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덮인 급경사 산에서 살아가는 산양은 매년 겨울마다 혹한과 눈 폭탄 속에서 생존을 이어간다. 최근 몇 년간 이어진 강추위와 서식지 단절, 먹이 부족 등으로 집단 폐사가 반복됐고, 멸종위기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 가운데 국내 연구진이 복원 실마리를 제시했다.
환경부 산하 국립생물자원관은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 산양의 모근세포에서 유도만능줄기세포(iPSC)를 유도하는 데 국내 최초로 성공했다고 30일 밝혔다. 유도만능줄기세포는 원래 특정 기능을 하던 세포를 다시 초기 상태로 되돌려 다양한 세포로 분화할 수 있도록 만든 줄기세포다. 생식세포를 포함한 여러 세포로 자랄 수 있어, 멸종위기종 개체 복원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이번 연구는 국립생물자원관이 2022년부터 수행 중인 '생물자원 동결보존 사업'의 일환이다. 연구진은 산양의 털 뿌리에서 채취한 체세포를 섬유아세포로 배양한 뒤, Oct4, Sox2, c-Myc, Klf4 등 역분화 유전자를 주입해 줄기세포로 전환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약 19일간 배양한 뒤 세포 형태와 염색체 구조, 줄기세포 특이 유전자 발현 여부 등을 분석한 결과, 유도만능줄기세포로 확인됐다.
줄기세포로 전환된 비율은 약 27%였다. 이는 북부흰코뿔소, 침팬지, 자이언트판다 등 멸종위기 동물을 대상으로 한 해외 주요 연구의 최대 유도율(약 20%)을 웃도는 수치다. 국립생물자원관은 이번 성과가 야생동물 종 특성에 맞춘 줄기세포 유도에 성공한 세계 12번째 사례이며, 국가 기준으로는 7번째라고 밝혔다.
앞서 국립생물자원관은 2023년, 멸종위기 동물 19종의 성체줄기세포를 영하 196℃ 극저온 상태에서 장기 보존할 수 있는 ‘종별 맞춤형 동결보존 기술’을 개발한 바 있다. 당시 확보한 세포들은 해동 후에도 높은 생존율과 배양 안정성을 보였다.
산양은 국내 설악산, 태백산, 오대산, 비무장지대 인근 등에 제한적으로 서식하며, 기후변화와 산불, 폭설 등의 영향으로 개체군 간 이동이 단절되는 일이 늘고 있다. 그 결과, 유전적 다양성이 낮아지고 감염병이나 환경 변화에 취약해질 가능성이 지적돼 왔다. 연구진은 다양한 유전형을 가진 줄기세포 확보를 통해 유전자 구성이 편중된 개체군의 문제를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립생물자원관은 이번 확보한 줄기세포를 바탕으로 생식세포 분화 기술을 고도화하고, 국립생태원, 국립공원공단 등 유관기관과 협력해 인공수정과 개체 복원 연구를 이어갈 계획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8월 중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에 투고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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