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5일 '세계 펭귄의 날'을 맞아 극지연구소 이원영 박사가 2017년 남극에서 만난 펭귄 '겨울이'와 지금은 세상을 떠난 형제 '여름이'를 떠올렸습니다.
대규모 조사가 일반적인 남극 연구 환경에서 그는 처음으로 한 펭귄 가족에게 이름을 붙이고, 그들의 삶을 살폈습니다. '겨울이'라는 이름은 연구자의 일상을 넘어, 한 생명에 대한 깊은 애정의 기록입니다. [편집자 주]
펭귄 겨울이에게
2017년 남극 세종기지에서 너를 만난 지 벌써 8년이 지났구나. 기지 인근 펭귄마을에서 번식 조사를 하던 중, 네가 있던 가족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해서 너의 탄생에서 독립까지를 지켜봤어. 몰래 지켜봐서 미안. 그게 내 직업이란다. 동물의 행동을 관찰하고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유를 밝히는 게 내 일이지.
그해 너희 형제에게 나는 여름이와 겨울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살펴봤지. 안타깝게도 네 형제인 여름이는 둥지를 떠나기 전 죽고 말았어. 먹이가 충분하지 않아서 그랬던 걸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다행스럽게도 겨울이 너는 끝까지 살아남아서 둥지를 떠나 힘차게 뛰어다녔단다.
그때부터 해마다 네가 잘 살아 있는지 궁금해서 펭귄마을에 갈 때면 네 가족이 있던 둥지를 한 번씩 들르곤 했어. 그 이후로 겨울이 너를 다시 만나진 못했지만, 지금도 가끔 너를 떠올리곤 한단다.
사실 그동안 걱정이 많았어. 특히 지난 2020년 2월엔 남극 기온이 영상 18.3도까지 기록되었거든. 아르헨티나의 남극 에스페란자 베이스(Esperanza Base) 기지에서 기록된 온도를 보고 정말 깜짝 놀랐단다. 그해에 나도 펭귄마을에 있었는데 영상 10도까지 올라간 따뜻한 날씨 때문에 펭귄들이 모두 입을 벌리고 혀를 내민 채 열을 식히고 있었어.
네가 태어난 남극 반도 지역은 지구에서 가장 따뜻해지고 있고, 평균 기온은 1950년대 이후로 벌써 3도만큼 올라갔다고 해.
게다가 사람들은 네가 먹는 크릴을 잡으러 남극으로 가고 있어. 가끔 네 사냥터에 나타나는 커다란 고깃배는 인간이 보낸 것들이야. 너희들처럼 생존에 필수적인 건 아니지만 어떤 사람들은 크릴을 낚시 미끼로 쓰기도 하고, 건강에 좋다는 소문이 나서 기름을 추출해 식품으로 먹기도 한단다.
그런데 막상 크릴은 의학적인 효능이 입증되지 않아서 건강기능식품이 아닌, 그냥 일반식품으로 분류되거든. 너희에겐 목숨이 달린 중요한 식량인데 우리들은 단지 오락을 위해서 혹은 잘못된 오해로 인해서 너희들과 경쟁하고 있어. 인간을 대표해서 너희들에게 참 미안해.
우리가 만들어 낸 온실가스와 무분별한 어획으로 인해서 너희들의 터전이 위협받고 먹을 것도 줄어들고 있었어. 더 이상 남극의 얼음이 녹고 크릴이 사라지지 않도록 노력할게.
펭귄은 평균 수명이 20년이 넘고 2~3년이 지나면 부모가 된다고 하던데, 지금쯤 너도 어엿한 부모가 되었을지도 모르겠구나. 실은 그 사이에 나도 두 아이의 아빠가 됐어. 아이들이 크는 모습을 보며 겨울이 너를 많이 떠올렸단다. 우리 아이들도 겨울이 너처럼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게 보였거든. 새로운 생명이 커나가는 걸 가까이서 지켜보는 건 정말 큰 즐거움이야.
그런데 한편으론 걱정도 밀려와. 겨울이 네가 겪고 있을 남극의 기후위기를 우리 아이들도 한국에 살면서 앞으로 똑같이 겪을 게 확실해 보이거든. 올 4월은 전 세계적인 이상고온 현상과 맞물려서 더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어. 4월 14일 강원도 영월과 정선은 32.2도까지 올라서 관측 이래 가장 높은 온도를 기록했어. 독일은 30도가 넘었고, 스페인에선 38도까지 오를 정도로 이례적인 고온이 기록됐지. 갑작스럽게 더운 날씨 때문에 어제 우리 딸 윤이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며 이렇게 말하더라.
“아빠, 봄이 너무 빨리 지나가서 슬퍼. 겨울이 지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왜 벌써 여름이 오는 거야. 봄은 내 친구란 말이야. 봄이 더 오래 같이 있었으면 좋겠어.”
이제 갓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윤이가 이렇게 느낄 정도인데, 윤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면 지구는 얼마나 큰 위기에 처해 있을까? 너 역시도 나와 같은 고민과 걱정을 할 거라고 생각해. 우리 인간이 만든 잘못 때문에 지구가 점점 살기 힘든 곳이 되고 있구나.
지구가 더워지는 걸 막긴 어렵다고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아. 하지만 난 그냥 손을 놓고 있을 순 없다고 생각해. 겨울이 너를 만난 뒤로 몇 가지 결심한 게 있어. 가능하면 매일 출퇴근은 자전거로 하기.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타면 탄소 배출도 줄이고 건강도 챙길 수 있어서 참 좋은 습관인 것 같아. 그리고 고기를 조금만 먹고 지역 식재료를 소비할 것. 특히 소를 키워서 고기로 만드는 과정엔 많은 탄소가 쏟아져 나오고, 멀리서 수입한 식자재는 운송 과정에서도 탄소가 배출되거든. 내가 바꾼 소비 방식이 겨울이를 살리고 우리 아이들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조금씩 노력하고 있어. 다시 겨울이 너를 만난다면 조금은 떳떳하게 웃으면서 인사하고 싶어.
“겨울아, 그동안 잘 있었니?”
글. 이원영 박사 (극지연구소 빙하지권연구본부 선임연구원)
서울대학교에서 까치 행동생태 연구로 석사,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 2014년부터 극지연구소에서 펭귄을 비롯한 극지 동물의 행동을 연구하고 있다. 「펭귄은 펭귄의 길을 간다」, 「물속을 나는 새」 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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