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말미잘과 소라게의 특별한 동거

  • 이후림 기자
  • 2023.05.07 00:05
소라게와 신종 말미잘 스틸로바테스 캘시퍼. (사진 Akihiro Yoshikawa)/뉴스펭귄
소라게와 신종 말미잘 스틸로바테스 캘시퍼. (사진 Akihiro Yoshikawa)/뉴스펭귄

[뉴스펭귄 이후림 기자] 일본 남동쪽 구마노나다 해역에 서식하는 소라게는 등껍질(패각)에 마치 진줏빛 꽃처럼 생긴 '말미잘'을 달고 기어다닌다. 신종 말미잘 '스틸로바테스 캘시퍼(Stylobates Calcifer)'다.

신종 말미잘을 최초로 발견한 가고시마대학교 요시카와 아키히로(Akihiro Yoshikawa) 연구원은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등장하는 캐릭터 '캘시퍼(Calcifer)'에서 영감을 받아 학명을 지었다.

캘시퍼는 마법사 하울과 계약을 맺은 화염의 악마다. 하울의 심장을 가진 대신 소라게처럼 이곳저곳으로 이동하는 '움직이는 성'에 묶여있는 캐릭터다. 하울의 심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캘시퍼가 죽으면 하울도 죽는다.

뉴스펭귄 기자들은 기후위기와 그로 인한 멸종위기를 막기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정기후원으로 뉴스펭귄 기자들에게 힘을 실어 주세요. 이 기사 후원하기

'하울의 움직이는 성' 캘시퍼. (사진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 캡처)/뉴스펭귄
'하울의 움직이는 성' 캘시퍼. (사진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 캡처)/뉴스펭귄

바다 세계에서 말미잘과 소라게의 동거는 꽤 흔한 일이다. 둘은 하울과 캘시퍼처럼 공생관계다. 약 35종의 말미잘이 소라게와 공생관계를 맺고 있다.

말미잘은 무성한 촉수를 이용해 포식자로부터 소라게를 숨겨주고, 소라게는 말미잘을 이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말미잘의 먹이사냥을 유리하게 해준다. 소라게가 먹이를 섭취할 때 나오는 찌꺼기를 받아먹기도 한다. 실제로 소라게 껍질에 붙어사는 말미잘은 한곳에서 붙어 사는 개체보다 생존 확률이 높다고 알려졌다.

신종 말미잘 캘시퍼의 경우 또 하나의 특별한 능력이 있다. 소라게가 몸을 숨길 수 있는 집, 곧 껍질을 확장해 주는 능력이다. 캘시퍼는 공생하는 소라게가 껍질 가장자리에 도달하면 마치 베란다를 확장하듯 껍질과 유사한 물질을 생성해 껍질 위를 덮는다. 캘시퍼의 보호본능은 소라게가 가장자리에 도달할 때마다 반복해서 발휘된다.

그렇다면 이렇게 공생하던 소라게가 집을 옮길 땐 어떻게 될까.

소라게와 신종 말미잘 스틸로바테스 캘시퍼. (사진 Akihiro Yoshikawa)/뉴스펭귄
소라게와 신종 말미잘 스틸로바테스 캘시퍼. (사진 Akihiro Yoshikawa)/뉴스펭귄

연구 결과 소라게는 말미잘과 함께 새로운 집으로 이사할 수 있도록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소라게는 이전 집에서 말미잘을 떼어내기 위해 집게발을 이용해 말미잘을 꼬집고 찌르고 두드렸다. 말미잘을 헌집에서 떼어내는 과정만 해도 약 이틀이 걸렸다. 소라게는 이후 약 18시간의 노력을 더해 마침내 새로운 껍질에 말미잘을 고정했다. 말미잘을 떼어내고 고정하는 데 꼬박 3일이 걸린 셈이다.

연구진은 "신종 말미잘은 처음에는 뚜렷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소라게의 격렬한 노력이 이어지자 위치를 점점 이동하더니 결국 헌 껍질에서 벗어났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신종 말미잘이 어떤 먹이를 주로 섭취하는지 알아내기 위해 가다랑어, 살아있는 새우 등 진미를 제공했지만 대부분 무시당했다. 

연구에 따르면 신종 말미잘은 소라게 껍질에 달라붙어 입을 벌린 채 심해 방향으로 떨어지는 '바다눈'을 먹는 것으로 추정된다. 바다눈은 바다생물의 죽은 사체나 배설물이 마치 눈처럼 심해에 낙하하는 것을 뜻한다. 바다눈은 심해생물들에게 중요한 양식이 된다.

뉴스펭귄은 기후위험에 맞서 정의로운 해결책을 모색하는데 초점을 맞춘 국내 유일의 기후뉴스입니다. 젊고 패기 넘치는 기후저널리스트들이 기후위기, 지구가열화, 멸종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분투하고 있으며, 그 공로로 다수의 언론상을 수상했습니다.

뉴스펭귄은 억만장자 소유주가 없습니다. 상업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일체의 간섭이 없기 때문에 어떠한 금전적 이익이나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리의 뉴스에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뉴스펭귄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여러분의 후원을 밑거름으로, 게으르고 미적대는 정치권에 압력을 가하고 기업체들이 기후노력에 투자를 확대하도록 자극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적은 금액이라도 여러분의 소중한 후원은 기후위험으로부터 우리를 지키는데 크게 쓰입니다.

뉴스펭귄을 후원해 주세요. 후원신청에는 1분도 걸리지 않으며 기후솔루션 독립언론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만듭니다.

감사합니다.

후원하러 가기
저작권자 © 뉴스펭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