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펭귄 이동재 기자] 얼마 전 인도의 한 어린아이가 폭염 속에서 몸부림을 치며 괴로워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뉴스로 보도됐다. 영상 속에서 주변 사람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아이에게 물을 뿌리고 부채질을 해댔다. 매년 땅과 바다의 최고 기온이 갱신되고 있는 기후위기 시대. 숨을 헐떡이는 아이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고 공포스러웠다.

위에서부터 문산수억고등학교 환경 축제, 영월 농촌유학 프로그램 취재 현장. (사진 이동재 기자)/뉴스펭귄
위에서부터 문산수억고등학교 환경 축제, 영월 농촌유학 프로그램 취재 현장. (사진 이동재 기자)/뉴스펭귄

문산수억고등학교 환경 축제, 영월 농촌유학까지 최근 진행했던 취재의 현장에는 공교롭게도 모두 아이들이 있었다. 취재 현장에서 아이들은 망가져가는 지구의 장례식을 치렀고, 어른들에게 자연을 더럽히지 말라며 그림을 그렸다.

누구보다 기후위기 시대를 오래 살아내야 하는 세대이기에, 이들이 기후위기와 관련한 취재의 대상이 되는 일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티 없이 맑고 천진한 아이들을 취재하며 내가 느낀 감정은 뜻밖에 은근하게 가슴을 죄는 괴로움, 죄책감 같은 것들이었다.

서울국제환경영화제 상영작 ‘한숨(감독 김슬기)’은 극단적인 환경 파괴로 인한 피해가 고스란히 어린아이들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명확히 했다. 영화에는 자세히 설명되지 않았지만, 환경 관련 뉴스들을 찾아보는 관객이라면 어렵지 않게 작품의 배경을 유추할 수 있다.

야생 동물의 서식지 파괴로 인수 공통 감염병의 발생 빈도가 높아지고, 물, 공기, 땅 등 인간의 생존을 위한 필수 자원들이 모두 오염돼버린 세상. 그곳에서 건강을 잃고, 친구와 부모를 잃고, 일생에 한 번뿐인 추억을 잃고, 무엇보다 마음껏 숨쉴 생명으로서의 최소한의 권리를 잃은 이들은 바로 어린이들, 그렇게까지 되어버린 상황에 조금도 일조한 적이 없는 무고한 어린이들이다.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앞서 사용했던 당연한 권리를 '잃었다'는 식의 표현은 가해의 주체를 숨긴 비겁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잃은 것이 아니라 빼앗긴 것이다. 아이들이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를 빼앗은 주체는 단연 모든 것을 선택하고, 결정하고, 계속하며, 멈추지 않은 기성세대, 즉 어른들이다.

혹자는 기후위기의 대응책으로 오래 묵은 경제 논리를 이야기한다. 인간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도록 내버려두면 결국 모두 살기 위한 선택을 할 것임으로 경제도 기후 문제도 전부 해결될 수 있다는 논리. 또 어떤 이들은 기후위기 해결을 위해 사람들의 이기심에 기대야 한다고도 한다. 피해가 언제든지 자신에게도 올 수 있다고 일깨워 행동을 유도하거나, 변화의 흐름에 올라타 돈을 벌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과 시장 경제, 동력으로서 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이러한 믿음의 기저에는 통제 받기를 거부하는 인간의 욕망이 있다. 산업화와 자본주의가 전세계를 휩쓴 20세기와 21세기, 거나하게 부추겨진 욕망 속에서 사람들은 절제하기보다 속력을 내는 것에 익숙해졌다.

인간은 한정된 자원을 두고 멈추자고 약속하기보다 남들보다 더 빨리, 더 많이 가지는 것을 선택했다. 미래의 후손들에게 좋은 세상을 남겨주자는 작은 목소리들은 묵살되고 구석에 처박혔다. 우리의 지구. 우리 모두의 지구를 파괴하고 착취하고 고갈시킨 주체는 기껏해야 몇 십년을 더 살다 이 세상을 떠날 '어른들'이었다.

그러나 모든 이른바 어른들을 탓하고 싶지 않다. 허공에 흩어져버리는 작은 목소리일지라도 끊임없이 외치는 어른들도 있기 때문이다. 문산과 영월에서 아이들 곁을 지킨 어른들이 꼭 그랬다.

가장 크게 피해를 입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모든 갈등 해결의 기본이다. 지난 4월과 5월, 19명의 청소년이 제기한 기후소송에 대한 변론이 열렸다. 청소년들은 국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했다며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이들의 바람은 기후위기 대응의 주체로서 직접 기후 관련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것이다.

지금보다 한층 더 과격해질 기후위기 시대의 폭풍을 맨몸으로 맞게 될 다음 세대.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힘을 실어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면 무리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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