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세관서 적발된 멸종위기종의 비극적 종착지

  • 이후림 기자
  • 2021.11.08 07:00

[뉴스펭귄 이후림 기자] 지난 7월 살아있는 수입 외래생물 및 멸종위기종 173마리가 인천 세관서 무더기로 적발됐다. 종류도 이름도 다양했다. '괴물 독 두꺼비'로 불리는 중남미 사탕수수두꺼비부터 국제적 멸종위기종 카이만악어까지 모두 작고 비좁은 박스 안에 물건처럼 담겨 있었다.

밀수업자 정체는 '애완동물 판매업자'. 정상 신고한 개체들이 담겨있던 포장박스 하단에 이중 바닥을 만들어 멸종위기종을 은닉했다.

당시 인천본부세관은 적발된 불법 수입 건에 대해 전량 통관보류 조치하고 건강한 생태계를 해칠 우려가 있는 생물이 불법 반입되지 않도록 통관단계에서 검사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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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된 영상 속 충격적인 실태를 마주한 사람들은 '밀수업자와 구매자 모두 추적해 가중처벌을 내려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는 한편 적발된 개체들 사후 처리에 궁금증을 가졌다.

당시 적발된 외래종 아프리카발톱개구리 (사진 인천본부세관 제공)/뉴스펭귄

환경부 확인 결과 7월 24일 적발된 개체 중 멸종위기종 57마리를 제외한 외래생물 116마리는 전량 폐기됐다.

환경부 생물다양성과는 4일 뉴스펭귄에 "통관보류된 개체들은 대부분 폐기되는 것이 맞다"면서도 "다만 사이테스종(국제적 멸종위기종)은 육안으로 봤을 때 이상이 없을 경우, 검역을 통해 통과 여부를 결정한 뒤 국립생태원 '사이테스 쉘터'로 보내진다"고 했다.

국제적 멸종위기종은 사이테스(CITES·멸종 위기에 처한 동식물 교역에 관한 국제협약)에 따라 임의 폐기가 불가하다. 사이테스 협약에 등록된 동식물은 3개의 부속서에 따라 그 안에서도 등급이 나뉜다.

Ⅰ부속서에 속한 개체들은 학술·연구 목적 외 상업 목적 거래가 금지된 종들이며, Ⅱ부속서에 속한 개체들은 사전 신청을 통해 상업, 학술·연구 목적의 국제거래가 가능하다. Ⅲ부속서에 속한 개체들에는 Ⅱ부속서에 비해 조금 더 완화된 규제가 적용된다.

당시 적발된 멸종위기종 그린아나콘다와 카이만악어 57마리는 모두 Ⅱ부속서에 속하는 멸종위기 개체들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규정상 '사이테스 쉘터'로 옮겨졌어야 했다. 그러나 뉴스펭귄 확인 결과 폐기된 외래생물을 제외, 환경부 규정에 따라 사이테스 쉘터에 있어야 할 두 멸종위기종은 그곳에 없었다.

당시 적발된 멸종위기종 카이만악어 (사진 인천본부세관 제공 영상 캡처)/뉴스펭귄

인천본부세관에 따르면 당시 적발됐던 멸종위기종 57개체는 전부 폐사했다. 살아있는 개체들이 작고 비좁은 포장박스 하단에 오래 눌려있던 탓에 상태가 악화돼 모두 죽었다는 것.

인천본부세관 측은 "적발 당시 이미 개체들 상태가 좋지 않았다"며 "대부분은 이미 죽어 있었고 살아있던 개체마저 상태가 매우 안 좋았다. 밀수업자는 대부분 세관에서 적발되지 않기 위해 매우 열악한 환경에 동물들을 방치한 채 들여온다. 이렇게 들여온 멸종위기종들은 대부분 정상적인 상태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국내에서 국제적 멸종위기종 밀거래 유통과 관련된 최다 연구를 진행한 심용주 박사는 이날 뉴스펭귄에 "불법 반입된 살아있는 동물은 검역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멸종위기종이든 외래종이든 대부분 폐기처분"이라는 충격적인 답변을 내놨다.

당시 적발된 멸종위기종 그린아나콘다 (사진 인천본부세관 제공 영상 캡처)/뉴스펭귄

심 박사에 따르면 그린아나콘다, 카이만악어와 같은 Ⅱ부속서에 속한 동식물은 엄밀히 말하자면 일명 '찐' 멸종위기종이 아닌 '멸종위기 예비종'이다. 국내에서 Ⅰ부속서에 속한 개체들과 Ⅱ부속서에 속한 개체들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고 통합해 멸종위기종이라 칭하다 보니 이와 같은 '오해'가 생기곤 한다고. 결국 멸종위기종이지만 동시에 멸종위기 예비종인 개체들은 모호한 시스템에 가려져 아무도 모르게 희생되는 셈이다.

심 박사는 "불법 수입업자들은 대부분 부속서Ⅱ에 속한 개체들을 밀수한다"며 "아무리 예비 멸종위기종이라지만 엄밀히 멸종 위험에 처한 소중한 유전적 자원이다. 그런데 검역본부는 검역 서류가 없는 개체들 중 덩치가 큰 개체들이 아닌 양서류 파충류 등은 제대로 된 안락사도 없이 불살라버린다"고 주장했다.

국립생태원 쉘터도 원칙적으로는 Ⅱ부속서 이상 개체들 사이에서 보전가치가 있는 개체만을 선별해 센터에 들인다고 알려졌다. 보전적 측면에서 큰 가치가 없는 종들은 쉘터에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때문에 실제 심각한 절멸위기에 처한 종이 아니라면 제아무리 멸종위기종이라도 쉘터에 들어가기란 쉽지 않다.

(사진 Unsplash)/뉴스펭귄

그렇다면 원산지로 돌려보내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심 박사는 "적어도 현재 국내에서는 불가하다"는 소견을 내놨다. 그는 "미국의 경우 불법 반입된 개체들은 모두 농무부 산하 연구시설로 보내진다. 이후 경매를 통해 민간인이 입양할 수 있게 하거나 아주 중요한 개체일 경우 협의해 원산지로 돌려보낸다. 혹은 각국 연구소로 보내는 경우도 있다"며 "반면 국내의 경우 발생 가능성이 미미한 질병 등을 문제 삼으며 대부분 소각한다. 관련 시스템이 열악할뿐더러 부속서Ⅰ과 부속서Ⅱ를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는 탓"이라고 말했다.

이어 "결국은 정부가 나서 관리해야 한다. 무조건적인 규제보다는 적극적인 역추적이 필요하다. 문제 소지가 있는 종들을 최소한 누가 어디에 풀었는지는 알고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생태계가 무방비 상태로 당하지 않도록 무조건적으로 규제를 강화하는 편보다 문제 소지가 있는 종을 선제적으로 추적해 해당 종 DNA 샘플을 보관하고 있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진 Unsplash)/뉴스펭귄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정작 과도한 형벌을 받아야 하는 밀수사범 형량은 아이러니하게도 매우 약한 편이다. 초범은 훈방하는 경우가 많고 기껏해야 벌금형을 받는다. 추징금 역시 약한 편이다. 지금껏 밀수사범이 실제 구속된 사례는 단 두 차례에 불과하다.

당시 적발된 외래종 사탕수수두꺼비 (사진 인천본부세관 제공 영상 캡처)/뉴스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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