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피셜 지오그래픽] ⑦ 막가디가디 소금 사막에서 별을 덮고 자다

  • 남준식 객원기자
  • 2020.11.20 08:00
[내’피셜 지오그래픽]은 한 대학생 지리학도가 10개 나라를 ‘탐험’한 기록이다. 이런 류의 기록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배낭여행’이라는 단어 대신 탐험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찾아간 곳들의 지구생태적 가치가 우선은 크기 때문이다. 더불어 지구의 살갗 아래까지 날 것 그대로 바라 본 시선이 단순한 여행의 차원을 넘은 까닭이다. 세상을 자기 희망대로 단순화하지 않았을 때야 비로소 그전까지 보이지 않던 문제들이 보이기 시작한다(김영민, 공부란 무엇인가 중에서). 이 연재물이 가치를 갖는 것은, 젊은 지리학도가 170일간의 탐방을 통해 새로운 것들, 현상들, 문제들을 발견했다는데 있다. 이런 연유로, 연재물의 타이틀 [내’피셜 지오그래픽]은 ‘내가 쓴 특별한(스페셜)’, ‘내가 생각을 교정하여 정의한(나의 뇌피셜)’ 등의 중첩된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연재물은 모두 10회에 걸쳐 독자들과 만난다. [편집자]

 

내 계획은 요하네스버그 in 나이로비 out (사진 남준식) / 뉴스펭귄

"요하네스버그에 도착했다. 만감이 교차한다. 인천에서 홍콩까지 4시간, 홍콩에서 8시간 경유, 다시 13시간 넘게 걸려 조벅에 도착했다. 급하게 계획을 틀어 공항과 연결된 호텔로 들어왔다. 첫날부터 뭐 하나 쉬운 것이 없다. 내일의 일도 알 수 없다. 하지만 힘내자. 힘든만큼 더욱 추억이 되니까. 더 큰 사람이 되어 돌아오자 준식아. 여기는 겨울이라 바깥공기가 차다.

2016.6.25 토요일"

浚(깊은 준) 植(심을 식), 나도 이 나무처럼 우람할 수 있다면 (사진 남준식) / 뉴스펭귄

벌써 5년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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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한 살, 대학생이 되고 첫 배낭여행으로 아프리카 5개국을 다녀왔다. 정말 훌륭한 선택이었고 어쩌면 내 삶에 큰 이정표 같은 사건이었다. 모든 것은 점이 되어 연결된다는데, 그곳에서 보낸 60일은 어쩌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시작점일지도 모른다. 가기까지 우여곡절(迂餘曲折)이 많았지만 어디 탄탄대로(坦坦大路)만이라면 재미가 있을까! 많은 것들이 따라주지 않았지만 가고 싶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굳게 밀고 나갔다. 

생각만 많고 실천이 따라주지 않을 때 내가 유용하게 쓰는 방법이 하나 있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일단 물을 엎지르고 보는 것이다. 고로 나는 티켓(가격이 쌀수록 환불이 안 된다)부터 끊고 보았다. 그러고 나서 취한 행동은 유경험자를 찾아 조언을 구하는 것이었다. 내게 닥친 어려움과 궁금증을 종이에 빼곡히 적어서 이미 그곳에 다녀온 선배를 찾아가 침이 마를 때까지 묻고 또 물어보았다.  

사람들은 아프리카가 위험하다고 했다. 그네들 말에 따르면 아프리카는 온갖 부정적이고 자극적인 가십거리쯤에 불과했다. 그런데 막상 "다녀오셨어요?"라고 물으면, "가보지는 않았는데, 그렇다더라"는 답이 돌아왔다.

사람들 인식 속 아프리카는 너무나 멀고 거친 곳 같았다. 가뜩이나 당시는 IS 사태와 맞물려 있었고, 일련의 사건들이 아프리카 대륙 전체 이미지로 일반화돼 근거 없는 루머들을 생산하고 있었다. 그래, 경험하지 않은 자들의 조언에 휘둘릴 필요는 없어, 좋고 나쁘고는 내가 판단해.

생각해 보면 내가 유럽도 아시아도 아닌 아프리카를 첫 번째 여행지로 선택한 이유는, 여행자로서의 초심과 맞물려서였다.

보츠와나의 거리는 깨끗했고, 사람들은 친절했다. 보츠와나에서 살고 싶었다 (사진 남준식) / 뉴스펭귄

풀고 싶은 '썰'이 많지만 내 개인적인 이야기는 기억을 되살리는데 상당한 기력이 요구될 것 같고, 굳이 그러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아, 이 지면을 빌어서는 좋았던 여행지에 대한 몇 개의 정보를 추려보고자 한다. 되도록 사라져서는 안되는 것들을 중심으로.

보츠와나의 막가딕가디 소금사막(Magkadikgadi Salt Pan)이 그 첫 번째다. 볼리비아의 우유니는 세계적으로 유명하지만, 보츠와나의 막가딕가디는 발음이 입에 착 달라붙지 않는 것 만큼이나 세간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이것은 '고급 정보'라는 점을 믿어도 좋다. 

보통 남아프리카를 여행하면 오카방코 델타(Okavango Delta)에서 빅토리아 폭포(Victoria Falls)로 또는 그 반대로 이동하게 되는데, 그 사이에 끼어있는 막가딕가디를 놓치고 지나치면 너무나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막가딕가디는 내게 그 둘을 합친 것만큼의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웨타(Gweta)라는 작은 마을에 멈춰 막가딕가디의 하얀 지평선을 달려보는 건 어떨까? 그러다 밤이 찾아오면 상상 너머의 일이 벌어질테니!

막가딕가디의 탄생 비화는 오카방고 델타와 관련 있다. 두 지각이 어긋나 물의 공급이 차단되었기 때문이다 (사진 남준식) / 뉴스펭귄
Kansas의 Dust in the Wind를 따라부르며 달린다. 음악은 만국공용어다 (사진 남준식) / 뉴스펭귄
옆에선 타조떼가 함께 달린다. 달리는 타조의 몸짓은 아름다웠다 (사진 남준식) / 뉴스펭귄
막가딕가디에는 귀여운 미어캣도 산다 (사진 남준식) / 뉴스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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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남준식) / 뉴스펭귄

막가딕가디 소금사막은 칼라하리 사막(Kalahari Desert)의 영향권에 들어있다고 할 수 있다. 아열대고압대가 관통하고 서쪽에서 차가운 해류가 지나가기 때문에, 연중 상승기류가 발생하지 않아 대기가 안정적이다. 적은 강수량으로 말미암아 사바나가 펼쳐지는데, 그 관목(bush)에 사는 사람들이라 하여 '부시맨'이다. 부시맨의 정식명칭은 ‘코이족(Khoi)’과 ‘산족(Saan)’을 합친 ‘코이산족(Khoisan)’이다.

코이산족에는 몽골로이드의 특징이 섞여 있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다수 인종인 니그로이드와는 외양적으로 구분된다. 즉, 코이산족은 흑인과 황인의 진화적 갈림길에서 일찍이 갈라져 나온 인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이드는 칼라하리 사막의 원주민인 코이산족이었다. 그가 혀를 차며 들려주는 흡착음(clicksound)은 언어의 경지가 어디까지인지를 보여 주었다.

함께 한 일행은 휴가를 맞아 남아공에서 넘어온 '아프리카너(Afrikaner)'였다. (사실 코이산족은 인종이고 아프리카너는 민족이어서 같은 선상에 두고 비교할 수는 없다.) 아프리칸스어를 사용하는 아프리카너란, 초기 네덜란드 이민자를 위시하여 남아프리카에 정착한 백인 집단을 말한다. 아프리칸스어를 듣고 있자면 영어인 듯 아닌 듯, 독일어인 듯 아닌 듯, 남아프리카의 토착 억양이 섞인 듯 아닌 듯, 아리송~한 것이 아주 귀를 즐겁게 했다.

공교롭게도 며칠 뒤 보츠와나를 여행하는 네덜란드 부부와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속초 낙산사와 울산바위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는 그들에게 물어보았다. 네덜란드와 아프리카너의 관계는 어떻냐고. 고개를 흔들며 말하기를, 아프리카너들은 이미 떨어져나간 주체로서 본국과의 정서적 유대감이 사라진지 오래라고 했다. 정말 그런 것 같았다. 보츠와나를 여행하면서 남아공에서 휴양차 국경을 넘어온 수많은 아프리카너를 목도할 수 있었다.

왼쪽 세 명이 아프리카너이고, 오른쪽에서 두 번째 가이드가 '부시맨'이다 (사진 남준식) / 뉴스펭귄
사랑도, 배경도... (사진 남준식) / 뉴스펭귄
(사진 남준식) / 뉴스펭귄
(사진 남준식) / 뉴스펭귄
(사진 남준식) / 뉴스펭귄
(사진 남준식) / 뉴스펭귄

"아악!"

모닥불을 쬐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망치로 허벅지를 내리치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반사적으로 바지를 벗어 털자, 전갈 한 마리가 떨어졌다.

맙소사... 독사에 물리면 피가 응고되는 장면을 다큐멘터리에서 봤었는데, 그 장면이 현실이 돼 허벅지가 순식간에 딱딱하게 굳기 시작했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고 중요한 부위까지 마비증세가 퍼지자, 가장 가까운 곳의 병원은 차로 세 시간 거리에나 있다는 가이드북의 설명이 뇌리를 스쳤다. 

전갈을 요리조리 살펴보던 가이드가 말하기를, 다행히 이 전갈에는 치명적인 독이 없으니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허벅지는 금방 괜찮아졌다. 

"휴~ 객지에서 요절하는 줄 알았잖아."

그 와중에 인증샷 찍을 겨를도 있었으니, 애초에 죽을 운명은 아니었나 보다 (사진 남준식) / 뉴스펭귄

어둠이 찾아들면 우주를 가득 메운 별들이 분수처럼 쏟아진다. 얼마나 낮게 깔려있는지 180도 전방위로 별들이 움직인다. 어지러웠다. 처음 경험하는 남반구의 별자리, 육안으론 목성과 화성이 보이고... 간이로 만든 화장실까지 걸어가는 길은 한 편의 꿈이었다. 

우린 매트리스를 깔고 얼굴만 쏙 내민 채 나란히 누웠다. 얼굴에는 찬바람이 몰아쳤지만 몸통은 따듯하니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쏟아지는 별을 올려다보며 잠을 청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시 하나가 이 상황의 분위기와 찰떡 같이 어울리는 것이 한 구절 읊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사진 남준식) / 뉴스펭귄
(사진 남준식) / 뉴스펭귄
저 뒤에 놓인 매트릭스에 나란히 들어가 잤다 (사진 남준식) / 뉴스펭귄 

아직도 내게는 가고 싶은 곳이 많다. 세상엔 갈 곳 또한 남아프리카 밤하늘의 별처럼 무수하다. 하지만, 막가딕가디는 한 번 더 갈 생각이다. 그런데 문득, 가면 안 될 것 같기도 하다. 욕심 내서 다시 가는 순간, 그간 간직해 온 꿈이 와장창 깨질 것만 같다.

추억은 추억일 때가 아름다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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