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스튜어드십, 주주들이 기업에 기후대응 요구하려면

  • 김지현 기자
  • 2023.06.14 14:32
자산운용사 모건스탠리의 2022년 영국 스튜어드십 코드 보고서. (사진 Morgan Stanley 공식홈페이지)/뉴스펭귄
자산운용사 모건스탠리의 2022년 영국 스튜어드십 코드 보고서. (사진 Morgan Stanley 공식홈페이지)/뉴스펭귄

[뉴스펭귄 김지현 기자] 국내 금융기관이 주주로서 기업 경영에 관여할 수 있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통해 기업의 기후위기 대응을 유도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란 연기금이나 자산운용사처럼 타인의 자산을 위탁 받아 관리하는 기관이 투자대상기업을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문제를 발견했을 때 적극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2012년 영국에서 처음 도입된 스튜어드십 코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금융기관이 투자대상기업을 방관하면서 초래됐다는 문제의식에서 만들어졌다. 이 제도는 연기금, 자산운용사, 보험사 등 기관투자자에게 단순 주식보유를 넘어선 역할을 요구한다. 이들 기관이 타인의 자산을 대신 관리하는 수탁자로서 책임을 다하려면, 투자대상기업의 경영이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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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스튜어드십 코드는 주주들이 기업에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창구로 진화했다. 기후변화를 경제시스템 전반을 위협하는 리스크로 인식한 기관투자자들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통해 기업에 온실가스 감축계획을 세우고 관련 성과를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런 활동은 기후스튜어드십(Climate Stewardship)으로 통칭되며, 기업의 기후위기 대응을 유도하기 위한 △ 경영진과 소통 △ 주주총회 의결권 행사 △ 주주제안 △ 주주대표소송 △ 주식 매각 및 매수 등을 포함한다.

기후위기 대응 창구로 진화한 스튜어드십 코드

13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넷제로 달성을 위한 기후 스튜어드십 확대 방안’ 토론회에서는 국내 금융기관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통해 기업의 기후위기 대응을 이끌어내는 방안이 논의됐다. 이 행사는 국회ESG포럼, 비즈니스포스트,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이 공동으로 주최했다.

(사진 김지현 기자)/뉴스펭귄
(사진 김지현 기자)/뉴스펭귄

발제에 나선 김태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수석연구원은 해외 기후스튜어드십 현황을 소개했다. 영국은 2020년 스튜어드십코드를 개정하면서 기관투자자가 환경문제와 기후변화를 고려해야 한다는 원칙을 추가했다.

또 국제 금융기관 기후대응 이니셔티브인 글래스고금융연합(GFANZ)은 투자, 대출, 보험 등 자산활동에서 나오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2050년까지 0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하고, 투자대상기업에게 중장기적인 온실가스 감축계획을 세우고 관련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면 금융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겠다고 압박하고 있다.

김태한 연구원은 한국에서 기후스튜어드십을 활성화하려면 국민연금이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과 민간 자산운용사는 단기적인 성과를 내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지만, 국민연금은 장기적 관점에서 자산운용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기후위기를 잘 다룰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그동안 주주활동에 소극적이었고, 주주총회에서 기후 관련 안건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할 때에도 일관성이 없었다. 김태한 연구원은 “국민연금이 명확한 기후위기 대응 방침을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한다”며, "국민연금이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화석연료 투자 배제 기준과 기후위기를 중점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발표하는 김태한 수석연구원. (사진 김지현 기자)/뉴스펭귄
발표하는 김태한 수석연구원. (사진 김지현 기자)/뉴스펭귄

임대웅 유엔환경계획 금융이니셔티브(이하 UNEP FI) 한국 대표는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면 은행과 보험사를 통해 자본의 흐름을 바꾸는 것이 핵심”이라며, UNEP FI는 금융기관이 탄소중립을 약속하고 자사 포트폴리오 안에 있는 기업들에게 온실가스 감축을 요구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소개했다.  

특히 UNEP FI는 매우 엄격하게 기후 리스크를 관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이니셔티브에 참여하는 금융기관은 투자대상기업에 과학기반 감축목표 이니셔티브(SBTi)에 기반해 스코프1(직접배출량)부터 스코프3(간접배출량)까지 가치사슬 전반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 관련 정보를 공개할 것을 요구한다.

윤세종 플랜1.5 변호사는 한국에서 기후스튜어드십을 활성화하려면 ‘권고적 주주제안’이 가능하도록 관련 법을 개정하거나 개별 기업 정관을 바꿔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국에서는 주주제안 용도가 임원선임과 정관변경으로 제한되고, 주주총회에서 통과되면 바로 경영진에 법적 구속력을 갖기 때문에 기후 관련 주주제안이 활발히 이뤄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권고적 주주제안은 주주총회에서 통과되더라도 법적 구속력을 갖지 않는 형태의 주주제안을 말한다.   

윤세종 변호사는 “지구온도가 2℃ 이상 오르는 미래를 피하려면 단기 성과를 우선시하는 경제관념을 바꿔야만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2022년 영국의 스튜어드십 코드 개정은 “단지 고려 대상에 환경문제를 추가한 것이 아니라 제도 목표를 자산을 위탁한 고객의 수익을 개선하는 것에서 경제, 환경, 사회가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하는 것으로 바꾼 것”이라며, "한국도 이런 목표를 지향해야 한다"고 말했다.  

발표하는 윤세종 변호사. (사진 김지현 기자)/뉴스펭귄
발표하는 윤세종 변호사. (사진 김지현 기자)/뉴스펭귄

국내 기후스튜어드십 활성화하려면

토론에서는 자산운용사, 투자대상기업, 학계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기후스튜어드십을 논의했다.

최용환 NH아문디자산운용 ESG리서치팀장은 자산운용사 입장에서 기후스튜어드십 활성화 방안을 제안했다. 최용환 팀장은 “주주제안이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기관투자자는 기후 관련 주주제안을 추적관리하고 성과를 측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주제안이 이뤄진 후에도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지속적인 사후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어 “ESG(환경·사회·거버넌스)는 별개가 아니라 서로 이어져 있다”며 “이사회 구성을 바꾸는 등 G(거버넌스)로 E(환경)를 해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주주가 기업에 기후 분야 전문성을 갖춘 이사를 선임하도록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기후위기 대응에 소홀한 이사의 재선임에 반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이재혁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 1본부 본부장은 “기업 입장에서 기후스튜어드십의 방향성은 공감하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며 투자대상기업을 대변했다. 이재혁 본부장은 “금융기관이 스코프3까지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과 관련 정보공개를 요구하면 중소·중견기업에게 막대한 부담이 될 수 있다. 이들 기업은 외부 기관에 기후 관련 인증을 받고 관련 보고서를 작성할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토론에서 발언하는 이재혁 본부장. (사진 김지현 기자)/뉴스펭귄
토론에서 발언하는 이재혁 본부장. (사진 김지현 기자)/뉴스펭귄

이에 윤세종 변호사는 “국내에서 탄소배출권 거래제가 잘 자리잡았기 때문에 온실가스 배출량 산정 등 정보공개는 어렵지 않고, 향후 일자리 창출과 신사업 발굴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반론했다.  

최용환 팀장도 “유럽 등 해외지역에서는 기후 관련 정보 공시 표준화를 추진하고 있다”면서 “정부가 정보공시 디지털화를 지원한다면 중소·중견기업의 부담을 덜 수 있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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