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가 정조대를 만든다고? (영상)

  • 이강운 객원기자/곤충학자
  • 2020.07.08 15:54

하늘하늘 날아가는 자태만으로 고귀함을 보여주는 가장 ‘나비’다운 나비, 전 세계적인 멸종위기종이며 대한민국에서도 멸종위기종 Ⅰ급으로 지정 된  붉은점모시나비는 이름대로 모시같이 반투명한 날개에 동그란 붉은 점의 화려한 장식이 있는 나비다.

우리나라에는 강원도 삼척, 충청북도 영동과 경상북도 의성의 일부 지역에서만 관찰할 수 있고 세계적으로도 몽골고원과 네팔 에베레스트와 러시아 바이칼호수처럼 추운 곳에서만 볼 수 있는 정말 희귀한 나비다. 

짝짓기중인 붉은점모시나비(사진 이강운 소장)/뉴스펭귄

붉은점모시나비 짝짓기 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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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짓기 중 수컷은 정자를 거품처럼 부풀려 한 방울 한 방울씩 암컷의 배 끝에 갖다 대어 길쭉하고 칼 같은 모양의 덩어리를 만든다. 완성되고 나면 삼각형 모양의 마개가 되는데 다른 수컷과 짝짓기 하지 못하도록 만든 일종의 자물쇠(Sphragis), 일종의 정조대라 할 수 있다.

손대면 툭하고 떨어질 것 같은데 실제 만져 보면 단단하게 부착되어 쉽게 떼어낼 수 없다. 왜 시간을 들여가며 이렇게 공을 들일까? 짝짓기 하는 도중 천적에게 노출되면 쉽게 도망도 못가고 시간도 훨씬 많이 걸리고 에너지도 많이 드는데 왜? 

정자 거품을 만들어내는 붉은점모시나비 수컷.(사진 이강운 소장)/뉴스펭귄

무릇 동물들이 짝을 선택할 때 그러하듯 곤충도 마음에 드는 건강한 배우자를 만나는 과정이 매우 어렵다. 암컷의 관심을 끌기 위해 수컷들은 끊임없이 경쟁한다.

생존에는 불리하지만 번식 성공률이 높아진다면 비용을 들여 무기나 장식을 화려하게 만들어 배우자를 유혹한다. 큰 뿔을 만들고, 몸집을 키우며 색깔을 화려하게 만든다.

짝짓기를 마친 후에도 안심할 수 없어 주위를 맴돌며 경호를 하지만 아차 하는 순간 다른 수컷이 달려와 이미 암컷 몸에 들어있던 자기 정자를 긁어내버린다.

이쯤되면 경쟁자인 다른 수컷도 문제지만 암컷의 행동도 믿을 수 없게 된다. 더 건강한 유전자를 확보하기 위해 눈치를 봐가며 여러 수컷과 짝짓기를 하려고 합니다. 암컷 곤충은 짝짓기 중 받은 정자를 종류별로 얼마든지 저장할 수 있는 정자주머니가 있어 다양한 수컷과 짝짓기를 원한다. 다양성은 생존에 필수이기 때문에 당연한 행동이긴 하지만 자기 씨만을 전달하고픈 수컷으로서는 견딜 수 없는 일이다.     

붉은점모시나비의 짝짓기 후 마개(사진 이강운 소장)/ 뉴스펭귄

그래서 붉은점모시나비 수컷은 치열한 번식 경쟁을 피하기 위해 자기와의 단 한 번 짝짓기만 고집하게 됐다. 비록 암컷이 자신의 정자만을 사용하게 하려는 이기적이고 극단적인 번식 방법이라 할 수 있지만 가장 확실한 번식 방법이다.

Sphragis(짝짓기 후 마개)는 다른 수컷이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아예 없애 자기 자식만을 번식시키기 위한 매우 효과적인 특수 장비라 할 수 있지만 사실 다양성은 떨어지는 방법이다.

혹시 멸종위기종이 된 원인 중 하나일 수도 있다. 

※참고: 짝짓기 후 마개는 이미 짝짓기를 마친 ‘임자 있는 몸’이라는 표시인 셈이다. 수태낭(受胎囊)으로 지칭되지만 수태(受胎)는 난자와 정자가 결합한 상태를 말하므로 ‘수태낭’이 아니라 ‘짝짓기 후 마개’가 정확한 표현이다.  

글·사진: 이강운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서울대 농학박사. 곤충방송국 유튜브 HIB을 방송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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