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금융활동으로 온실가스 2710만톤 이상 배출

  • 김지현 기자
  • 2023.04.19 14:38
(사진 국민연금공단 페이스북)/뉴스펭귄
(사진 국민연금공단 페이스북)/뉴스펭귄

[뉴스펭귄 김지현 기자] 국민연금이 2021년 한 해 동안 투자 활동으로 배출한 온실가스 양이 2710만톤(tCO₂-eq) 이상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국민연금은 971조원(2023년 1월 말 기준)을 운용하는 국내 최대 공적 연기금이자,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규모의 공적 연기금이다.

국민연금은 2021년 5월 ‘탈석탄 선언’을 하며 “탄소배출을 감축하기 위해 석탄채굴·발전산업에 대한 투자제한 전략을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올해 3월에는 ‘수탁자 책임 활동 지침’을 개정해 중점 관리 사안에 기후변화 문제를 추가했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아직까지 석탄투자 제한 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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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상황에서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은 18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국민연금 2040 넷제로 달성 방안 토론회’를 열고 국민연금의 금융배출량을 최초로 공개했다.

금융배출량은 금융기관이 투자, 대출, 보험 등 금융 자산을 운용해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말한다. 금융기관이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기업에 투자할수록 금융배출량도 늘어난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과 ESG 평가기관 후즈굿은 국민연금이 보통주를 가진 국내 기업 1168곳 중 온실가스 배출량을 공시한 기업 312곳을 대상으로 금융배출량을 산정했다. 국민연금의 2021년 금융배출량은 총 2710만3018톤으로, 2021년 한국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6억7960만톤)의 3.98%에 달하는 규모다.

두 기관은 이번 산정 결과가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자산 일부만을 가지고 산정했기 때문에, 실제 국민연금의 국내외 주식과 채권, 대체 투자 등 전체 자산의 금융배출량은 이 수치를 훨씬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2021년 국민연금 금융배출량을 발표하는 김태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수석연구원 (사진 김지현 기자)/뉴스펭귄
2021년 국민연금 금융배출량을 발표하는 김태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수석연구원 (사진 김지현 기자)/뉴스펭귄

국민연금 금융배출량의 업종별 비중을 살펴보면 에너지와 소재가 각각 42%로 배출량 대부분을 차지했다. 하드웨어 및 반도체가 8%, 운송이 3%로 그 뒤를 이었다.

기업별로는 한국전력공사의 금융배출량이 1035만톤으로 가장 높았다. 포스코홀딩스가 727만톤, 삼성전자가 123만톤으로 뒤를 이었다. 에쓰오일, LG화학, 대한항공, 롯데케미칼, 쌍용씨앤이, SK하이닉스, 고려아연이 10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국민연금의 기업별 금융배출량 (그래픽 김지현 기자)/뉴스펭귄
국민연금의 기업별 금융배출량 (그래픽 김지현 기자)/뉴스펭귄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은 국민연금에 2040년까지 금융배출량을 제로(탄소중립)로 만들겠다고 선언하고 투자 대상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주주활동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이 탄소중립 시점을 2040년으로 잡은 이유는, 국민연금 기금이 2040년 최대치(약 1755조원)에 도달한 후 2050년 이전에 급격하게 소진될 예정(제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이기 때문이다.

김태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수석연구원은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설정할 경우, 국민연금은 적극적인 기후 행동을 하지 않고도 기금 소진으로 자연스럽게 탄소중립을 달성하게 된다”며 "국민연금이 의미 있는 기후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2040년을 탄소중립 달성 시점으로 잡고 2030년 중간 목표를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은 국민연금의 2040년 탄소중립 달성 방안으로 △ 금융배출량 산정 △ 기업에 기후 관련 정보 공개 요구 △ 주주총회 의결권 행사와 주주제안 등 적극적인 주주활동을 제안했다.

국민연금과 같은 기관투자자들이 적극적으로 기업에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라고 요구할 수 있도록 주주제안의 문턱을 낮출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윤세종 플랜1.5 변호사는 "미국과 일본 등에서는 주주가 기업에 기후위기 대응을 요구하는 주주제안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사례가 없다"며 "그 이유는 주주제안 가능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윤 변호사는 "회사 존폐에 준하는 아주 중대한 사항만 표결 대상이 되며 주주제안을 하려면 상장사 기준 0.5%의 지분을 6개월 이상 갖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정관을 통해 '기후변화 리스크에 관해 주주들이 제안을 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윤 변호사는 여러 기관 투자자들이 연대하면 주주제안을 시도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지난해 일본에서는 자산운용사 3곳(맨그룹, HSBC, 아문디)이 연합해 전력발전 기업인 J-파워(J-Power)에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목표를 세우고 관련 정보를 공개하도록 요구한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2040 넷제로 달성 방안 토론회' 주요 참석자들 (사진 김지현 기자)/뉴스펭귄
'국민연금 2040 넷제로 달성 방안 토론회' 주요 참석자들 (사진 김지현 기자)/뉴스펭귄

반면 국민연금 측에서는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주주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기업이 소수주주를 대하는 방식과 법률적 문제가 먼저 해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수주주란 기업의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주주를 말한다. 

원종현 국민연금기금 운용위원회 상근전문위원은 패널토론에서 “기후변화 관련 주주제안에 긍정적이지만 국민연금 역시 많아야 10%의 지분을 갖고 있는 소수주주”라며 "국민연금이 회사가 내건 안건에 대해 반대한다면 100전 99패의 결과가 나온다"고 말했다.

원 전문위원은 "자본시장법상 투자목적이 경영참여라면 매매 차익을 회사에 돌려줘야 하는 의무가 생긴다"며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주주제안을 하려면 법적 요건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10% 이상 지분을 보유한 주요 주주는 6개월 안에 단기매매 차익을 거둘 경우, 이익 일부를 기업에 돌려줄 의무가 있다. 다만 국민연금을 비롯한 공적 연기금은 투자목적이 경영참여가 아닌 일반투자이기 때문에 이 규칙을 적용 받지 않는다. 

이에 대해 윤 변호사는 “세계 3위 규모의 공적 연기금인 국민연금이 소수주주라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국민연금이 전 세계 금융기관의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을 위한 금융 동맹에 합류한다면 그 영향력은 매우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 세계 금융기관들은 금융배출량을 감축하기 위해 넷제로 자산소유자 동맹(Net-Zero Asset Owner Alliance), 넷제로 자산운용자 동맹(Net-Zero Asset Management Alliance), 넷제로 은행동맹(Net-Zero Banking Alliance), 넷제로 보험동맹(Net-Zero Insurance Alliance) 등 금융 분야별 동맹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한편 재계에서는 탄소중립 추친 속도를 늦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석호 한국경영자총협회 사회정책팀 팀장은 패널토론에서 “국내 기업들의 여건을 고려할 때 2040 탄소중립 제안의 방향성은 공감하지만 속도는 조절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손 팀장은 “선도기업들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지만 공급망 안에 있는 중소기업들까지 인프라를 구축하려면 수년이 걸린다”며 "국민연금 같은 기관투자자들은 화석연료 산업에 대한 투자 철회를 최대한 늦춰 산업 전환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토론회를 공동 주최한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개회사에서 “국민연금의 넷제로는 국민연금만의 넷제로가 아니다"라며 "국민연금의 투자 대상인 기업들의 기후변화 대응 수준과 경쟁력을 높이고 기업가치를 제고하는 효과로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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