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펭귄 이수연 기자] 미국 대통령 선거에 뛰어든 부통령 카멀라 해리스와 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기후·에너지정책에 관해 극명하게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지난 2020년 미 대선 승패를 가른 요인 중 하나로 '기후위기'가 꼽혔던 만큼, 이번 대선 후보들의 기후·에너지공약에도 관심이 쏠린다.

지난 1월 미국 콜로라도대 연구진은 2020년 미 대선 당시 유권자 3%가 기후위기 의제 때문에 민주당에 표를 던졌을 것으로 분석했다. 이 의제가 없었다면 도널드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했을지도 모른다는 것. 당시 민주당 득표율은 51.3%, 공화당은 46.9%였다.

현재 해리스와 트럼프가 친기후 대 반기후, 재생에너지 대 화석연료 구도로 팽팽하게 맞서는 가운데, 이번 선거에서도 '기후위기'는 결정적인 의제가 될까. 해리스와 트럼프의 과거 기후·에너지분야 기조, 대선 기간에 내비친 발언, 외신 반응 등을 살펴봤다.

2024 미국 대선에 출마한 두 후보. 왼쪽부터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사진 백악관)/뉴스펭귄
2024 미국 대선에 출마한 두 후보. 왼쪽부터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사진 백악관)/뉴스펭귄

돌아온 기후부정론자 트럼프
파리협정 재탈퇴 선언

트럼프는 기후위기와 지구가열화가 인간 활동 탓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기후위기 부정론자다. 미국의 제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려는 중국의 사기극이라고 말한다. 과거 대통령 시절에는 지구 온도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기준 2℃ 이내로 제한하자는 전지구적 목표인 파리기후협정에서 탈퇴하기도 했다. 그밖에 행정부 웹사이트에서 '기후변화' 페이지를 삭제하고 100개가 넘는 환경 규제를 철회했다.

그런 트럼프가 이번 대선에서 내세운 에너지정책은 '드릴, 베이비, 드릴'이다. 2008년 공화당 전당대회 때 마이클 스틸이 사용한 이 표현은 미국에 매장된 석유와 가스를 최대한 시추(drilling)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는다.

또 트럼프는 재집권에 성공하면 바이든 정부의 기후·에너지정책을 전부 폐지하고, 파리기후협정에서 다시 탈퇴하겠다고 선언했다. 구체적으로 전기차 세금 지원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CNN은 "트럼프가 선거에서 이기면 (바이든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지원과 알래스카 석유·가스 개발 제한이 가장 먼저 없어질 것"이라 내다봤다.

트럼프는 해양대기청(NOAA) 폐지와 환경보호청(EPA)의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예고하기도 했다. 이는 미국 보수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이 발간한 정책 제언집 '프로젝트 2025'에 담긴 내용인데, 트럼프 정부 출신 관료 최소 140명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트럼프가 집권할 당시 환경보호청 수장에 석유업계 로비스트를 임명하기도 했다.

트럼프의 반기후 기조에 해외 환경단체도 우려하고 있다. 영국 기후환경단체 카본브리프는 트럼프가 당선하면 2030년까지 미국 탄소배출량이 최대 4000억톤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유럽연합(EU)과 일본 배출량을 합친 수준이다.

IRA 혜택 누리는
공화당 지역구가 변수

물론 화석연료로 돌아가려는 트럼프의 계획에도 한계가 있다. 2022년 시행된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 사업 혜택을 공화당 지지 지역구에서 더 많이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조지아주는 현대차 전기차 공장 건설을 위해 53억 달러 자금을 받은 바 있다. 

IRA로 지원 혜택을 받던 공화당 강세 지역구를 의식해서라도 IRA 폐지를 쉽게 주장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는 IRA 시행 후 10억 달러(약 1조3600억원)가 넘는 대규모 재생에너지 프로젝트 51개 중 43개(84%)를 공화당 지지 지역구에서 추진 중이라고 보도했다.

일관된 기후정치의 주역
화석연료 강경파 해리스

해리스는 2005년 검사 시절 미국 최초로 '환경 정의' 부서를 만들었을 만큼 20년 전부터 환경 관련 활동을 꾸준히 이어왔다.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 시절에는 셰브론과 BP 등 화석연료 대기업들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합의금 약 700억원을 받아냈다.

2019년 대선에서 민주당 경선 후보였을 당시 "탄소중립 경제 달성을 목표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10년간 10조 달러의 공공 및 민간 자금을 제공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프래킹 공법으로 자원을 추출하는 방식을 금지하겠다고 발표했다. 프래킹 공법은 지하에 매장된 석유·가스를 추출할 때 쓰이는 공법 중 하나로, 지진을 유발하고 환경을 파괴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또 공공 토지에서 화석연료 임대를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해리스는 아직 뚜렷한 기후·에너지정책을 내놓지 않았지만 IRA 등 바이든 정부의 기조를 따를 것으로 보인다. 2022년 부통령 시절 해리스는 IRA 표결 때 찬반이 50대 50으로 엇갈린 상황에서 마지막 찬성표를 던져 법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미국 헌법은 상원 표결에서 찬반 수가 같으면 상원의장인 부통령이 한 표를 행사해 법안 통과 여부를 정한다.

이번 대선에서 해리스는 러닝메이트로 친기후 정치인을 지명하기도 했다. 해리스의 러닝메이트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는 2040년까지 주의 전력을 100% 무탄소 에너지로 운영해야 한다는 법안에 서명했던 정치인이다. 기후위기 대응에 앞장서온 미국 전 부통령 앨 고어도 공개적으로 해리스를 지지했다. 블룸버그는 "해리스가 바이든보다 화석연료 산업계에 더 강경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2019년과 달리
'프래킹' 빼버린 이유 

이러한 해리스도 친환경 정책을 마냥 견지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해리스와 트럼프 대선 승패를 가를 경합주(Swing State) 중 하나인 펜실베이니아주는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천연가스 생산지이기 때문이다. 이때 프래킹 금지를 내세우는 건 해리스로서 위험한 선택인 셈. 해리스 캠프는 최근 "프래킹 금지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2019년과 다른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5일 로이터는 "해리스는 연설에서 기후위기라는 단어를 일곱 번이나 언급했지만 프래킹, 석유라는 단어는 꺼내지 않았다"며 모호함을 지적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뉴스펭귄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