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펭귄 이수연 기자]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다 끝난 줄 알았던 갯벌에 여전히 살고 있는 생명과, 그 생명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수라>가 7년 만에 세상에 나왔다. <수라>를 만든 황윤 감독이 기록하고 싶었던 아름다움은 무엇이었을까. 뉴스펭귄이 직접 그 이야기를 들어봤다.
2006년 3월, 대법원은 새만금 간척사업을 해도 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간척에 따른 환경파괴가 심각하다는 점이 입증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황윤 감독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갯벌을 기록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전북 부안의 계화도갯벌로 향했다.
하지만 촬영은 이어지지 못했다. 촬영 당시 숙식을 도와준 어민 류기화 씨가 간척지 방조제 사고로 바다에서 세상을 떠났고, 황 감독에게 새만금은 트라우마로 남았다.
2015년 우연히 오동필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장을 만나기 전까지 황 감독은 갯벌을 기억에서 지웠다. 오 단장은 새만금에서 10년 넘게 물새와 갯벌을 조사하고 있다고 했다. 새만금 간척사업이 진행되는 동안 갯벌은 이미 다 죽었다고 생각한 황 감독은 '갯벌이 없으면 물새도 살 수 없는데 어떻게 조사가 가능한지' 궁금했다.
그렇게 오 단장을 따라 수라갯벌에 처음 갔던 날 멸종위기종 Ⅰ급인 저어새 150여마리를 봤다. 황 감독은 "갯벌에 아직 생명이 살아 있고 그들을 조사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다 끝난 싸움이라고 단정했던 스스로가 부끄럽고 미안했다"며 "그때부터 다시 갯벌을 기록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지난 6일 서울독립영화제가 한창인 압구정의 한 영화관에서 황윤 감독을 만났다. 그는 "군산으로 이사 와서 우연히 오 단장을 만난 것부터 의도치 않게 새만금신공항 반대소송 중인 시기에 영화가 나온 것까지 모두 운명적"이라고 말했다.
Q. '수라'의 뜻이 궁금하다
A. "사실 '수라'는 지명이 아니다. 오 단장이 새만금의 마지막 갯벌에 붙인 이름이다. 갯벌 인근 남수라마을에서 가져왔는데 수라는 '비단에 수를 놓은 듯 아름답다'는 뜻이라고 한다. 아시겠지만 '새만금'도 지명이 아니다. 갯벌 간척사업을 위해 붙여진 이름인데, 만경평야의 '만'과 김제평야의 '김(금)'을 합쳐 평야만큼 넓은 땅을 만들겠다는 의미다. 예부터 지역 주민이 작은 단위의 갯벌마다 붙여준 이름을 무시하고 '새만금'으로 통칭한 것이다. 수라갯벌만큼은 제대로 이름을 불러줘야 한다. 이름도 모르면서 지킬 수는 없지 않나."
영화에서도 오 단장은 "갯벌이라는 이름을 놓지 않으면 언젠가 갯벌로 돌아간다. 그래야 살릴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황 감독과 함께 갯벌의 이름을 친구처럼 부른다. "수라야."
Q. 영화에서 직접 내레이션에 참여했는데, 가장 좋아하는 문장을 꼽는다면
A. "사실 다 좋은데 그중에서 '군산에 살면서 계절의 변화를 달력이 아니라, 새들의 오고 감으로 느끼게 되었다. 기러기와 잿빛개구리매가 오면 겨울이 온 것이고, 그들이 가면 봄이 온 것이다. 도요새가 오면 봄이 온 것이고, 그들이 가면 여름이 시작되는 것이다'라는 문장이 마음에 든다. 여기 오니까 새들을 통해 계절을 감각할 수 있어서 좋다."
황 감독은 새만금 간척사업이 국가폭력에 의한 '학살'이라고 말한다. 2만명이 넘는 어민들은 일터를 잃었고 갯벌 생태계는 파괴됐다. 새만금에서 수많은 생명이 사라질 동안 마지막까지 남은 수라갯벌은 국토교통부가 총 8077억원을 들여 추진하는 새만금신공항 예정지다. 황 감독은 "수라갯벌을 신공항 건설로부터 지키는 일이 조사단과 몇몇 활동가만의 싸움이어선 안 된다. 그렇게 해서는 지킬 수 없다"고 주장했다.
Q. 수라갯벌에 새만금신공항을 지으면 어떤 문제가 생기는가
A. "(국토교통부 신공항 개발사업 계획안에 따르면) 신규로 건설할 활주로의 길이가 2.5㎞인데, 대형 항공기가 이착륙하기 위해서는 최소 3㎞ 길이의 활주로가 필요하다. 수라갯벌 인근 미군기지를 확장하려는 의도는 아닌지 우려된다. 매일 수라갯벌 상공을 이동하는 수많은 새들과 '버드 스트라이크(조류 충돌)' 참사도 위험하다. 무엇보다 갯벌은 연간 26만톤의 탄소를 흡수하는데 여기에 신공항을 만드는 건 기후위기에 역행하는 일이다. 게다가 군산에는 이미 적자 공항이 있다."
가장 멀리 이동하는 철새인 도요새는 장거리 비행 중에 중간 기착지로 새만금 갯벌에서 쉬어 간다. 그러나 새들의 하나뿐인 휴게소 새만금 갯벌이 거의 사라진 바람에 붉은어깨도요는 전 세계 개체수의 20%가 줄었다. 황 감독은 "새만금에 이제는 붉은어깨도요가 보이지 않는다"며 "수백년에 걸쳐 진화된 위대한 생명을 인간이 무슨 자격으로 멸종까지 몰아갈 수 있냐"고 말했다.
아직 희망은 있다. 지금도 수라갯벌에는 저어새를 비롯해 검은머리갈매기, 쇠제비갈매기, 꼬마물떼새, 흰발농게 등 멸종위기에 처한 생물 40여종이 살고 있다. 그리고 '갯벌은 더 이상 생태적 가치가 없다'는 주장에 맞서 생명의 흔적을 하나씩 찾아내는 사람들이 수라갯벌을 지키고 있다.
Q. <작별>, <어느 날 그 길에서>, <잡식가족의 딜레마>, 이번 <수라>까지 20년 넘게 동물의 이야기를 영화로 보여주고 있다. 뭇 생명을 향한 황 감독의 '꺾이지 않는 마음'은 어디에서 오나
A. "생명의 아름다움을 계속 보는 것이 원동력이 된다. 이번 영화에서는 매립공사 중인 땅 옆에서 어미를 기다리는 새끼 쇠제비갈매기가 특히 사랑스러웠고, 도요새의 군무는 황홀했다. 실제 도요새가 툰드라에서 호주까지 긴 여행을 할 때 어미새가 먼저 떠나고 아기새가 나중에 따라온다고 한다. 도요새가 매년 장거리를 이동한다는 자체도 신비로운데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새들이 망망대해를 날아간다고 상상하니 경이롭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아름답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그들을 지켜야한다는 당위를 넘어서 나도 잘 살아야겠다는 용기를 얻는다. 앞으로도 내게 힘을 주는 동물들의 이야기를 영화를 통해 전달하는 '통역사' 역할을 하고 싶다. 카메라를 들 힘이 있는 한 계속해서 그런 삶을 살고 싶다."
Q. 아름다운 것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A. "영화를 통해 수라갯벌이 어떤 곳인지 간접적으로 경험했다면 이제는 와 보시길 바란다. 직접 수라갯벌을 만나면 더 사랑하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지킬 힘도 생긴다. 수라갯벌의 많은 부분을 영화로 보여 주려고 했지만 갈대밭 사이를 걸을 때의 촉감, 부드러운 흙과 물을 만질 때의 느낌은 카메라에 담을 수 없다. 게다가 요새 아이들은 자연을 접할 기회가 너무 없다. 우리 주변에서 살아 숨 쉬는 야생의 아름다움을 체험하고 느끼게 해주면 좋겠다."
한편, 영화 <수라>는 제48회 서울독립영화제 장편경쟁 부문에 초청돼 오는 8일까지 상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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