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잿더미가 된 경북 의성 고운사 사찰림이 불과 반년 만에 새싹과 야생동물 흔적을 드러내며 스스로 되살아나고 있다. 그러나 인근 능선에서는 '위험목 제거 사업'이라는 이름의 벌채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자연이 회복되는 자리 옆에서 나무가 베어지는 아이러니한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
산불 복원 방식에는 크게 자연복원과 인공복원 두 가지가 있다. 자연복원은 산이 스스로 싹을 틔워 자연천이 과정으로 회복하는 방식이고, 인공복원은 조림과 토양정비 등 인간이 계획적으로 직접 개입하는 방식이다.
3월 대형 산불로 사찰림 97%가 전소된 고운사는 자연복원을 택했다. 주지 등운스님 결정과 함께 그린피스와 안동환경운동연합, 불교환경연대, 서울환경연합, 생명다양성재단 등 국내 환경단체가 현장 조사로 자연천이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국내 사찰림 피해지에서 자연복원을 공식 선언한 첫 사례로, 산불 이후 복원 방식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위험목 제거 사업'은 산불 이후 산림청 예산을 받아 각 지자체에서 집행한다. 지자체는 생활권 안전 확보를 법적·행정적 최우선 기준으로 삼고 있어 위험목 제거를 원칙적으로는 안전조치로 분류한다. 제거된 위험목 자리에는 산주와 조율해 결정된 수종을 인공조림한다. 이 같은 방식은 자연복원 취지를 훼손하는 행위로 여러 문제제기가 돼왔다.
현재 의성군에서 진행 중인 위험목 제거 현장은 고운사 사찰 경계에서 불과 2~3km 떨어진 능선이다. 의성군 관계자는 "의성군 전역을 대상으로 도로·주택 등 생활권 주변에서 안전사고 우려가 있는 나무를 제거하는 사업이며, 고운사 일대에서도 사찰 주변 위험목은 주지 스님과 협의해 일부 제거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어 "위험목 제거 대상지는 대부분 전소 지역으로 야생동물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낮은 곳을 선정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고운사 현장 조사에서는 담비와 수달 등 멸종위기종 포유류가 확인되고 있다. 위험목 제거가 진행되는 능선은 사찰림과 생태적으로 연결돼 수km 반경을 오가는 담비와 수달의 행동반경에 포함되며, 서식지 훼손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서울환경연합 최진우 전문위원은 "고운사 사찰림 자연복원 사례는 지역 전체 효과로 이어지는 일인데 이를 생각하지 못하고 훼손하는 것"이라며 "벌채 현장 바로 아래에 주택이 없는데도 일률적으로 베는 모습이 보인다. 어떤 평가 기준으로 벌채를 하는 건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야생동물연구소 한상훈 소장은 "이미 회복을 시작한 생태계에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것"이라며 "벌목으로 인한 소음과 차량 진입만으로도 먹이터와 생활 공간을 잃는다. 나무가 남은 곳과 없는 곳의 생태적 차이가 극명하다"고 말했다.
포유류와 조류는 눈에 보이지만, 베어지는 나무에는 눈에 띄지 않는 곤충도 있다. 한 소장은 "곤충이 사라지면 이를 먹는 조류와 포유류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는다"며 "나무가 없는 산은 겨울에 특히 곤충들이 살아남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산사태 우려도 있다. 한 소장은 "해외 복구 지침에서는 산불 후 1~2년은 피해목을 그대로 두라고 권고한다"며 "겉은 탔지만 뿌리가 남아 있는 나무들이 토사를 붙잡아주는 역할을 하는데 토양이 안정되기도 전에 벌목이 이뤄지면 산사태 위험이 더 커진다"고 말했다. 이어 "불에 타면 상층 토양 4~5cm가 통째로 소실돼 영양분이 없다. 중장비가 들어가 토양을 흔들면 생태계 구조 자체가 흔들리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까이서 보면 생생한 자연복원 현장
멀리서 보면 불에 탄 아픔을 품은 산이지만, 야생생물과 현장 전문가들은 이미 자연으로 보고 있다. 최 전문위원은 "가까이 들여다보면 다른 장면이 펼쳐진다. 산불 이후 6~7개월 만에 굴참나무와 신갈나무 등 활엽수가 2m가량 자라며 숲을 메우고 있다"고 말했다. 불을 견디지 못해 죽은 작은 묘목도 재가 된 자리 아래서 싹을 틔웠다.
소나무 같은 침엽수와 활엽수의 생리적 차이도 회복 양상을 가른다. 최 전문위원은 "소나무는 불에 타면 싹이나 맹아가 거의 나오지 않지만, 활엽수는 재생력이 강하다"며 "참살이, 고사리 등 초본류도 다시 번져 생태적으로 매우 독특한 장면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버섯류도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고사한 소나무 줄기 사이로 송이 대신 활엽수를 돕는 버섯이 자라고 있다. 최 전문위원은 "송이 채취를 위해 소나무 단순림을 유지해 왔지만, 산불로 소나무가 고사하면서 송이가 날 수 없는 환경이 됐다"며 "소나무에 적대적이고 활엽수 회복을 돕는 균근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불탄 나무는 산속에서 야생생물 서식을 위한 구조물이 되기도 했다. 최 전문위원은 "그루터기가 탄 자리에 구멍이 생기는데 이 구멍들이 서로 연결돼 뱀, 개구리, 오소리 등이 이용하는 굴처럼 기능한다"며 "소나무의 죽음이 새로운 집을 만들어줬다"고 말했다.
멸종위기종이나 포유류, 조류가 확인됐다는 건 자연복원지에서 상징적이다. 죽은 나무가 자연복원을 이끄는 기반이 된 것이기 때문이다. 부식한 고사목은 곤충의 먹이가 되고, 곤충이 산다는 건 새가 먹으며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의미다.
그린피스 최태영 생물다양성 캠페이너는 국내 보호지역에서 반복돼 온 개발·벌채 문제를 언급하며 고운사 사찰림 복원이 갖는 의미를 설명했다. 그는 "민주지산, 대암산·대우산 천연보호구역 등 보호지역에서도 벌채와 인공조림이 확인됐다"며 "나무가 베어진 직후 현장에서는 새나 곤충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생태계가 무너진다"고 말했다.
이어 "불탄 땅에서 맹아가 올라오고, 여름에는 땅속에서 우화한 매미 울음소리를 들었다"고 덧붙였다. 매미는 수년간 유충으로 지내다가 땅 위로 올라온다. 현장에서 매미 울음소리가 들렸다는 건 산불 피해를 겪은 토양에서도 살아 남았다는 의미다.
이름뿐인 야생생물 보호구역...의성군 "고운사 사례로 기준 삼을 수 없어"
고운사 사찰림 경계는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33조1항에 따라 지정된 야생생물 보호구역이다. 의성군에는 3곳의 보호구역이 지정돼 있다.
그러나 '서식'을 이유로 지정한 보호구역을 두고 벌채 과정에서 의무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기준은 없다. 보호구역 운영에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따른다.
의성군청 야생생물 담당 관계자는 "(보호구역을) 고려하는 것 없이 그냥 벌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야생생물 보호구역을 추가 확인하는 질의에는 "알아보고 회신하겠다"고 답했다.
생태조사가 적용되는 환경영향평가에도 사각지대가 있다. 「환경영향평가법 시행령」에 따라 '산림자원조성 및 관리법'상 산림사업으로 분류돼 환경영향평가 대상에서 제외된다. 기후부 관계자는 「야생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 있어 환경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고 설명했지만, 시민조사에서 확인된 야생동물이 벌목 현장에서 확인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되는 한계가 따른다.
행정기관에서 자연복원을 보는 시선도 다르다. 의성군 관계자는 "자연복원은 고운사 측 자체 판단일 뿐, 지자체가 이를 기준으로 삼거나 정책적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자연복원과 인공복원을 구분하는 명확한 알고리즘이나 기준이 지자체 단위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며, 복원 방식의 적정성은 산림청이나 국가 연구기관의 분석을 통해 판단할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위험목' 기준도 사람 중심이다. 군 관계자는 "산림청 집행기준을 따른다"며 "지침상 구체적인 수종이나 상태별 정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생활권으로부터 일정 거리(약 60m) 안에서 위험성이 인정되는 나무를 대상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이 기준에 야생생물 서식 구조나 복원지 인접성은 고려되지 않는다.
군은 위험목 제거사업과 복원사업을 별개로 본다는 입장이다. 관계자는 "위험목 제거는 안전 조치이고, 복원사업은 내년 이후 별도로 진행될 조림사업"이라며 "두 사업을 연결해 판단하거나 자연복원 여부와 연동해 추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산림청은 국유림·사유림 여부에 따라 복원 방식 결정권이 달라지는 구조를 설명했다. 산림청 관계자는 "사찰림은 사유림이다. 복원 방식 결정에는 산주 판단이 절대적"이라며 "자연복원은 예산 부담이 적고, 경제성·생산성 등을 고려해 인공복원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본청 방침에 따라 침엽수보다 활엽수, 자연복원을 우선한다는 기준만 제시할 뿐, 국내 60% 이상을 차지하는 사유림 복원 방식 자체를 조정할 권한이 없다는 의미다.
즉, 산불 복원은 산림청이 원칙을 제시하고, 사유림에서는 산주가 최종 결정하며, 지자체는 위험목 제거 등 사업을 집행하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생태복원을 총괄하는 주체가 없다.
기후에너지환경부 관계자는 "전소 지역 안전관리와 복구는 산림청 소관이며, 복원 과정에서 멸종위기종이 훼손되는 일은 현생법상 허용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자연복원과 인공복원에 대한 가치 판단은 산림청이 검토한다"고 덧붙였다.
세 기관의 설명을 종합하면, 생태적 관점에서 복원 원칙을 조율하는 주체가 없다. 고운사 자연복원지는 사찰림 내부에 국한되지만, 의성군의 위험목 제거 판단 범위는 사찰 경계 밖 능선까지 포함한다. 동일한 숲을 두고도 복원 단위와 행정 단위가 다르다. 멸종위기종이 돌아온 산림 바로 옆 능선에서 벌채가 이어지는 '아이러니한 장면'은 이러한 행정 구조 속에서 자연히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결과다.
아래는 자연복원이 이뤄지고 있는 최근 고운사 사찰림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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