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시대 끝낼 유리병, 재활용보다 재사용?

  • 이수연 기자
  • 2023.11.08 14:59
깨끗이 씻어 집에서 다시 사용하기 위해 모은 유리병.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깨끗이 씻어 집에서 다시 사용하기 위해 모은 유리병.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뉴스펭귄 이수연 기자] "자원순환을 고려해 유리병 제품을 구매하지만 결국 집에 쌓인 병이 너무 많아지더라. 혼자서 재사용하는 건 한계가 있으니 기업에서 나서서 재사용해 주길 바란다."

시민 문수진 씨는 유리병재사용시민연대가 모집한 '재사용 탐정단'으로 활동한 후 이같이 말했다. 문 씨를 비롯한 재사용 탐정단 35명이 지난 10월 가정에서 사용하는 식음료 제품 1409개를 조사한 결과, 유리병에 든 제품은 702개(49.8%)였으나 그중 64(9.1%)개만 재사용할 수 있는 유리병 제품이었다. 현재 유리병 재사용을 운영하는 곳은 생활협동조합 한살림 1곳에 불과하므로 한살림 제품을 제외하면 모두 일회용 유리병 제품인 셈이다.

또 가정에서 발견한 유리병 식음료 제품 702개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상위 10개 기업은 오뚜기, 이마트(노브랜드/피코크), 대상(복음자리), 청정원, 샘표(폰타나), 롯데칠성, 농심, 코카콜라, CJ, 광동제약 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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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참가자 곽성미 씨는 "대형마트 등 대기업이 나서서 수거하면 되돌아오는 유리병 양이 많아져 재사용도 해볼 만하지 않겠느냐"고 전했다.

(사진 유리병재사용시민연대)/뉴스펭귄
(사진 유리병재사용시민연대)/뉴스펭귄

 

플라스틱 대체재 유리병,
재사용 안 하면 오히려 환경오염?

유리병 재사용이란 빈 병을 다시 회수해 세척·소독을 거쳐 그대로 새 유리병으로 탈바꿈하는 순환 과정을 말한다. 색상별로 분류한 유리병을 분쇄해 유리병의 원료로 만드는 '재활용'과는 다르다. 현재 유리병 재사용은 맥주, 소주, 탄산음료에 한해서 빈용기 보증금제로 이뤄지고 있다. 

유리병이 플라스틱의 대체재로 주목받는 이유는 내용물이 용기와 반응하지 않아 미세플라스틱으로부터 안전하고 오래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리병이 그 자체로 친환경은 아니다. 생산 과정에서 플라스틱보다 탄소배출량이 2배 이상 많기 때문이다. 500㎖ 용기 기준 페트병의 평균 탄소배출량은 65g, 유리병은 177g이다.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내 폐유리 87%는 유리병을 만드는 데 쓰인다. 버려진 유리병 대부분을 다시 유리병으로 만든다는 얘기인데, 모든 유리병을 다 재활용할 순 없다. 깨진 유리나 투명색·녹색·갈색 외 다양한 색상을 지닌 화장품병, 와인병은 재활용이 어려워 소각·매립한다. 유리병은 땅에서 썩는 데 약 100만 년이 걸린다.

그러나 유리병은 한 번만 재사용해도 탄소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 자원순환단체 리루프(Reloop)에 따르면 유리병을 한 번 재사용하면 탄소배출량이 40% 감소하고, 다섯 번 재사용하면 85% 절감한다.

 

"플라스틱 줄이는 방법은
유리병 재사용뿐"

유리병재사용시민연대와 한국환경회의는 7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탄소중립과 탈플라스틱 사회로의 전환을 위해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를 재사용 용기로 전환하고 특히 유리병 재사용 체계를 마련하라"고 정부와 기업에 요구했다. 구체적으로 주류 등 일부 유리병에만 적용했던 반환 시스템을 전체 식음료 유리병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기자회견에 참여한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이번 국제 플라스틱 협약에서 모범을 보여야 할 우호국 연합에 속한 우리나라는 플라스틱 생산 제한보다 재활용을 최우선에 두고 있다"며 "플라스틱 사용량과 탄소배출량을 줄이고 미세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유리병 재사용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플라스틱 오염을 끝내기 위해 만들어진 국제 플라스틱 협약의 3차 회의는 오는 13일 케냐에서 열린다. 한국은 2024년 말 마지막으로 열리는 5차 회의를 개최하겠다고 자원했다.

 

해외에선 정부도 기업도,
유리병 재사용 시대

해외에서는 유리병 재사용에 정부와 기업이 적극 나서는 분위기다. 

지난 9월 오스트리아에 있는 코카콜라는 유리병 재사용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120억 유로(약 167억원)를 투자했다. 6월에는 영국 런던 남부와 잉글랜드 남부에서 유리병에 담은 코카콜라 제로슈가를 소비자 집 앞으로 배달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빈 유리병을 집 밖에 놔두면 식음료 배달 서비스 회사가 회수해 세척을 거친 뒤 다시 콜라를 채워 배달하는 방식이다.

독일은 2019년 포장재법을 발효하고 2022년까지 모든 식음료 유리병 재사용률 목표를 70%로 정했다. 프랑스는 올해부터 호텔·레스토랑·카페에서 식기 및 용기 재사용을 의무화했다. 이에 펩시는 펩시콜라, 세븐업, 미린다 등 탄산음료 유리병 규격을 통일했다.

유리병 규격을 통일한 펩시. (사진 주식회사 펩시코 pepciCo)/뉴스펭귄
유리병 규격을 통일한 펩시. (사진 주식회사 펩시코 pepciCo)/뉴스펭귄

 

유리병 재사용 국내기업 1곳
확대 위해 필요한 4가지

우리나라 정부는 현재 유리병 재사용을 촉진하기 위해 유리병을 반환한 사람에게 보증금을 돌려주는 빈용기 보증금제를 시행하고 있다. 현재 소주, 맥주, 탄산음료 유리병만 보증금제를 적용하지만, 지난해 기준 회수율 96%에 달할 정도로 활성화됐다.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는 유리병 재사용이 새로운 병을 만드는 것보다 탄소 약 17만 톤을 줄이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병 한 개당 원가 88원을 절감하는 경제적 효과도 있다.

국내 기업 중 지난 10년간 유일하게 유리병 재사용을 실현해온 생활협동조합 한살림은 현재 잼류, 젓갈류, 장류, 소스류 등 70개 제품에 재사용 유리병을 적용하고 있다. 반환 시스템을 운영해 소비자가 유리병을 되돌려주면 포인트를 적립해주며, 모인 유리병은 자체 시설에서 씻어 다시 사용한다. 

권옥자 한살림연합 상임대표는 "우리 운영방식을 다양한 식음료 기업까지 확대하기 위해선 식품용 유리병 규격 통일, 회수거점 확보, 전문 세척업체 확대, 재사용 참여기업 지원에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며 "정부는 유리병 재사용을 자원순환 정책으로 채택하고 민간과 협력해 순환경제에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한살림에서 운영해온 유리병 재사용. (사진 녹색연합)/뉴스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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