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흐름 속에 바이러스가 '뜻밖의 세계화' 길을 가고 있다. 1950년대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처음 확인된 바이러스가 유럽을 거쳐 인도를 휩쓸고, 이제는 중국에서도 유행이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로 각종 바이러스 매개가 될 수 있는 모기들의 서식지가 늘어난 탓이라고 지적한다.

지구 기온 상승으로 각종 바이러스를 옮기는 모기의 서식지가 넓어지고 있다. 사진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사진 클립아트코리아)
지구 기온 상승으로 각종 바이러스를 옮기는 모기의 서식지가 넓어지고 있다. 사진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사진 클립아트코리아)

아프리카→아시아→남미 치쿤구니야 대장정

치쿤구니야열은 반세기 넘게 아프리카와 아시아 일부에서만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풍토병이었다. 하지만 2004년 케냐에서 시작된 대유행이 인도양의 프랑스령 레위니옹으로 번져 주민 3분의 1이 감염되면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2005~2007년 남아시아로 확산돼 인도에서 대규모 유행을 일으켰고, 2013년 말에는 카리브해에 상륙했다. 2015년까지 카리브해 지역에서만 180만 명의 감염자가 보고됐다. 이후 남미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앙골라발 새로운 변이와 함께 브라질에 정착했다. 이 내용은 뉴욕타임즈를 통해 보도됐다.

최근에는 아시아에서도 급격한 확산세를 보이고 있다. 중국 광둥성에서 올해(7월 27일 기준) 4824명이 감염됐다고 한다. 바이러스가 최초로 발견된 아프리카보다 남미와 아시아에서 훨씬 더 많은 환자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바이러스는 새 대륙에 도착하면 변이를 통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경우, 중국 전역에 분포하는 흰줄숲모기에 적응해 전파 효율이 크게 높아졌다고 말한다.

이들이 대륙을 쉽게 넘어 정착할 수 있는 이유는 기후변화다. 영국 런던 위생열대의학대학원 연구에 따르면, 지구 평균 기온이 1도 오를 때마다 모기 서식지는 최대 500km까지 북상할 수 있다.

미네소타대학교 조나단 올리버 교수는 "기후변화로 인해 흰줄숲모기와 바이러스 매개체가 될 수 있는 종의 서식 범위가 북쪽으로 퍼지고 있다"며 "이런 종들이 자리 잡으면 사람들은 잠재적으로 모기들이 옮기는 광범위한 질병에 노출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뎅기열·지카 바이러스·치쿤구니야 바이러스·서나일 바이러스를 옮기는 흰줄숲모기가 코네티컷에서 일 년 내내 번식하고 있다는 보고가 나왔다. 유럽에서도 흰줄숲모기가 암스테르담과 제네바에서 발견되는 등 서식 범위를 급속히 확장하고 있다.

“한반도도 예외 아냐”... 열대 모기의 북상

한반도도 이런 변화에서 자유롭지 않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진화·계통유전체학연구실은 2023년 8월 제주도 동백동산 습지에서 열대 기후에서 서식하는 새로운 숲모기를 국내 최초로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연구진은 “기후변화로 이 숲모기뿐 아니라 더 많은 동남아시아 산지의 곤충들이 한반도로 유입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지금과 같은 기후가 유지된다면 뎅기열, 지카 바이러스, 황열병 등을 매개하는 이집트숲모기가 2040년부터 제주도 해안지역에서 출현할 가능성이 있다는 예측이다. 이미 한반도 내 모기 개체수는 확연히 늘었다. 2023년 통계를 보면 전년 대비 모기 개체수가 98% 증가했다. 

“옮겨 간 바이러스, 풍토병 될 수 있어"

미국에서도 모기 매개 질병 양상이 급변하고 있다. BBC 보도에 따르면 한때 동아프리카와 중동 일부에서만 볼 수 있었던 서나일(West Nile) 바이러스가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2023년에는 1100개가 넘는 모기 서식지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됐고, 2024년 기준 39개 주에서 서나일열 사례가 보고됐다.

미국도 바이러스가 대륙을 건너 토착화 된 사례를 겪었다. 지난해 20년 만에 미국에서 토착 말라리아 사례가 발생했고 캘리포니아와 애리조나에서는 토착 뎅기열도 발견됐다. 

전문가들은 이를 "따뜻하고 병든 세계"로의 전환이라고 경고한다. 기후변화 전망에 따르면 향후 100년 내에 약 10억 명이 새로운 모기 매개 바이러스에 감염될 것으로 예상된고 한다. 아시아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는 계절성 전파가 연중 전파로 바뀔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새 대륙에서 변이를 일으켜 적응한 바이러스가 ‘역수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모기의 번식과 개체수 증가에 적절한 환경적 조건이 바이러스 전파의 기반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류치융 중국질병통제센터 전문가는 "최근 기온 상승으로 여름이 길어져 모기의 발육·번식이 더 유리해지고 모기 밀도가 높아졌다"며 "동남아시아 등 유행 지역에서 자주 확진자가 유입되고, 모기 밀도가 높아지면 뎅기열과 치쿤구니야열 등이 유입성 전염병에서 풍토성 유행병으로 바뀔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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