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뒷간①] '똥을 흙으로'...이 학교의 특별한 화장실

  • 이수연 기자
  • 2023.11.03 13:44

16년째 생태뒷간 쓰는 고등학교 가보니

인천 강화군 산마을고에서 16년째 사용하는 생태뒷간.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인천 강화군 산마을고에서 16년째 사용하는 생태뒷간.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뉴스펭귄 이수연 기자] '바지를 내린다', '힘을 준다', '톱밥으로 그것들이 보이지 않게 덮는다', '휘파람을 불며 손을 씻는다'…

인천 끝자락 강화도에 있는 대안학교 산마을고등학교 화장실에는 이런 안내문이 있다. 보통의 화장실과 사용 방법이 달라서다. '볼일'을 본 후 물을 내리는 대신 변기에 톱밥을 뿌린다. 톱밥과 섞인 채 모인 분뇨는 숙성을 거쳐 비료로 변신한다. 똥을 흙으로 퇴비화하는 이 화장실 이름은 '생태뒷간'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수세식 화장실은 한 번 사용할 때 물 12리터가 필요하다. 하루 7번 정도 화장실을 간다고 했을 때 2리터 생수 42통이 필요한 셈이다. 생태뒷간은 이같이 물 사용량이 많은 수세식 화장실의 대안으로 여겨진다. 물을 소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재래식 화장실과 유사하지만 가장 큰 차이로는 악취와 벌레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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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수세식 화장실은 '쓸모없는' 배설물을 버리는 곳이라면 생태뒷간은 먹고, 배출하고, 작물을 길러 다시 먹는 순환 시스템의 중심에 있다. 지난 1일에는 16년째 생태뒷간으로 상생의 가치를 실현하는 산마을고에 찾아갔다.

생태뒷간 사용 설명서.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생태뒷간 사용 설명서.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오늘 싼 똥, 3년 뒤 흙으로

산마을고 생태뒷간은 여성용 두 칸, 남성용은 소변 전용칸을 포함해 세 칸으로 나뉜다. 2006년 인천 강화도로 학교를 이전한 후 '자연, 평화, 상생'이라는 교육 철학에 더 초점을 맞춘 산마을고는 이듬해 2007년 생태뒷간을 지었다. 당시 학생들도 만드는 일에 함께 참여했다.

생태뒷간은 성인 두 명이 들어가면 꽉 찰 정도의 크기다. 직접 들어가 보니 화장실 특유의 냄새가 없었다. 단순히 변기와 톱밥통만 놓여 있고, 변기통을 열면 분뇨를 덮은 톱밥이 담겨 있다. 이 통에 분뇨와 톱밥이 어느 정도 채워지면 퇴비장으로 옮겨 약 3년간, 3단계에 걸친 숙성을 시작한다.

생태뒷간 외부.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생태뒷간 외부.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생태뒷간 내부.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생태뒷간 내부.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먼저 가장 오른쪽 퇴비칸에는 한 학기 동안 발생하는 생태뒷간 분뇨, 급식 잔반, 텃밭 잡초 등을 한데 모아 톱밥과 섞어 보관한다. 이후 옆 퇴비칸으로 옮겨 두꺼운 천막을 덮고 1년을 기다린다. 천막으로 덮으면 열이 발생하면서 미생물 활동을 촉진해 잘 썩는다. 마지막으로 바깥으로 옮겨 투명 비닐을 씌운 상태로 또 1년을 보내면 텃밭에 쓸 수 있는 퇴비가 만들어진다. 산마을고 퇴비장에선 이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왼쪽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3년에 걸쳐 퇴비화가 이뤄지는 과정. 산마을고 퇴비장에선 이 모든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왼쪽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3년에 걸쳐 퇴비화가 이뤄지는 과정. 산마을고 퇴비장에선 이 모든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잘 숙성하면 탁월한 비료로 쓰여
"더럽다는 인식보다 소중한 자원"

사람은 가축과 달리 항생제나 예방약을 수시로 먹지 않기 때문에 몸에서 나오는 배설물이나 먹고 남은 음식물을 잘 숙성하면 퇴비로 쓰기에 충분하다. 퇴비화 과정에 미생물이 생산하는 천연 항생물질 때문에 해충은 물론 바이러스도 침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톱밥과 함께 오래 숙성한 분뇨는 실제 작물 성장을 돕는 '탁월한' 비료가 된다. 

산마을고에선 학교 텃밭에서 난 작물을 먹고 배출한 똥을 퇴비로 만들어 텃밭으로 돌려보내는 순환이 이뤄진다. 한편, 따로 모은 소변은 물에 희석해 한동안 액비로 쓰다가 지금은 주변 나무에 뿌려주고 있다. 톱밥은 학생들이 일구는 논에서 쌀을 도정하고 남은 쌀겨와 왕겨를 사용한다. 학생들은 이 모든 과정에 참여해 생태적 삶을 몸에 들인다. 

농사수업을 담당하는 교사 이지수 씨는 "옛날 동양에서는 똥을 모아야 금이 모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똥을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서양의 생활양식으로 바뀌면서 똥은 더럽고 버려야 하는 무언가로 인식됐다"면서 "물론 불쾌한 냄새가 날 수도 있지만 다시 흙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소중한 자원"이라고 말했다.

그는 "물을 써야만 하는 화장실은 그만큼 탄소배출량도 많다. 지구 자원이 점점 고갈하는 때에 자연과 상생하지 못하고 계속 쓰고 버리기만 한다면 내일 마실 물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급식 잔반을 퇴비장으로 옮기는 학생들. 퇴비장에선 생태뒷간 분뇨, 급식 잔반, 텃밭 잡초를 한데 모아 숙성한다.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급식 잔반을 퇴비장으로 옮기는 학생들. 퇴비장에선 생태뒷간 분뇨, 급식 잔반, 텃밭 잡초를 한데 모아 숙성한다.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급식 잔반을 퇴비장으로 옮기는 학생들. 퇴비장에선 생태뒷간 분뇨, 급식 잔반, 텃밭 잡초를 한데 모아 숙성한다.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급식 잔반을 퇴비장으로 옮기는 학생들. 퇴비장에선 생태뒷간 분뇨, 급식 잔반, 텃밭 잡초를 한데 모아 숙성한다.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학생들 반응은 어떨까
"처음엔 거부감...이젠 순환이 친숙"

실제 생태뒷간을 사용하는 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산마을고 3학년 강민주 학생은 생태뒷간에 거부감이 들어 입학 후 한 번도 생태뒷간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올해 수세식 화장실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배우면서 처음 생태뒷간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강민주 학생은 "처음 걱정과 달리 벌레나 냄새가 없고 편해져서 지금은 친구들에게 권유할 정도로 애용한다"고 말했다.

산마을고 2학년 주예은 학생은 "자연으로 돌아가서 다시 나에게 오는 것들이 가까이 있음을 체감한다"면서 "우리가 먹고 배출하는 게 환경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막상 생태뒷간 사용해보면 어렵지 않아서 환경을 위해 조금이나마 실천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올해 산마을고에 입학한 1학년 배고준 학생은 "지금 생태뒷간 청소를 담당하고 있는데, 직접 퇴비장으로 옮긴 똥이 흙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면 순환의 과정이 더 친숙하게 다가온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생태뒷간 앞에서 이야기 나누는 산마을고 배고준, 주예은, 강민주 학생.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왼쪽부터 생태뒷간 앞에서 이야기 나누는 산마을고 배고준, 주예은, 강민주 학생.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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