전보다 좋아진 건 맞아요. 그렇다고 천국은 아니에요"

주거 취약계층은 폭염과 같은 기후재난 속에서도 취약하다. 해마다 반복되는 폭염에 더 고통받는 쪽방촌 주민들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주거 형태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돈의동쪽방상담소 관계자는 "서울시와 국토교통부에서 건물을 매매해 지속적인 대책을 가지고 재개발 또는 그 지역 안에서 거주할 수 있는 주거형태를 만들어보자고 계속 제안해보고 있다"며 "740개 방 중에 497명이 거주하고 있다. 공실을 줄여나가면서 단위별 계획을 가지고 주거개선, 소형주택이나 협소주택을 계획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5대 쪽방 중 유일하게 재개발 계획이 없으니 이런 형태의 제도가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주거 형태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으로 서울시와 국토교통부는 2021년 "전국 최대 서울역 쪽방촌 명품 주거단지로 재탄생"이라며 동자동 쪽방촌을 공공주택과 생활 SOC가 결합된 명품 주거단지로 탈바꿈하겠다고 발표했다. 임대주택 1,250호, 공공분양 200호, 민간분양 960호 등 총 2,410호를 공급하고, 임시거주지 제공과 순환개발로 주민 재정착을 돕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사업은 4년째 지연되고 있다. 이원호 집행위원장은 "동자동 공공주택 개발은 지구 지정조차 안 됐다. 순환개발 방식으로 주민들이 같은 생활권에서 임시로 거주했다가 돌아올 수 있게 해야 하는데, 민간개발 압력으로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때 나온 정책이 윤석열 정부에서 멈췄다"며 "새 정부인 이재명 정부에서 이 사업에 의지를 갖고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2021년 국토교통부가 내놓은 쪽방촌 주거환경 개선 예시. (자료 국토교통부)/뉴스펭귄
2021년 국토교통부가 내놓은 쪽방촌 주거환경 개선 예시. (자료 국토교통부)/뉴스펭귄

2023년 2월, 동자동 주민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에너지바우처를 반납하겠다"며 "난방비 말고, 공공임대를 내놔라"고 요구했다. 2025홈리스주거팀도 지난 5월 논평에서 "바우처 같은 미봉책으로는 기후불평등을 해결할 수 없다.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을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녹색전환연구소 배보람 부소장도 에너지바우처 한계를 지적했다. 그는 "에너지바우처는 현금성 지원이라 집 자체가 바뀌지 않으면 매년 같은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에너지복지제도도 주택효율 개선과 함께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쪽방촌처럼 벽이 얇아 에어컨 설치조차 어려운 곳도 있다. 집이 안전하지 않은 취약계층을 식별하고, 이주나 주택품질 개선, 에너지효율 개선 등 장기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며 "정부는 현금 지원만으로는 기후위기 시대 주거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 시민 A씨는 "에어컨 달고 못달고 문제가 아니다. 2021년에 재개발 하겠다더니 4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것도 없다. 재개발 앞두고 보상을 원하는 집주인과 주거개선을 기다리는 주민들 사이에 이미 선이 그어졌는데 에어컨 설치를 해주겠냐"고 말했다. 민간 건물이기 때문에 에어컨을 시에서 설치하려면 집주인 동의가 필요하다. A씨는 "집마다 사용 가능한 전력이 있는데, 에어컨 사용으로 전력 떨어지면 승압비용은 누가내냐는 문제도 있다"고 설명했다.

A씨는 "예전보다 좋아진 건 맞지만 그렇다고 천국은 아니다"라며 "재개발이 가장 최우선"이라고 말했다. 시민들은 점점 이례적인 폭염이 매년 반복될까 두렵다. A씨는 "매일 어디 후원금, 후원품이 지원됐다는 보도가 나오던데 이게 해결책은 아니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10년 장기간이라도, 그 시간 안에 주민들한테 기후변화에 따른 대책을 정부에서 계획이나 발표라도 해주길 바란다. 내년에 더 더워지면 주민들은 죽으라는 거냐"고 호소했다.

A씨 역시 매년 여름마다 쏟아지는 기자들의 같은 질문에 지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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