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펭귄 이동재 기자]
※ 아래 편지는 호주 원주민인 데브라 댕크 박사와 릭키 댕크 활동가가 우리나라 국회에서 열린 '한국의 에너지는 어디에서 오는가' 토론회에 참석해 발언한 내용을 기자가 1인칭 편지 형식으로 재구성한 가상 콘텐츠입니다.
한국에 사는 여러분들께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희는 데브라 댕크와 릭키 댕크라는 호주 원주민 모녀입니다. 저희는 호주에서도 아주 외딴 곳인 구단지(Gudanji)라는 곳에 살고 있습니다.
호주 하면 당장 저희 같은 원주민들을 떠올리시는 분들은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호주에 원주민이 살고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는 사람도 많다는 사실을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현재 호주에 사는 원주민 인구는 호주 전체 인구의 4% 정도입니다. 사실 우리 원주민들은 외지인들이 들어와 살기 훨씬 이전부터 호주 대륙 전역에 퍼져 살아왔습니다. 자그마치 6만 년 동안이나요.
사람들은 때때로 우리 원주민들이 영어를 잘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우리가 똑똑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기도 하는데요. 하지만 그건 우리를 잘 몰라서 하는 얘기입니다. 우리 부족에는 많으면 8개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부족의 어르신들은 현명할 뿐만 아니라, 좋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지식을 겸비하고 있답니다.
위 사진은 우리 부족에게는 아주 성스러운 장소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살아왔고 또 우리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죠. 말하자면 아주 거대한 교회라고 할 수 있어요. 이곳에서 우리는 조상을 기억하고 기립니다.
우리 구단지 법에는 땅을 보존하고 지켜야 한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우리가 땅을 지켜주어야만 땅도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고 예로부터 생각해왔기 때문인데요. 땅뿐만 아니라 동물과 식물을 포함한 모든 생물을 지키고 관리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곳은 아주 오랫동안 포장되지 않은 작은 길들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멀쩡한 작은 길들을 밀고 큰 고속도로가 깔리기 시작했고, 고속도로 끝에는 생태 착취적인 개발 현장이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그떄까지도 우리는 프래킹(Francking)이 뭔지 잘 몰랐습니다.
아, 프래킹은 한국어로 수압파쇄공법이라고 합니다. 지하 수계에 존재하는 가스, 석유 등을 채취하기 위해 땅을 깊게 파서 유독성 물질을 넣고 바위를 파쇄하는 기술을 말합니다. 유독성 물질에는 포름알데히드와 같은 물질이 포함돼 있습니다. 암, 폐질환, 심장병 등을 유발할 수 있는 독성 물질입니다.
우리 부족의 생활 반경에도 광산이 들어섰습니다. 광산에서 나온 유독 물질은 우리가 어렸을 적부터 수영도 하고 물고기도 잡고 식수도 길어다 마시는 물에 흘러들어가 우리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 유독 물질은 사람뿐만 아니라 멸종위기종을 포함한 주변의 모든 동물과 식물 등 생태계에도 아주 유해한 영향을 미칩니다.
(*수압파쇄기술은 한번 파쇄를 진행할 때마다 뉴욕 도시 전체에서 일 분 동안 사용하는 만큼의 물을 사용한다. 수압파쇄기술을 사용한 시추가 지속된다면 2050년까지 약 15억톤에 달하는 이산화탄소가 배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한 개 기업이 우리 지역에서 시추 사업을 하고 있는데요. 앞으로 4개 기업이 더 우리 지역에서 시추 사업을 펼치고자 계획하고 있는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광산에서 캐낸 광물은 세계 곳곳으로 수출되는데요. 그중에서도 한국은 호주가 광물들을 거래하는 가장 큰 파트너 국가 중 하나입니다. 이게 바로 우리가 여러분들에게 편지를 쓰게 된 이유입니다.
우리가 오랫동안 살아온 땅은 지금 슬프게도 외지인이 그저 잠깐 들어와서 돈을 벌기 좋은 곳이라고 치부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근로자들은 이곳에 와서 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도시로 가서 생활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이 이 땅이 개발 사업으로 인해 얼마나 황폐하게 변하는지는 보지 못합니다.
우리 부족은 적어도 2400여 세대 동안 이 땅에서 살아왔습니다. 땅이 황폐하게 되면 우리의 삶도 황폐해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현대화가 신속히 이뤄져야 한다, 크고 높은 건물들이 건설돼야 한다고만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생명을 떠받치고 있는 것들이 파괴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합니다.
우리는 기름을 먹고 살지 않습니다. 이것들은 누군가에게 부를 가져다 줄 지 모르지만, 우리의 생명을 지켜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깨끗한 물과 공기 그리고 지구입니다.
100여년 전부터 호주 지역의 환경은 비가역적으로 파괴되고 있습니다. 파괴되고 있는 환경을 보고 있노라면 호주 정부와 비원주민들은 이 땅과 나라를 지키는 방법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호주에는 각각 다른 법과 신념, 가치 체계를 가진 250여개의 원주민 부족이 있습니다. 그들은 6만5천년이 넘는 유구한 시간 동안 호주 대륙에서 살아왔고, 땅을 보존하고 지킬 수 있는 많은 노하우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원주민들도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모든 생명이 보존돼야만 우리가 사는 세상이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이란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한국에 온 이유는 우리 모두 함께 잘 살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자연을 지키는 일은 결국 지구에 함께 살아가는 여러분들에게도 좋은 일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문화에서도 가족과 문화를 특별히 소중한 것으로 여기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에게 간곡히 요청합니다.
여러분들이 호주 정부가 우리 원주민과 잘 소통하고 있는지, 개발 과정에서 우리 원주민들과 협의하고 동의를 구하고 있는지를 주의 깊게 봐주시기를 부탁합니다. 우리는 서로 돕고 서로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인류를 위해 환경은 파괴되지 않아야 합니다. 긴 편지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데브라 댕크, 릭키 댕크 모녀 올림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분투하는
뉴스펭귄에 후원으로 힘을 실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