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로 국토가 잠길 위기에 놓인 투발루 국민이 호주로 이주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달라진 날씨에 집을 잃는 '기후난민' 문제가 코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계획 이주(planned relocation)'가 앞으로 어떤 기준과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하는지를 두고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투발루는 기후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나라다. 이곳은 평균 해발 2m에 불과해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침수 위험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호주는 지난해 투발루와 조약을 체결하고, 매년 280명의 투발루 국민에게 영주권을 제공하기로 했다. 기후위기로 살던 곳을 떠나는 첫 국가 간 이주 협약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기후위기로 인한 이주가 성공하려면 단순히 이사 기회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는 곳을 옮기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삶의 질이 함께 보장되어야 한다는 취지다. 스탠퍼드대와 유엔대학 등 국제 연구진은 최근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발표한 논문에서 "주민의 자발적 동의와 충분한 지원이 결합될 때 이주가 삶의 안정을 가져올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전 세계 기후계획이주 사례를 통해 이주가 어떤 결과를 일으키는지 ▲동의 여부 ▲지원 수준에 달려 있다고 분석했다.
동의와 지원이 모두 부족했던 과거 사례도 있다. 모잠비크는 홍수 피해 뒤 정부가 주민을 다른 지역으로 옮겼지만, 새집은 4년 뒤에야 지어졌고 그 과정에 주민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생활 기반과 공동체가 무너졌다.
주민 동의는 있었지만 정책적 지원이 부족했던 사례도 있다. 브라질의 한 어촌 마을에서는 주민들이 정부의 도시 이주 제안을 거부하고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바닷가 인근으로 옮겼다. 그러나 정부 지원이 없어 이주는 7년이나 걸렸고, 그 과정에서 경제적·심리적 부담이 컸다.
동의 없이 지원만 있었던 르완다 사례도 있다. 정부는 기후 적응과 빈곤 완화를 목표로 주민들을 새 주택과 보건시설이 있는 지역으로 이전시켰다. 생활 인프라는 마련됐지만, 주민 동의 없이 추진돼 식량 문제와 지역 갈등이 발생했다.
연구진은 이와 달리, 동의와 지원이 모두 갖춰진 호주 Grantham 마을 사례를 긍정적 사례로 꼽았다. 홍수 피해 이후 지방정부는 주민 모임을 열어 의견을 수렴하고, 지방·주·연방정부가 협력해 이주를 지원했다. 그 결과 주민들은 생활 안정을 되찾았고 재난 위험도 크게 줄었다.
이 연구는 기후계획이주가 단순히 한 번의 이동으로 끝나는 사건이 아니라, 계획 단계부터 이주 후 정착까지 주민 의견을 지속적으로 듣고 필요한 지원을 이어가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피지의 한 마을에서는 이주 초기 지원은 충분했지만, 이후 배수로와 도로 공사 예산이 끊기면서 생활 불편이 다시 커진 사례도 있었다.
또 같은 ‘계획 이주’라도 지역 상황과 주민 생각이 달라, 일률적인 정책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알래스카 원주민 공동체처럼 수십 년간 자발적 이주를 추진했지만 행정·재정 장벽으로 실행되지 못한 경우도 있었고, 모잠비크처럼 정부가 일방적으로 강제 이주를 단행한 사례도 있었다.
투발루 국민의 호주 이주는 현재 자발적 신청을 기반으로 진행돼 주민 동의가 반영된 사례로 평가된다. 다만 연구진은, 이주가 진정으로 성공하려면 초기 기회 제공을 넘어 주택, 고용, 의료, 교육, 언어, 문화 적응 등 장기적이고 포괄적인 지원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팀은 앞으로 기후위기로 인한 이주는 더욱 늘어날 것을 전망하며 "주민 권리와 존엄을 지키는 정책과 지원이 뒷받침될 때 이주해야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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