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영향평가 제도를 둘러싼 구조적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사진 Unsplash)
환경영향평가 제도를 둘러싼 구조적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사진 Unsplash)

최근 한강버스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안전 관련 문제가 가장 큰 이슈지만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고려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도 들린다. 서울시는 "한강버스는 환경영향평가 대상이 아니라서 생태 점검을 하지 않았다"고 답한 바 있다. 환경영향 평가 대상이 아니라는 건 '환경 문제가 없다'는 의미일까? 한강버스 사업과 부산 대저대교 건설공사 등을 둘러싸고 제기됐던 환경영향평가 관련 논란을 짚어봤다.

환경영향평가 제도를 둘러싼 구조적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현행법상 사업자가 직접 평가기관을 선정하고 비용을 부담하는 구조 탓에 부실·거짓 평가서가 작성되고, 사업을 쪼개 평가를 회피하는 사례도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국회에는 제3기관이 평가를 발주하는 '공탁제' 도입과 상설위원회 설치 등을 담은 환경영향평가법 개정안이 여러 건 심사 대기 중이다.

"사업자가 돈 주는데 어떻게 제대로 평가하나"

환경영향평가 구조 (대한민국 국가지도집 홈페이지 캡처)
환경영향평가 구조 (대한민국 국가지도집 홈페이지 캡처)

환경영향평가 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사업자가 직접 평가기관을 선정하고 비용을 지불하는 구조다. 임성희 녹색연합 그린프로젝트팀장은 환경영향평가 제도의 핵심 문제로 '평가 주체'를 꼽았다.

그는 "예를 들어, 도로 개발 사업을 한다면 사업자인 국토부가 환경영향평가를 해야 한다. 하지만 국토부는 관련 전문성이 없으니 외부 기관에 평가를 맡기는 것"이라면서 "그런데 그 평가기관을 사업자가 직접 결정하니까 용역을 수주한 평가기관은 사업자가 원하는 대로 결론을 짓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기후에너지환경부(이하 기후부) 환경영향평가과도 사업자가 평가기관을 직접 선정하고 발주하는 구조임을 확인했다. 기후부 관계자는 "환경영향평가법, 시행령, 운영지침, 규정에 따라 진행하고 있으며 평가서 보완을 요청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은 이런 사후 보완만으로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본다.

임 팀장은 "직접발주 형태이기 때문에 평가서의 독립성이 훼손된다"며 "부실하거나 거짓으로 작성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그는 "온갖 멸종위기종들이 주민들 눈에는 보이는데 평가서는 그런 멸종위기종들이 서식하지 않는다고 작성하는 식"이라며 "사업자 입맛에 따라서 거짓·부실이 나온다"고 비판했다.

실제 부실 사례는 여러 곳에서 확인됐다. 녹색연합이 펴낸 <2023년 환경영향평가 거짓 및 부실 사례집>에 따르면 부산 대저대교 건설사업 환경영향평가에서는 큰고니를 비롯한 멸종위기종 서식지가 누락됐다. 박중록 습지와새들의친구 운영위원장은 "큰고니가 서식하기 위해선 4km가 필요하고, 대저대교 건설 구간에 많은 멸종위기 생물들이 있다는 게 입증되면 건설 사업이 통과될 수 없는 걸 알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십 몇 차례 조사 중 한 번만 빼고 다 거짓이었다"며 "그간 해오던 관행대로 현장에 가지 않고도 대충 큰고니가 건설 사업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고 표시해버린 것"이라고 덧붙였다.

제주 비자림로 확포장 사업도 마찬가지였다. 제주도가 2015년 제출한 소규모 환경영향평가서에는 "계획노선에 멸종위기야생동식물, 주요 철새도래지, 각종 보호 야생동식물의 서식지는 없는 것으로 조사됨"으로 기재됐다. 그러나 제주대학교 연구팀이 추가 생태조사를 한 결과 멸종위기 조류 5종을 포함해 법정보호종 16종의 서식이 확인됐다.

임 팀장은 "평가서 결과는 비공개 처리되는 경우가 많아 민주적 투명 절차가 없고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며 "환경영향평가의 취지는 개발사업으로 인한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함인데, 개발 사업 정당화 수단으로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기후부 국토환경정책과 관계자는 부실·거짓 평가서 통계를 비롯한 환경영향평가 운영과 관련해 "전화로 답하기 곤란하다"고 답했다.

사업 쪼개면 평가 피해…한강버스도 '회색지대'

도시개발사업의 환경영향평가 대상 (환경영향평가정보지원시스템 홈페이지 캡처)
도시개발사업의 환경영향평가 대상 (환경영향평가정보지원시스템 홈페이지 캡처)

환경영향평가법의 획일적 규모 기준도 문제로 지적된다. 현행 법은 도시개발 25만㎡ 이상, 도로 4km 이상 등 면적과 거리로만 평가 대상을 정한다. 생태적으로 민감한 지역이라도 규모가 작으면 평가 대상에서 빠진다.

한강버스가 대표적이다. 최영 서울환경연합 생태도시팀장은 "한강버스 사업이 여러 형태로 쪼개져 있어서 환경영향평가 대상이 아닌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최 팀장은 "선착장 여러 곳을 다 합치고 연안까지 고려하면 면적이 평가대상에 해당할 것 ”이라면서도 "한강버스 선착장을 항만으로 볼지, 대중교통 시설로 볼지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이런 애매한 회색지대가 많다"고 지적했다.

사업을 인프라와 운영으로 나눠 각각 평가를 피하는 방식도 문제다. 최 팀장은 "선착장에 배를 대는 시설은 서울시가, 수익사업은 한강버스 법인이 하는 식으로 예산이 나뉘었다"며 "그래서 중앙투자심사를 회피한다는 문제제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환경영향평가 취지를 생각하면 한강버스가 평가에서 제외되기는 어렵다고 본다"며 "속도도 기존 유람선보다 빠르고 선착장도 한두 곳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업을 잘게 쪼갰고, 속도전으로 빠르게 추진해 환경영향평가를 피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최 팀장은 "환경영향평가가 제대로 진행되기만 했다면 지금 벌어진 좌초사고 가능성을 검토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급하게 추진한 후과가 지금 터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미래한강본부 관계자는 "한강버스는 환경영향평가 대상이 아니라서 생태 점검을 하지 않았다"고 답한 바 있다. 

"제3기관 발주로 바꿔야"…개정안 국회 심사중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법 개정 움직임이 국회에서 진행 중이다.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에 환경영향평가법 개정안이 여러 건 제출돼 있다. 개정안들은 사업자 우위의 환경영향평가 구조를 바꾸기 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한 개정안은 제안이유에서 "환경영향평가서 등을 사업자가 직접 발주하고 대행업자가 대신 작성하는 구조로 인해 환경영향평가서 등의 객관성 및 독립성의 침해 요소로 작용하여 신뢰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밝혔다.

개정안은 "사업자 우위의 환경영향평가 대행 체계는 환경영향평가 조사 및 평가서 작성의 독립성 확보 곤란, 환경 현황의 은폐나 축소, 환경영향평가서 부실 작성 등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며 공탁제 도입을 제안했다. 공탁제는 사업자가 환경영향평가 비용을 제3기관에 예치하고, 사업자가 아닌 제3기관이 환경영향평가 용역을 발주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다른 개정안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중대한 사업의 경우 환경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기관에 환경영향평가 대행자 선정을 요청하도록 하고, 평가서가 중대한 과실로 부실하게 작성되는 경우 반려나 재평가를 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지난 14일 제출된 개정안은 환경영향평가 협의 시 시민단체 등이 참여한 상설위원회 도입을 제안했다. 법안은 "환경영향평가 대상 사업 중 환경 영향이 중대할 것으로 판단되는 사업을 '중점평가' 대상으로 구분하고 있으나, 환경영향갈등조정협의회는 지난 5년간 2건 개최에 그쳤다"며 "협의기관의 장에게 갈등조정협의회 개최 등의 권한이 있었기 때문에 유명무실하게 운영됐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개정안은 주민참여 확대를 담았다. 개정안은 "주민의 의견 수렴 절차를 보장하고 있으나, 정보의 투명성과 전문성 측면에서 주민이 충분한 의견을 내기 어렵다"며 "환경영향평가 과정에 대상 지역 내의 주민뿐만 아니라 그 범위를 확대하여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임성희 팀장은 "직접발주 형태를 제3기관 발주로 바꿔서 객관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환경영향평가는 개발사업 과정에서 주민들의 의견이 반영되고 수렴될 수 있는 유일한 절차인데, 지금은 졸속으로 진행돼서 참여가 제한적인 상황"이라며 "대행체계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가 쟁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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