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수리부엉이 서식지를 다리가 관통할 겁니다"

  • 이수연·임병선 기자
  • 2023.07.10 17:02

[뉴스펭귄 이수연·임병선 기자] "저기 통통한 나뭇가지처럼 생긴 물체 보이시죠. 바로 수리부엉이에요."

생물다양성이 지켜지고 온실가스를 흡수하는 최적의 공간으로 습지가 있다. 그런데 다수의 멸종위기종이 살아가는 대구의 한 습지가 개발 위기에 놓였다.

이 습지의 이름은 팔현습지. 지난 6월 22일 <뉴스펭귄>은 팔현습지의 개발 전 모습을 기록하기 위해 찾아갔다가 멸종위기종 수리부엉이 1마리를 목격했다. 낮은 절벽과 금호강변 사이 나무 위에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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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금호강변 개발 예정지에서 만난 멸종위기 야생생물 II급 수리부엉이. (사진 임병선 기자)/뉴스펭귄
대구 금호강변 개발 예정지에서 만난 멸종위기 야생생물 II급 수리부엉이. (사진 임병선 기자)/뉴스펭귄

현장에 동행한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혹여 수리부엉이를 방해할까 작은 목소리로 "수리부엉이는 먹잇감이 한눈에 들어오도록 시야가 확보된 절벽에 주로 서식한다"고 말했다.

 

"다리가 여길 관통할 겁니다"

수리부엉이를 사진에 담으며 숨죽이고 있던 그때, 정수근 사무처장은 "다리가 여길 관통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수리부엉이가 지내는 이곳은 환경부 산하 낙동강유역환경청이 절벽을 따라 교량형 보도교를 건설하고 홍수피해 방지를 위해 제방을 넓히는 '금호강 사색 있는 산책로 조성사업' 예정지다. 보도교는 사람이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게 만든 다리를 의미한다.

그러나 2022년 5월 대구지방환경청이 조건부 동의한 소규모 환경영향평가에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II급인 수리부엉이 서식 기록이 빠져 있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I급인 얼룩새코미꾸리 서식도 누락됐다. 특정 공사가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공사 전에 파악하려는 환경영향평가가 수리부엉이, 얼룩새코미꾸리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다리 짓는 방법 바꾼다지만
수리부엉이 터전은 여전히 지나

환경영향평가 부실 논란이 불거지자 지난 2월 홍동곤 낙동강유역환경청장은 환경단체들과 면담에서 사업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4월 열린 주민설명회에서도 같은 약속을 했으나 이번에는 팔현습지 개발을 찬성하는 일부 주민들의 반발이 거셌다. 결국 5월에 다시 열린 주민설명회에서는 환경피해를 줄이면서 사업을 이어가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수리부엉이가 서식하기 좋은 팔현습지의 절벽. (사진 임병선 기자)/뉴스펭귄
수리부엉이가 서식하기 좋은 팔현습지의 절벽. (사진 임병선 기자)/뉴스펭귄

사업은 계속 진행 중이다. 대신 낙동강유역환경청은 보도교를 짓는 공법을 강관거더교에서 아치교 형식으로 바꿔 기둥을 45개에서 6개로 줄이는 등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낙동강유역환경청 관계자는 "현재 공법을 변경해 다시 설계 중"이라며 "공사를 멈춘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 다리가 수리부엉이 발견 지점을 관통해 인근 화랑교와 망우공원까지 이어진다는 사실은 변함 없다.

 

낙동강청 "수리부엉이 확인하면 대책 세우겠다"

다리가 들어서면 수리부엉이의 삶은 어떻게 될까.

임봉희 꾸룩새연구소 부소장은 "수리부엉이는 번식 후 짝이 죽거나 사라져도 그곳에 계속 머무르며 다른 짝을 맞이하는 정주성 텃새"라며 "웬만해선 떠나지 않을 수리부엉이에게 공사 소음은 분명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이진희 야생생물생태보전연구소 소장은 "절벽과 습지를 보존해주면 수리부엉이는 적응하며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중요한 건 절벽과 습지가 남아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낙동강유역환경청은 아직 수리부엉이를 보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낙동강유역환경청 관계자는 "환경영향평가 협의의견에 따라 지난해부터 법정보호종 모니터링을 진행 중인데 아직 수리부엉이를 발견하지 못했다"며 "팔현습지에서 수리부엉이 서식을 확인하거나 관련 자료를 확보하면 모니터링 결과에 반영할 의지가 있다"고 말했다.

사업자인 낙동강유역환경청으로부터 용역을 받아 동식물상을 조사하는 업체 관계자는 수리부엉이 서식 의견을 듣고 이달 조사에 나설 예정이다.

대구 금호강 팔현습지에 들어오는 보도교 조감도. (사진 대구환경운동연합)/뉴스펭귄
대구 금호강 팔현습지에 들어오는 보도교 조감도. (사진 대구환경운동연합)/뉴스펭귄

 

개발할 곳이 있고, 아닌 곳이 있다

팔현습지는 도심 속 보기 드문 자연환경이 남아 있는 곳이다. 소규모 환경영향평가에서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한 종은 총 8종이다. 삵, 수달의 서식은 현장조사에서 확인됐고 큰기러기, 큰고니, 원앙, 새매, 흰꼬리수리, 황조롱이가 문헌조사를 통해 서식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외에도 정수근 사무처장은 자체조사를 통해 수리부엉이, 얼룩새코미꾸리, 흰목물떼새, 남생이를 발견했다. <뉴스펭귄>이 현장을 방문했을 당시에는 남겨진 지 1주일 이내로 보이는 수달 배설물을 버드나무 위에서 확인했다.

팔현습지 금호강변에서 발견한 수달 배설물.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팔현습지 버드나무 위에서 발견한 수달 배설물.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정 사무처장은 "개발해도 괜찮은 곳이 있고 개발하지 말아야 할 곳이 있다. 강 건너편처럼 사람이 많은 지역은 일부 개발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여기는 보시다시피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다. 이곳까지 길을 내서 이용하겠다는 것은 인간의 지나친 욕심"이라고 말했다.

이어 "팔현습지처럼 산과 강이 연결된 핵심 생태공간은 반드시 보존해야 하는 곳이다. 이런 곳까지 개발하면 공존의 질서가 완전히 무너진다"며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재조사를 요구했다. 절차상에 일부 멸종위기종이 발견되지 않은 문제가 있었으니 다시 조사해서 따져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사진 환경영향평가 협의의견 갈무리)/뉴스펭귄
(사진 환경영향평가 협의의견 갈무리)/뉴스펭귄
산과 강이 연결된 팔현습지에 수리부엉이가 산다.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산과 강이 연결된 팔현습지에 수리부엉이가 산다.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뉴스펭귄이 팔현습지를 다녀간 후에 다시 발견된 수리부엉이. (사진 대구환경운동연합)/뉴스펭귄
뉴스펭귄이 팔현습지를 다녀간 후에 다시 발견된 수리부엉이. (사진 대구환경운동연합)/뉴스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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