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재포장' 언제까지 비닐로?…기업 4곳 답변은

  • 이수연 기자
  • 2023.11.23 09:47
재포장 금지법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 라면 묶음포장.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재포장 금지법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 라면 묶음포장.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뉴스펭귄 이수연 기자] 불필요한 포장 폐기물을 줄이기 위해 재포장 금지법이 나온 지 2년 반. 재포장 금지 적용 대상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예외에 속하는 제품은 여전히 포장 쓰레기를 양산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라면 4~5개입 묶음포장이 그렇다. 재포장 금지법이란 낱개로 판매하는 제품들을 비닐이나 플라스틱 포장재로 묶어 판매하는 행위를 규제하는 법이다.

 

재포장 금지법 2년,
'라면' 묶음포장은 예외

재포장 금지법 시행으로 우유, 샴푸, 탄산음료 등을 비닐로 재포장하던 방식에서 띠지나 고리로 바뀌는 효과가 나타났다. 환경부는 2개 이상을 띠지나 고리로 묶는 재포장은 허용한다. 예외도 있다. 3개 이하 묶음포장은 금지하지만 라면 묶음포장 등 4개 이상부터는 재포장이 가능하다. 또 합성수지 재질만 금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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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뉴스펭귄>이 대형마트를 방문했을 때 탄산음료 등은 고리로 묶여 판매됐지만 라면 묶음포장에는 비닐이 사용됐다. 시민들과 환경단체는 이러한 예외 조항이 재포장 금지법의 취지를 방해하고 과도한 포장 쓰레기 문제를 일으킨다고 지적한다.

재포장 금지법 시행 이후 고리로 묶여 팔리는 탄산음료. 2개 이상 제품을 띠지나 고리로 묶는 경우 금지 대상이 아니다.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재포장 금지법 시행 이후 고리로 묶여 팔리는 탄산음료. 2개 이상 제품을 띠지나 고리로 묶는 경우 금지 대상이 아니다.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실제 시민들은 재포장 금지법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제로웨이스트 가게 4곳으로 이뤄진 재포장 어택팀 '꽃도안녕'은 지난 9월부터 3달간 재포장 금지법 인식에 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시민 355명 중 '재포장 금지법 시행으로 포장 쓰레기가 줄었다고 생각한다'는 응답은 34.4%, '그렇지 않다'는 65.6%로 나타났다. 또 응답자의 95.2%는 '4개 이상 제품 재포장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22일 오전 꽃도안녕과 서울환경연합은 이러한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환경부는 재포장 금지법 대상을 개수와 재질에 예외 없이 확대하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라면 묶음포장 비닐 옷을 입은 해골 모형을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 설치하는 퍼포먼스도 진행했다.

라면 묶음포장 비닐로 만든 옷을 입은 해골 모형. (사진 서울환경운동연합)/뉴스펭귄
라면 묶음포장 비닐로 만든 옷을 입은 해골 모형. (사진 서울환경운동연합)/뉴스펭귄

 

대안은 띠지 붙이기?
라면 4사 "어렵다"

띠지 묶음포장으로 바꾼 라면도 있다. 농심은 플라스틱 포장재 사용을 줄이겠다며 일부 라면 묶음포장 방식을 띠지로 변경했다. 스티커로 된 띠지를 붙여 4개 제품을 감싸는 형태다. 먼저 2021년 6월 생생우동에 도입했으며 지난해 4월 둥지냉면에도 적용했다. 농심은 재포장 방식 변경으로 매년 비닐 27톤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여기에 쓰인 띠지는 종이가 아닌 플라스틱(PVC) 스티커 재질이다. 게다가 두 제품은 면이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있어 띠지 포장으로도 유통 과정에 문제가 없다는 게 농심의 설명이다. 다른 라면 중에 띠지로 묶음포장한 제품은 아직 없다. 띠지를 도입하면 제품 파손 위험이 있고 생산 비용도 증가한다는 이유로 기업들은 비닐을 포기하지 못한다.  

<뉴스펭귄> 취재 결과, 라면업계 4사 모두 묶음포장 방식을 비닐에서 띠지로 변경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오뚜기 관계자는 "띠지도 스티커라 과연 환경에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면서 "대신 라면업계 최초로 포장재에 친환경 수성잉크를 사용하고 있고, 진라면 묶음포장 비닐도 재활용이 쉽도록 복합재질에서 단일재질로 변경했다"고 말했다.

삼양 관계자는 "폐기물 감축이라는 취지엔 공감하지만 띠지를 사용하면 뜯을 때 봉지가 훼손될 수 있고 띠지는 대부분 수작업이라 가격인상 요인이 될 수 있다"면서 "접착제가 붙은 띠지는 비닐과 동일하게 소각 대상이기 때문에 부피 감소 외에 다른 이점이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농심 관계자는 "현재 공장이 자동화돼서 띠지로 바꾸려면 설비 자체를 교체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며 "신라면 등 묶음포장 비닐에 잉크 인쇄를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팔도 관계자는 "유통할 때 파손이 발생할 수 있어 비닐이 아닌 재질로 재포장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답했다.

라면 묶음포장 방식을 띠지로 바꾼 사례.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라면 묶음포장 방식을 띠지로 바꾼 사례.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편의점처럼 낱개 구매도 할인
"재포장과 같은 할인율 적용해야"

앞선 재포장 금지법 인식 설문조사에서 시민 355명에게 재포장 선호 이유를 묻자 76.1%는 '낱개 구매보다 저렴할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 재포장 어택팀 꽃도안녕은 "낱개로 구매했을 때도 할인이 된다면 굳이 재포장을 선택하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에 환경단체는 재포장 금지법을 4개 이상 제품까지 확대해 포장 폐기물을 줄이면서도, 편의점처럼 '1+1' 혹은 'N+1' 상품을 낱개로 구매할 때도 묶음포장과 같은 할인율을 적용해 구매율을 유지하는 대안을 제시했다.

박정음 서울환경연합 활동가는 "라면 4~5개를 낱개로 샀을 때도 묶음포장 때와 할인율이 같다면 소비자들은 낱개로 구매할 것"이라며 "편의점은 소비자가 직접 1+1 상품을 낱개로 가져와서 계산해야 하는데도 구매율이 높다는 점에서 재포장이 정말 필요한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재포장 금지법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 라면 묶음포장.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재포장 금지법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 라면 묶음포장.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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