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문에서 비범한 향이 나는 이 동물은?

비버

비버의 항문 근처 선낭에서는 향긋한 바닐라 향이 나는 캐스토레움이라는 물질이 나오는데 해리향이라고도 부른다.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비버의 항문 근처 선낭에서는 향긋한 바닐라 향이 나는 캐스토레움이라는 물질이 나오는데 해리향이라고도 부른다.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뉴스펭귄 곽은영 기자] 비버를 가운데 두고 마인드맵을 그려본다면 ‘아이스크림’과 ‘향수’와 같은 단어가 가까이 위치한다. '댐 짓는 동물'로만 익숙한 사람이라면 얼핏 이해가 안 갈 수 있다. 부지런하기로 소문난 이 설치류와 인간들의 기호품 사이에는 무슨 연결고리가 있는 걸까?

그 해답은 비버의 항문에서 나오는 기름진 갈색 분비물에 있다. 암컷과 수컷 비버의 항문 근처 선낭에서 향긋한 캐러멜 또는 바닐라 향이 나는 캐스토레움(Castoreum)이라는 물질이 나오는데 ‘해리향’이라고도 부른다. 과거 각종 음식의 감미료와 향수 등에 사용됐다. 

다만 각종 케이크와 아이스크림 등에 식품첨가물로 이 성분이 사용되더라도 영양성분표에는 비버의 ‘비’자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천연 바닐라 향’으로만 기재됐는데 실제 자연에서 생산된 천연향이기 때문이다. 

실제 바닐라빈을 맺는 나무인 바닐라 플래니폴리아는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와 등 일부 지역에서만 자라는데 열매의 값이 무척 비싸다. 개체수 감소와 서식지 전환 등으로 2017년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 위기(EN)등급으로 분류됐다. 

비버의 항문 분비물로 만든 캐스토레움은 값비싼 바닐라빈을 대체한 천연 향미료로 딸기와 바닐라 향을 보강한다. 문제는 이러한 발견으로 19세기 말 비버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영국 하트퍼드셔대학교의 로버트 칠콧(Robert Chilcott) 교수가 2019년 3월 온라인 미디어 플랫폼 ‘The Conversation’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19세기 말 비버는 이 식품 첨가물과 향을 얻기 위한 인간의 노획 때문에 거의 멸종위기에 처했다. 

식품 첨가물과 향을 얻기 위한 인간의 노획 때문에 거의 멸종위기에 처하기도 했던 비버.(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식품 첨가물과 향을 얻기 위한 인간의 노획 때문에 거의 멸종위기에 처하기도 했던 비버.(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그러나 비버에게서 추출할 수 있는 캐스토리움이 워낙 소수라 고가였던 데다 다행스럽게도 이후 비슷한 향을 내는 바닐린이 침엽수에서 추출된다는 것이 발견되면서 비버도 멸종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지금은 인공적으로 만든 합성 바닐린이 전체 바닐라 향미의 94%를 차지하고 있다. 동물보호법과 대체품으로 이제는 거의 첨가제로 사용하지 않는다. 

캐스토레움은 고급 향수와 조합 향료 재료로도 쓰였다. 동물보호법으로 인공재료로 대체됐지만, 사향노루 수컷의 사향선 분비물인 ‘머스크’, 향유고래 토사물인 ‘용연향’, 사향고양이 수컷에게서 얻은 사향액인 ‘시벳캣’과 함께 비버의 항문 분비물인 ‘카스토르’는 대표적인 4대 동물성 향료로 불렸다. 

비버의 항문은 이들이 수영을 잘하게 된 이유로도 연결된다. 항문에서 나오는 기름을 몸 전체에 바르게 되면 물에 젖지 않는 방수 기능이 강화돼 수중생활이 되고 체온도 유지되기 때문이다. 비버는 앞다리로 온몸의 털에 기름을 문지르고 뒷다리로 털을 다듬는다. 이들의 수중활동을 돕는 또 다른 장치는 뒷발에 있는 물갈퀴와 비늘 같은 모양이 덮고 있는 꼬리다. 꼬리는 길이 30~40cm 정도로 넓고 평평한데 털이 몸이 털과 달리 뾰족하다. 헤엄칠 때 균형을 잡아주고 속도를 내게 돕는 역할을 한다. 

물에서도 사는 탓에 수달과 헷갈릴 수도 있지만 비버는 분류상 설치류에 속한다. 평균 몸길이 60~70cm, 몸무게 20~27kg로 설치류 중 가장 힘이 세다고 알려진다. 크고 튼튼한 앞니가 특징인데 숲과 하천 근처 나무를 앞니로 갉아서 넘어뜨리는 것은 비버에게 일도 아니다. 넘어뜨린 나무는 작게 조각내 필요한 곳에 사용하고 껍질, 가지, 나뭇잎, 뿌리 등을 주로 먹는다. 

물과 땅을 번갈아 가며 생활하는 비버는 가족 단위로 댐을 짓고 오두막 같은 집까지 짓는 생태계 목수로도 유명하다. 18억 원의 가치가 있는 댐을 짓는 등의 기술로 자연의 공학도로도 불린다. 뿐만 아니라 ‘뽀롱뽀롱 뽀로로’에 등장하는 캐릭터인 잔망루피의 모델이기도 하다. 실제 비버는 잔망루피처럼 맨들맨들한 분홍색 피부 대신 기름기 흐르는 잿빛 털이 온몸을 뒤덮고 있다. 그야말로 자연과 문화예술 전반에 수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동물이라고 할겠다. 

<뉴펭이알: 뉴스펭귄의 ‘이거 알아?’>에서는 매주 동물과 환경 상식을 전달한다. 멸종위기종, 생물다양성, 기후변화, 탄소문제와 같은 키워드를 중심으로 헷갈리거나 잘 몰랐던 이야기를 정리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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