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모솔새. 우리나라에서 월동하는 겨울 철새다. 멀리서 날아와 우리나라에 오자마자 충현중학교 옆 아파트 유리방음벽 아래서 죽었다. 몸무게가 7g도 채 되지 않는다. 기자 손 위에서 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작고 가벼웠다. 이토록 가벼운 새가 사람이 부딪혀도 깨지지 않을 만큼 단단한 유리창에 충돌해 죽었다면 그 충격은 다 어디로 갔을까.
지난 10월 31일 경기도 광명시 충현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 학교 창문에 직접 '조류충돌 저감 테이프'를 붙이곤 정부에 예산을 늘려달라고 힘껏 외쳤다. 이들이 정부 예산을 바라고, 고민하게 된 건 학교에서 죽음을 목격하면서다. 학교 안팎으로 새들의 죽음이 곳곳에 있었다.
조류충돌은 나무와 높이가 비슷한 건물 유리창 높이에서 많이 발생한다. 학교와 같은 5층 이하 건물이 주로 해당한다. 충현중학교는 호암산, 삼성산, 관악산 등 아래에 있어 새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이자, 집이 되기도 한다. 까치, 직박구리, 참새, 박새, 파랑새, 딱따구리 등 다양한 새들이 찾아온다. 1학년 기술·가정 교육 과정으로 '인공둥지'를 교목마다 설치해 1년 내내 새들을 관찰하는 게 이 학교 학생들에게는 익숙하다. 교내 CCTV 위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은 새를 보며 학생들은 문제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느 날 한 사건은 학생들을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했다. 학교 둥지에서 태어난 새끼 직박구리가 교실 창문 아래로 추락했다. 조류충돌이었다. 장원준(13세) 군은 "소식을 듣고 점심시간에 나가봤더니 학생들이 새 주변으로 몰려 있었다"며 "금방 정신을 차리고 다시 날았지만 학교에서 번식한 생명들이 한순간에 죽거나 위험해지는 게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붙인 작은 점무늬는 조류 생존 가능성을 높이려는 최소한의 표시다. 하지만 학교 울타리를 넘어선 문제도 뚜렷하다. 충현중을 둘러싼 인근 아파트 투명 유리 방음벽에서도 충돌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이날 조류충돌 저감 교육을 진행한 국립생태원 김영준 동물관리연구실장은 "학교 옆 아파트 유리 방음벽 아래에서 40분 동안 20마리의 사체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현장 체감은 시민과학 데이터와도 맞닿아 있다. 네이처링 플랫폼 기록에 따르면 2019~2023년 충현중 인근에서 확인된 조류충돌 사체는 47마리이며, 지도상 이미지만으로도 학교 옆 아파트 주변 기록이 많다.
전국 집계에서도 충돌 지점은 2024년 2월 기준 방음벽이 78.8%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그다음이 건물(18.36%)이다.
이날 활동은 사단법인 '자연의벗'이 진행하는 도심 조류충돌 저감 캠페인 '새유리대작전' 일환으로 열렸다. 제보자 총 129명 중 117명이 충현중 학생과 교사였다. 학교가 조류충돌 다발 구간으로 선정됐고, 학생들은 이 문제를 끌어안았다.
학생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게 된 건 아직 풀리지 않는 간극이 있어서다. 2021년 환경부(현 기후에너지환경부)는 「방음시설의 성능 및 설치 기준」을 개정해 투명 방음벽을 설치할 때 조류충돌 등 생태적 영향을 최소화하도록 하고, 2022년에는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국가기관 등이 인공구조물 설치·관리를 통해 충돌·추락 피해를 줄이도록 하는 근거를 마련했다. 이에 따라 각 지자체에 '야생조류 충돌 예방(및 저감) 조례'를 만들 수 있게했다.
다만 이 규정에는 처벌조항이 없어 강제력 또한 없다는 한계가 있다. 또 민간건축물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김영준 실장은 "국내 건축물 약 742만 채 가운데 공공건축물은 약 24.5만 채로 전체 3.3%에 불과하고, 나머지 96.7%에 해당하는 민간건축물은 법적 의무 대상이 아니다"라며 "기후에너지환경부가 피해 실태를 관리하지만 설계 기준은 국토교통부가 담당해 권한과 책임이 갈려 있고, 기후부는 시정 요청만 가능하다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대부분 건물은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셈이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조례는 이런 간극을 메우기 위한 발판이다. 올해 기준 약 63개의 지자체가 '야생조류 충돌 예방(또는 저감) 조례'를 제정해 공공건축물 저감시설 설치 예산의 근거를 마련하고, 지역 계획 수립과 민간 권고 기준 제시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광명시는 이 조례가 없다. 조례가 없으면 공공건축물의 시공 예산 배정조차 쉽지 않다. 충현중 학생들이 제보하고 자연의벗과 함께 캠페인을 진행하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제도가 비어 있는 구간에서 학교·시민·전문기관이 먼저 근거와 해법을 쌓아 올려야 한다.
김영준 실장은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는 경우 과학적으로 이 문제를 기록하는 한편, 해당 지자체나 건물 관리자에게 지속적으로 질문해야 한다"며 "우리나라에는 안전신문고나 국민신문고라는 손쉽게 의견을 제출할 수 있는 통로가 많다. 국가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으므로 지자체와 힘을 합쳐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감테이프 실질적 비용 수천 수억...더 나아가려면
학생들이 캠페인의 힘을 받아야 할 만큼 예산이 필요한 이유는 뭘까. 조류충돌을 막기 위한 대책으로 크게 '예방'과 '저감'이 있다. 예방은 처음부터 조류충돌 위험이 큰 투명 구조물 자체를 만들지 않거나, 설계 단계에서 가시성을 높이는 방식이다. 저감은 이미 설치된 유리창과 방음벽 등에 충돌 방지 요소를 덧대 사고를 줄이는 조치다. 기존 다수 건물은 후자에 의존한다.
가장 널리 알려진 저감 조치는 점무늬 패턴 스티커(테이프) 부착이다. 다만 건물 면적이 클수록 전문인력 등으로 비용이 급등하고, 부착된 테이프 수명은 통상 5~10년으로 재시공이 필수적이다. 판매업체 안내 기준 한 롤(28m) 당 약 3㎡ 시공이 가능하며, 가격대는 1만6500~1만9800원 수준이다. 현행법상 공공건물 중심의 지원 구조 탓에 민간건물은 자부담이 필요해 적용이 더디다.
김영준 실장은 "기후부 조류충돌 저감 지원 예산은 연간 1억~1억5천만 원으로 20여 건의 지원사업에 그치는 수준"이라며 "서울시청 본관 건물에만 저감 테이프를 부착하는 데 22억 원이 든다. 이런 구조에서 모든 건물에 적용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한계를 돌파하려면 피해가 집중된 구간부터 조치해야 실제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대표적인 예로 통창으로 된 숲속 카페 등이 있다.
저감 테이프에만 의존해야 하는 건 아니다. 국립생태원은 유지 및 관리와 환경오염(플라스틱 노후화)까지 고려하면 장기적으로는 '예방'이 가장 지속가능하다고 안내한다. 처음부터 조류충돌 위험이 없도록 시공하는 것이다. 이미 설치된 구조물에는 테이프 외 다른 장치를 활용할 수 있다.
예컨대 국립생태원 주차장은 줄을 별도로 설치해 효율적인 저감 효과를 보고 있다. '아코피안 충돌 방지줄(AcopianBirdSavers)'이라고도 하는데, 약 6mm 줄을 10cm 간격으로 세워 시각적인 장벽을 만드는 방법이다. 야외 실험에서 97% 이상의 예방 효과가 보고된 바 있다. 설치·유지 비용이 상대적으로 낮고 수명이 길어 경제성이 더 높다는 평가다. 실제로 이 줄을 판매하는 해외 사이트에는 각국 각지에서 "만족한다"는 후기를 남기고 있다.
충현중 학생들은 직접 붙인 작은 점들을 광명시에 쏘아 올렸다. 이 점들은 위험한 일을 안전한 일로 바꾸고, 법과 제도의 틈을 민원과 조례로 메꿔 '비윤리적인 죽음'을 막을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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