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웨이스트 피임법을 찾아서

  • 임병선 기자
  • 2021.11.06 00:00
콘돔 3개들이 제품에서 나오는 쓰레기 (사진 임병선 기자)/뉴스펭귄

[뉴스펭귄 임병선 기자] 현대인의 모든 생활에서 그렇듯, 피임을 할 때도 플라스틱 쓰레기가 발생한다. 인류가 쓰레기 없는 세상을 꿈꾼다면 제로웨이스트 피임도 필요하다. 우리에게 그런 방법이 있을까.

피임 인구 중 55.5%는 콘돔, 18.2%는 경구 피임약을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9월, 바이엘코리아가 20~40대 여성 중 조사 시점 1년 내 피임을 경험한 적이 있는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다.

국내 한 소매점에 비치된 콘돔 제품 (사진 임병선 기자)/뉴스펭귄

2020년 기준 전 세계에서 한해 약 350억 개 판매된 콘돔은 가장 대표적인 일회용 피임기구다. 대부분 천연고무 재질이며, 제품에 따라 플라스틱 일종인 폴리우레탄을 쓴 것도 있다. 국내 분리수거 지침에 따르면 쓰고 난 콘돔은 재질과 관계없이 분리수거로 재활용이 불가능해 일반쓰레기로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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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뉴스펭귄

환경단체 그린피스와 국내 콘돔 업체인 이브콘돔 등은 일반적으로 다 쓴 콘돔을 변기에 흘려보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하수관을 막을 가능성이 높으니 올바로 배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공통적으로 본품을 감싼 포장재는 비닐, 은박이 접합된 특수 필름이다. 이처럼 여러 재질이 접합된 필름의 경우 비닐류 재활용 가능 표기가 돼 있지만 내부에 윤활제 등 물질이 묻어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일반쓰레기로 버려진다. 진열용 포장도 추가된다. 콘돔은 판매를 위해서 여러 개가 한 박스 안에 들었고, 박스 겉면은 비닐로 감싸져 있다.

겉에 비닐이 없는 대용량 제품 (사진 임병선 기자)/뉴스펭귄

해외의 경우 콘돔을 대신해 다회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피임 기구가 시판된다. 피임 격막, 자궁 경부 캡, 피임 스펀지 등이다. 이 3가지 다회용 피임기구는 재질에 차이가 있지만 원리는 비슷하다. 여성 질 속에 삽입하면 중간에서 정자가 자궁으로 이동하는 것을 막는다. 국내에서는 2021년 10월 기준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은 다회용 피임기구는 없다.

경구피임법은 약 포장 때문에 재활용 불가능한 일회용 플라스틱 폐기물, 종이 폐기물 등이 발생하므로 제로웨이스트라고 볼 수 없다. 경구피임법은 호르몬을 조절하는 약을 통해 여성 난자 배란을 억제하는 방식이다. 

경구피임약을 비롯한 정제 형태 약은 습기에 매우 약하기 때문에 플라스틱으로 된 용기에 개별 포장해 판매한다. 그런데 알약을 담은 포장재는 폴리염화비닐(PVC)로 재활용이 불가능한 소재다.

재활용이 불가능한 폴리염화비닐은 일반적인 제품의 경우 다른 소재로 대체하도록 규제가 이뤄졌다. 하지만 약품에는 아직 폴리염화비닐이 사용된다. 다른 소재가 적합하지 않고, 대체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최근에는 종이로 은박 위를 한번 더 감싼 '안전포장'을 적용하는 제품도 많아졌다. 

(사진 Unsplash)/뉴스펭귄

또 다른 피임법 중 제로웨이스트가 가능한 방법이 있을까.

불임수술의 경우 수술 후에는 피임으로 인한 쓰레기가 나오지 않지만 대중적이지 않다. 불임수술 종류로는 남성의 정자가 이동하는 통로인 정관을 단절시키는 정관수술, 여성의 난관을 절개하거나 묶어 수정을 차단하는 난관수술이 있다. 그러나 효과가 반영구적이라 특정한 시간대에만 피임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대안이 될 수 없다. 또 불임수술은 임신이 가능하도록 복구가 안될 가능성도 있다.

영구적인 불임수술 한계를 극복하려는 피임시술도 있다. 여성 팔 안쪽에 호르몬 조절 장치를 이식해 3년 간 피임 가능한 임플라논 시술, 여성 자궁에 호르몬 조절 장치 IUD(루우프, 미레나, 카일리나, 제이디스 등)를 삽입하는 방법 등이다. 이들은 쓰레기가 거의 없는 피임법으로 꼽히지만 비용이 많이 발생하고 시술을 따로 받아야 하는 단점이 있다.

IUD 시술을 받은 여성의 엑스레이 (사진 Nevit Dilmen)/뉴스펭귄

일부 사람들은 피임도구를 이용하지 않고 성관계 중 체외사정을 하는 방식이 진정한 제로웨이스트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그 효과가 개인 감각에 의존하기 때문에 피임 효과가 보장되지 않으며 전문가들도 권장하지 않는다.

이처럼 현재로서는 많은 사람이 일상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제로웨이스트 피임법은 없다. 그러나 미래에는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물과 초음파만으로 일시적인 피임을 하는 기구가 개발되고 있다. 독일 출신 한 디자이너는 초음파와 물로 남성 고환을 가열해 정자 생산을 막는 장치 '코소(COSO)'를 디자인했다. 이 기구는 2012년 미국 노스캐롤라니아 의과대 연구진이 초음파를 이용해 실험용 쥐 정자를 전부 없앴던 연구에서 착안한 것이다. 하지만 코소는 구상 단계이며 실제 제품으로 출시될지 여부가 불분명하다.

물과 초음파를 이용한 피임기구 코소 (사진 COSO)/뉴스펭귄

당장 쓸 수 있는 대안이 없다면 콘돔과 경구피임약 포장재 개선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콘돔이나 경구피임약에 여러 겹 포장을 하는 이유는 유통 과정 상 파손되지 않아야 한다는 안전성을 쓰레기 감량보다 최우선으로 꼽기 때문이다. 모든 의료기기와 의약품 등 유통 과정에서 만전을 기해야 하는 제품에 전반적 문제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고 의료폐기물이 급증하면서 이런 논의는 필요성이 커졌다. 국내외 많은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의료폐기물과 의약품 포장재 등이 급증한 것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당국이나 의료계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입장이다.

국내 자원순환 전문가인 한국자원순환사회적협동조합 홍수열 박사는 "콘돔 포장과 같이 필수적인 경우 플라스틱을 완전 사용하지 않기보다, 포장재에 바이오플라스틱 등을 적용해 소각됐을 때 탄소 절감이 가능한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뉴스펭귄에 말했다.

이어 약품 포장에 대해서는 "건강보조식품처럼 장기 복용하는 경우 단일 포장 대신 한 용기에 넣는 '벌크 포장'을 하고, 유리병과 같은 것으로 대체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항생제처럼 일정 기간만 필요한 제품은 벌크 포장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국내 의료계에서는 일부 업체가 플라스틱 줄이기를 시도하고 있지만 결과는 아직 미진하다. 대표적으로 동아제약은 올해 7월 자사 제품 179개 중 160개를 포장재를 바꾸거나 분리수거가 용이하도록 구조를 개선했다. 한국화이자제약의 경우 특정 제품 포장 박스 크기를 줄이고, 플라스틱 거치대를 종이로 변경하는 등 약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피임기구 업체 중에서는 이브콘돔처럼 플라스틱 절감을 위해 겉 비닐을 쓰지 않거나, 세이브와 같이 부피를 최소화한 경우가 있다.

포장재를 최소화한 형태의 콘돔 제품 (사진 임병선 기자)/뉴스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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