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펭귄 이한 기자] “섶섬 연산호들이 축 늘어진 채로 다 누워있어요 수온 때문일까요?”
바닷 속을 수시로 드나드는 한 프리다이빙 강사가 제보한 문자메시지 내용이다. 산호들의 상태가 예전 같지 않다는 내용이다. 어떤 까닭일까?
지난 여름,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이하 파란)에 위와 같은 내용의 문자가 도착했다. 제주도 해역에 고수온 경보가 내려진 지 2주가량 지난 시점이었다. 파란 관계자들은 이후 지난 8월 14일부터 16일까지 서귀포 문섬, 범섬, 송악산 등의 해역에서 수중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바다 수온이 평소보다 높고 산호들의 건강 상태도 심상치 않았다.
이 관계자들은 “조사를 위해 물에 뛰어든 순간 온탕에 들어온 듯 물이 따듯했고 데이터를 확인하니 표층부터 수심 10m까지 수온이 29℃를 나타내고 있었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20~21℃를 오가던 수온이 여름을 맞아 급격히 높아진 것” 이라고 밝혔다.
파란은 지난 8~9월 고수온으로 인한 제주 바닷속 이상 현상을 기록한 이슈 리포트를 발간했다. 아래는 해당 리포트 일부다
"여름을 맞아 산란기를 준비하느라 통통 물이 올라와 있어야 하는 연산호들이 축 처진 채 바위에 겨우 매달려 있었다. 이미 바위에서 떨어져 나가 바닥에서 나뒹구는 산호도 여럿 있었다. 산호들은 물이 흐르지 않는 정조시에 폴립을 잠시 접어두고 몸을 축 뉘어드린 채 휴식을 취하곤 하지만, 우리가 본 산호의 모습은 그 수준을 넘어섰다. 쉬는 것이 아닌 병든 모습이었다."
자료에 따르면 서귀포 범섬과 문섬, 섶섬과 송악산 해역에서 분홍바다맨드라미와 큰수지맨드라미, 밤수지맨드라미, 자색수지맨드라미, 검붉은수지맨드라미, 가시수지맨드라미 등 연산호류 녹아내림 현상이 나타났다.
71일간 이어진 고수온...바다 생태계 이상 생겼나?
이슈리포트에 따르면 지난 7월 24일 해양수산부는 우리나라 일부 바다에 2024년 첫 고수온 주의보를 발령했고, 10월 2일 모든 해역의 주의보를 해제했다. 71일간 주의보가 이어진 셈인데 이는 2017년 고수온 특보 체제가 만들어진 이후 가장 긴 기간이다.
제주도는 충남(천수만), 전남(득량만, 여자만, 가막만)과 함께 71일 전체 기간 특보가 발령된 몇 안 되는 지역 중 하나다. 특히 제주도(추자도 포함)는 71일 중 61일간(7월 31일부터 9월 29일까지) 고수온 경보가 이어졌다.
이런 가운데 서귀포(중문) 8월 평균 수온(30.0℃)은 3년 만에 4.1℃가 올랐다.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졌던 2018년부터 작년 2023년까지 이곳 일평균 수온이 30℃ 이상인 날은 과거에는 없었다.
파란은 “연산호 다수의 개체가 이상 폐사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산호의 기부가 녹아내리는 듯한 모양으로 늘어지다 결국 탈락하거나, 아예 형태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루처럼 부서지는 개체도 다수 확인됐다.
멸종위기야생생물이자 해양보호생물로 지정된 법정보호종인 밤수지맨드라미, 자색수지맨드라미, 검붉은수지맨드라미와 제주바다의 우점종인 분홍바다맨드라미, 큰수지맨드라미, 가시수지맨드라미, 미기록 연산호류 등 이상 현상은 종을 가리지 않고 나타났다.
파란은 리포트를 통해 해양수산부와 제주특별자치도가 고수온 대응 해양생태 관련 조사를 적극 시행해야 하고, 올 여름의 이상 현상과 같은 사태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산호충류 이상 폐사 현상이 확인된 서귀포 앞바다는 국가유산청이 관리하는 천연기념물 제421호 문섬범섬천연보호구역이다. 아울러 천연기념물 제442호 제주연안연산호군락이다. 또한 국가유산청이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산호충류인 해송과 긴가지해송의 집단 서식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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