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열병합발전소. (사진 OCISE 홈페이지 캡처)/뉴스펭귄
본문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열병합발전소. (사진 OCISE 홈페이지 캡처)/뉴스펭귄

[뉴스펭귄 이수연 기자] 환경부의 2024년 예산안에서 기업의 탄소감축을 지원하는 한 항목의 예산이 전년보다 8% 줄어든 이유를 보니, ‘저탄소 연료전환 지원사업’의 폐지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막대한 지원에도 기업들이 비용 부담으로 저탄소 연료전환에 선뜻 나서지 않는 가운데, 유럽보다 16배 저렴한 국내 탄소배출권 가격이 원인 중 하나라는 지적이 나온다.

환경부가 1일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에는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참여 기업에게 제공하는 ‘탄소중립설비 지원사업’ 예산을 올해 1388억원에서 111억(8%) 삭감한 1277억원으로 편성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온실가스 배출권을 할당받은 기업에게 탄소감축 효과가 검증된 설비의 설치비를 지원하는 이 사업은 태양광 설비로의 교체나 바이오매스, LNG 등 저탄소 연료로의 전환을 돕는다. 온실가스 배출권이란 한 기업에 할당된 온실가스 배출허용량을 말하며, 배출권을 시장에서 서로 거래할 수 있는 제도를 배출권거래제라고 한다.

 

도와준대도 수요 없는 저탄소 연료전환
정책 실패로 탄소중립 미뤄지나

<뉴스펭귄> 취재를 종합하면, 환경부의 내년도 탄소중립설비 지원사업 예산이 삭감된 이유는 그중에서 더 이상 수요가 없는 '저탄소 연료전환 지원사업'을 추진하지 않기로 해서다. 사실상 '정책 실패'인 셈이다. 2022년 환경부의 지원사업 공모에 단독으로 참여했던 여수산업단지 집단에너지사업자 ㈜데이원에너지가 비용 부담으로 바이오매스 연료전환을 포기했고, 올해 5차례 진행 중인 공모에 어떤 기업도 지원하지 않으면서 내년 예산도 사라졌다. 산업단지 집단에너지사업이란 산업단지 인근에서 열과 전기를 동시에 생산해 산단 입주업체들에 공급하는 사업을 말한다.

환경부 관계자는 <뉴스펭귄>과 통화에서 "우리가 100억을 지원해줘도 50억은 ㈜데이원에너지가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비용도 많이 들고 바이오매스 연료 구하기도 까다로워서 기업들의 수요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저탄소 연료전환 지원사업은 유연탄을 연료로 사용하는 산업단지 집단에너지사업자가 바이오매스, LNG 등 저탄소 연료로 전환하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산업단지 집단에너지사업자는 업체들에 저렴한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주로 유연탄의 비중이 높다. 2021년에 들어서야 LNG 열병합발전소가 등장했다.

기후위기 시대에 석탄 사용량이 많은 산업단지 집단에너지사업의 연료전환은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에도 중요하다. 지난 4월 수립한 제1차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을 보면, 산업부문은 온실가스 배출권을 할당받은 기업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감축설비 지원을 확대하는 수단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지원에도 기업들은 부담을 이기지 못하며 저탄소 연료전환은 미뤄지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문제가 탄소배출권 가격에 있다고 말한다. 현재 국내 탄소배출권 가격이 매우 저렴한 상황에서 기업들이 굳이 큰 비용을 들이면서까지 연료전환을 할 요인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문제는 너무 값싼 탄소배출권 가격?
유럽보다 16배 저렴

권경락 플랜 1.5 활동가는 "지금 우리나라 탄소배출권 가격이 유럽보다 16배 저렴하다. 매우 싸니까 석탄은 그대로 사용하면서 배출권을 구매하는 선택이 연료를 전환하는 것보다 쉬울 수밖에 없다. 결국 배출권 가격이 적절하게 형성돼야 기업들도 실질적인 탄소감축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유럽연합의 탄소배출권은 1톤당 약 12만원인 반면 국내 탄소배출권은 약 7500원으로 16배 차이가 난다.

이상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국제 시장에서 석탄과 LNG 가격 차이가 크고, 바이오매스는 연료 수급이 어렵다"면서 "기업 입장을 들어보면 저탄소 연료전환의 중요성은 인지하고 있지만, 이러한 한계 속에서 배출권 가격이 저렴하니 (연료전환에) 투자할 요인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더 파격적으로 연료전환 지원해야"
"배출허용 총량 줄여서 배출권 가격 높여야"

탄소배출권과 석탄 가격은 낮고, 저탄소 연료 확보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에너지 전환을 어떻게 유인할 수 있을까. 이상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기업의 수요가 없다고 정부가 아무런 대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석탄을 사용하는 기업들이 다른 연료로 바꾸기는 더 어려워진다. 배출권 가격이 월등히 높아져야 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문제다. 정부가 지금보다 규모를 늘려 연료전환을 파격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탄소감축의 실효성을 위해 중소기업뿐 아니라 대기업 집단에너지사업자의 연료전환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독일은 2020년 열병합발전법을 개정하고 친환경 연료전환에 이중으로 보상한다. 연료전환 투자비를 지원해주는 용량 프리미엄과, 기존 연료와 친환경 연료의 가격 차이를 보상해주는 요금 프리미엄으로 나뉜다. 

그러나 정부가 연료전환에만 200억, 300억씩 지원해서 될 문제는 아니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먼저 배출허용 총량을 줄여 배출권 가격을 높여야 기업들이 다른 감축수단에 투자하게 된다는 것.

권경락 활동가는 "현재 느슨한 배출허용 총량을 엄격하게 할당하면 배출하는 기업들이 구매해야 할 배출권이 늘어난다. 그렇게 배출권 수요가 늘어나면 가격도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적어도 기업들이 배출권을 사서 상쇄할지 그 돈을 연료전환에 투자할지 고민이라도 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나라 제3차 계획기간(2021~2025년) 배출허용 총량은 연평균 6억 970만톤이다.

한편 LNG 열병합발전소는 기존 석탄발전소보다 덜하지만 여전히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화석연료 발전소다. 노진선 기후솔루션 연구원은 "LNG나 바이오매스는 생산 과정에서 탄소가 많이 발생하고 발전소 운영 시에도 메탄이 발생해 청정연료라고 보기 어렵다"며 "가장 좋은 건 재생에너지 사용이지만 지금 같은 과도기에는 발전소가 온실가스 감축 기술을 개발하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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