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배송’과 ‘친환경’은 양립할 수 없는 걸까. 환경부는 지난해 4월 과대포장 규제를 시행하려다 업계 반대로 2년 연기했다. 결국 ‘계도기간’은 과대포장을 일상화‧일반화하는 기간에 포함됐다. 상품이 주문 다음날 도착하는 ‘로켓 배송’을 제공하는 쿠팡과 마켓 컬리는 AI 등을 사용해 과대포장 개선에 나선다고 밝혔으나 여전히 개선된 점은 전혀 없다. 오히려 맛술 하나를 시키면 키 만한 박스에 담겨 오는 등 로켓배송 과대포장은 공공연히 지속된다. ‘빠른 배송’도 좋지만 소비자들은 이미 너무 많은 쓰레기에 죄책감과 자괴감에 충분히 시달려왔다. 환경을 생각한다면 로켓배송을 포기하는 것만이 정답일까.

지난 1일 한 누리꾼이 커다란 박스에 담겨 배송된 맛술 사진을 공개해 쿠팡 로켓배송 과대포장에 대한 오래된 논란을 불렀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업계 반대에 막힌 규제는 '계도기간'이란 명목 하에 유야무야돼 버렸다.  (사진 온라인커뮤니티)/뉴스펭귄
지난 1일 한 누리꾼이 커다란 박스에 담겨 배송된 맛술 사진을 공개해 쿠팡 로켓배송 과대포장에 대한 오래된 논란을 불렀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업계 반대에 막힌 규제는 '계도기간'이란 명목 하에 유야무야돼 버렸다.  (사진 온라인커뮤니티)/뉴스펭귄

평생 먹을 맛술 들었나…소비자 “로켓배송 친환경 포장 썼으면”

로켓배송 과대포장에 대한 문제 제기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지나치게 커다란 상자를 쓰는 것은 물론, 부피가 작은 물건을 하나로 포장할 수 있음에도 물건의 개수대로 상자나 비닐포장을 쓰는 것이다. 쿠팡은 원칙적으로 하나로 모아서 배송한다는 입장이지만, 과자 24개를 시키면 24개의 상자가 왔다는 사례는 ‘흔한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소비자들의 스트레스 호소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 2일 쿠팡 로켓 배송을 통해 맛술을 시켰다는 A씨는 온라인커뮤니티를 통해 “급하게 맛술이 필요해 로켓으로 한 병 샀는데 도착 알림 받고 나가보니 엄청 큰 박스가 있어 어리둥절”이라고 적으며 자신이 뭘 시킨 건지 순간 헷갈렸다고 했다. 그는 “평생 먹을 맛술 들어있을 스케일”이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지나치게 커다란 상자나 비닐포장에 들어있는 쿠팡 배송상품들에 대해 누리꾼들은 “조작 아니냐”, “버리기가 더 힘들다”, “로켓배송이 친환경 포장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등 의견을 표하고 있다. 

화장품 등 브랜드 상품을 고급스러운 포장에 담아 배송하는 ‘로켓 럭셔리’ 과대포장에 대한 불만도 계속되고 있다. 누리꾼  B씨는 지난 7월 로켓 럭셔리로 주문한 상품 포장에 대해 “과대포장 진짜 승질나네요”라고 불만을 표했다. 그는 “박스 쓸데 없는 고퀄이라 재활용될까 싶고 주머니도 쓰레기고 나한테 왜 짐을 주냐, 쿠팡”이라면서 피로감을 호소했다. 로켓 프레시를 이용했다는 C씨는 “쿠팡 빼르고 무배(무료배송)이라 자주 쓰고 싶은데 저런 과대포장 때문에 진짜 쓰기 싫다”고 토로했다. 

'우리 아들이 들어가도 남는다'며 커다란 로켓배송 상자와 아이를 함께 찍은 사진은 많은 이들의 실소를 샀다. 몇 년이 지났지만 터무니 없이 커다란 로켓배송 상자는 바뀌지 않고 '공공연한 사실'이 됐다. (사진 온라인커뮤니티)/뉴스펭귄
'우리 아들이 들어가도 남는다'며 커다란 로켓배송 상자와 아이를 함께 찍은 사진은 많은 이들의 실소를 샀다. 몇 년이 지났지만 터무니 없이 커다란 로켓배송 상자는 바뀌지 않고 '공공연한 사실'이 됐다. (사진 온라인커뮤니티)/뉴스펭귄

쿠팡은 인공지능(AI) 시스템을 통해 상품 크기에 맞게 포장해 배송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맞는 크기의 상자가 없을 경우 드물게 해당 상품보다 큰 종이박스에 포장될 수도 있다고 말했지만 사실상 과대포장이 ‘드문 일’이라고 보기 어려운 상황. 흔하디 흔한 과대포장은 아무 대책 없이 오롯이 소비자들 어깨에 부담감으로 얹히고 있다.

‘택배로 인한 환경 스트레스’에 소비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몰려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택배 폐기물이 환경 오염은 물론이고, 소비자들의 스트레스 원인이 되고 있다”며 “단기적으로는 비용이 들겠지만 기업은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현재의 배송 체계를 개선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로켓배송-과대포장은 ‘치킨게임’?...환경부·업계, 소비자 죄책감 조장

빠른 배송과 과대포장이 사실상 불가분의 관계라는 주장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해본 이들은 과대포장 지적에 대해 ‘로켓배송(자체 물류창고를 이용한 특급 배송)’의 시스템을 몰라서 그런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업계 관계자 역시 “쿠팡의 물류 시스템이 갖는 강점은 ‘속도’와 ‘정확성’이지만, 과대포장 문제는 결국 트레이드오프(한쪽을 얻으려면 반드시 다른 것을 희생해야 하는 경제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과대포장과 속도는 정말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걸까?

로켓프레시와 로켓럭셔리에 대한 불만도 계속되고 있다. (사진 온라인커뮤니티)/뉴스펭귄
로켓프레시와 로켓럭셔리에 대한 불만도 계속되고 있다. (사진 온라인커뮤니티)/뉴스펭귄

상품이 작은데도 여러 개의 상자나 비닐포장을 쓴다는  불만에 대해 쿠팡 측은 합포장을 통한 물류 최적화를 원칙으로 하지만, 물류센터 상황상 변수가 발생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쿠팡이 배송 시스템, 물류센터 상황을 개선하고자 노력한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드러난 바에 따르면 쿠팡의 관심사는 사업 확장이지 포장질이나 포장재 개선이 아니다.

쿠팡은 오는 2027년 로켓배송 권역 전국 확대를 목표로 3조원 이상의 투자를 집행하고 있다. 환경에도 노동자에게도 결코 친절하지 않은 로켓배송 시스템으로 쿠팡은 매분기 최고 실적을 경신하며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로켓배송을 이용하지 않는 것이 답일까? 로켓배송 시스템으로 인해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는 소비자들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논리에 번번히 말문이 막힌다. ‘포장재를 일일이 확인할 수 없는 것은 로켓배송 시스템상 어쩔 수 없으니 불편하다면 쓰지 말라’는 ‘합리적 설명’이다. 이미 유통업계를 장악한 쿠팡 이용을 포기하고 ‘소수의 정의’ 편에 서는 것만이 답일까. 편리함을 내던지는 것이 오직 방법일까. 이런 가운데 택배 과대포장 규제는 감감 무소식이다.

환경부는 지난해 4월30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던 ‘택배 과대포장 규제’에 2년의 계도기간을 부여하며 규제를 사실상 미뤘다. 당시 녹색연합은 이날 환경부 발표 뒤 성명을 통해 “2년간 27회 간담회를 했는데 준비를 못했다면 업계 요구로 시행을 포기했다”라며 환경부 직무 유기라고 힐난했다. 소비자 요청시 포장횟수와 공간 비율에 제한을 두지 않겠다는 예외 규정까지 두며 사실상 과대포장 규제를 피할 우회로로 악용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결국 ‘계도 기간’ 동안 택배 과대포장은 환경에 대한 책임을 모두 소비자들의 죄책감으로 돌린 채 성행하고 있다. 환경부와 업계가 만든 죄책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환경부는 지난 6월 1일부터 '과대포장 방지 및 재활용 촉진을 위한 포장재 기준 강화 방안'을 시행하며 식품과 화장품 등과대포장을 엄격 규제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올 하반기부터 모든 제조업체에 '포장구조 사전검토 시스템' 등록을 의무화해 출시 전부터 포장 설계가 친환경적인지 사전에 검증하고 보완하도록 제도화할 예정이다. 이 제도들을 통해 환경부는 소비자와 기업이 함께 ‘환경을 고려한 소비’를 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

그런데 2022년부터 기업들과 함께 간담회를 열어온 택배 과대포장 규제는 제도 시행은커녕 개선의 여지도 보이지 않고 있다. 쿠팡이라는 ‘거대한 공룡’이 친환경 흐름을 막아선 가운데, 부담감과 죄책감을 안은 채 로켓배송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에게만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될 일이다. 

저작권자 © 뉴스펭귄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