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펭귄 이동재 기자] 강원도에서 산양 개체수가 크게 줄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을 막기 위해 설치한 울타리가 산양의 길을 막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널뛰는 날씨에 따른 폭설과 인간에 의한 서식지 파괴가 산양의 수명을 재촉했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1964년 겨울, 3000마리의 산양이 죽었다. 폭설이 왔고 눈에 갇힌 양을 사람들이 때려잡아 팔았다. 그 다음해에도 같은 이유로 3000마리가 넘는 산양이 목숨을 잃었다. 이에 1968년 정부는 산양을 천연기념물 제217호로 지정했지만 불법 포획과 서식지 제한으로 개체수는 계속해서 줄었고 결국 2012년 멸종위기야생생물1급에 지정됐다.(한국동식물도감 제7권)
1964년 겨울로부터 60여년이 흐른 지금 산양은 또 다시 커다란 생존의 위협을 맞닥뜨렸다. 지난 4월 초를 기준으로 500여마리의 산양의 폐사가 강원도 지역에서 확인됐고, 사체 발견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원인으로 지목된 것은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의 확산을 막기 위해 강원도 등 지역에 집중적으로 설치된 울타리다.
사정은 이렇다. 작년 11월부터 시작해 여러 차례 폭설이 내렸다. 많은 양의 눈은 예로부터 산양에게 위협적인 재난이었다. 눈이 쌓이면 먹을 것을 찾기 힘들어지니까. 그래도 괜찮았다. 이미 수만년 동안 산양은 눈이 많이 왔을 때 살아남는 법을 배웠다. 일단은 눈이 많이 쌓인 곳을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먹을 것을 찾으면 된다.
산양은 그렇게 몸을 움직였다. 그런데 높고 단단한 무언가가 앞을 가로막았다. 오른쪽으로 움직여본다. 끝이 없는 듯하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이번엔 왼쪽으로 걸어본다. 걸어도 걸어도 끝없이 이어지는 철 울타리에 어쩔 줄 모르고 헤맨다. 뒤로 돌아갈 순 없다. 그곳에는 이미 먹을 것이 없다. 그렇게 오래도록 굶주리고 추위에 떨며 울타리 앞을 서성인다. 자꾸 힘이 빠진다. 결국 울타리 앞에서 털썩 쓰러진다.
그렇게 올 겨울 전체 개체수의 4분의 1이 넘는 산양이 싸늘히 식었다. 민간인 통제 구역, 산불 예방을 위한 탐방로 통제 구역 등 아직 피해 확인이 시작되지 않은 곳도 있는 것을 감안하면,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산양이 폐사체로 발견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자연의벗연구소에서 진행한 산양 떼죽음 대책에 관한 긴급토론회에 참석한 정인철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사무국장은 "산양이 맞이한 생존의 위협은 단순히 폭설 때문만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인간에 의한 서식지 파괴가 이미 오래 전부터 이뤄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정 사무국장은 "산양의 주요 서식지인 설악산 국립공원은 인간의 활동으로 이미 굉장히 파편화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탐방로는 계속해서 늘고 있고, 서식지를 가로질러 도로가 깔리고 있으며, 심지어 케이블카 설치에 대한 논의까지 이뤄지고 있다”며, “서식지가 줄어들면서 산양과 같은 동물들이 활동할 곳을 잃고 로드킬 등 위협에 노출됐다”고 설명했다.
인간에 의한 서식지 파괴가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기후위기로 잦아지고 있는 폭설과 2019년부터 설치된 ASF 울타리 문제가 더해졌다. 이번 참사가 일어난 배경이다.
정 사무국장에 따르면, 현재 천혜의 산양 서식지 중 한 곳인 화천의 한묵령 지역에도 동서녹색평화도로가 깔리고 있다. 군사 지역이기 때문에 도로 주변으로 일반 울타리보다 훨씬 단단한 철책이 설치되고 있다. 산양의 이동은 당연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
정 사무국장은 “철원, 화천, 양구, 인제, 고성에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산양에게 치명적인 또다른 울타리와 철책들이 계속해서 설치되고 있는 것”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정 사무국장은 오색케이블카 사업에 의한 산양 서식지 파괴 문제에도 깊은 우려를 표했다. 오색케이블카 사업은 1982년 양양군이 관광 활성화를 목적으로 처음 제안한 사업이다. 그동안 산양 서식지 위협, 천연기념물 보호 구역 등을 이유로 불발돼오다가, 지난해 5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돛을 달았다.
정 사무국장은 “산양 관리에 대한 총체적 부실들이 드러나고 있다”며, “정부가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울타리 등에 대한 위험 영향에 대한 연구, 현장 관리에 대한 개선책이 마련되고 있는지 밝히고 책임을 져야한다”고 주장했다.
산양은 천연기념물이다. 따라서 천연기념물 관리 주관 부처인 문화재청이 산양 보호에 책임을 갖는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이니, 지정의 주체인 환경부에도 산양 보호의 의무가 있다. 국립공원 안에 사는 산양들을 관리하고 종 복원의 임무를 수행하는 국립공원공단 등 환경부 산하 기관과 현장에서의 역할을 위임받은 지자체들도 책임의 주체다.
환경부는 이미 산양 집단 폐사와 관련된 보도가 널리 알려진 이후였던 지난달 22일 ASF 차단울타리 관리 개선을 주제로 간담회를 열었지만, 간담회 내용이 정부가 산양 관련 내용은 빼고 주민 불편 해소에만 집중됐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에 환경부는 ASF 확산세가 이어지고 있어 아직 울타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장기적으로 울타리 효과 분석 용역을 수행해 관리 개선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오는 12일 환경부는 강원 북부지역 산양보전을 위한 관계 기관 자문회의를 개최, 강원도 북부지역 일원의 산양 폐사 발생 원인을 분석하고, 폭설ㆍ산불 등 자연재해 발생시 산양의 피해를 줄이는 등의 산양 보전방안을 논의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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