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가루 내놔"...배고프면 식물 물어뜯어 꽃 피게 하는 호박벌
"꽃가루 내놔"...배고프면 식물 물어뜯어 꽃 피게 하는 호박벌
  • 임병선 기자
  • 승인 2020.05.3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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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파리에 구멍을 내는 호박벌 (사진 Mescher Laboratories)/뉴스펭귄
이파리에 구멍을 내는 호박벌 (사진 Mescher Laboratories)/뉴스펭귄

호박벌이 꽃가루가 부족하면 식물에 구멍을 내 꽃이 더 빨리 피게 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벌은 애벌레와 자신이 먹을 꽃가루를 모아 집으로 가져간다. 벌은 대부분 겨울잠을 자는데 기후변화로 인해 꽃 개화 시기가 불규칙해지면서 겨울잠에서 깨어난 벌이 꽃가루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벌 일종인 호박벌이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전략을 발달시켰다는 주장이 나왔다. 호박벌은 꽃가루를 얻기 위해 입에 달린 기관으로 식물 이파리에 구멍을 내 꽃을 빨리 피게 한다는 연구결과가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에 지난 21일(현지시간) 소개됐다. 호박벌은 꽃가루가 부족한 경우에만 '구멍 내기' 행동을 보였다.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ETH Zurich) 연구진은 벌이 식물 냄새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연구하다가 호박벌의 ‘구멍 내기’를 발견했다고 사이언스와 인터뷰에 밝혔다. 연구진은 호박벌이 이파리를 섭취하지도 않고, 집으로 가져가지도 않으면서 구멍을 뚫는 것에 궁금함을 느끼고 연구에 착수했다.

연구진은 스트레스를 받은 식물이 꽃을 빨리 피운다는 다른 연구에 착안해 호박벌이 꽃가루를 일찍 얻으려 이파리에 구멍을 뚫는다는 가설을 세웠다.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연구진은 실험군A(3일간 굶은 호박벌과 식물을 함께 둔 경우), 실험군B(연구팀이 호박벌 행위를 재현한 식물), 비교군(아무 조치를 하지 않은 식물)을 조성해 관찰했다. 식물은 흑겨자와 토마토가 활용됐고, 정확한 결과를 위해 실험은 온실 안에서 이뤄졌다.

관찰 결과, 비교군에 비해 실험군A 흑겨자는 16일, 토마토는 30일 일찍 꽃을 피웠다. 연구진은 추가 실험을 통해 호박벌이 꽃가루가 모자랄 때만 ‘구멍 내기’를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호박벌이 먹이를 빨리 얻기 위해 ‘구멍 내기’를 했다고 결론 내렸다.

꽃가루를 잔뜩 묻힌 호박벌 (사진 Pexels)/뉴스펭귄
꽃가루를 잔뜩 묻힌 호박벌 (사진 Pexels)/뉴스펭귄

반면 연구진이 구멍을 낸 실험군B의 경우 흑겨자 꽃은 비교군보다 8일, 토마토 꽃은 5일 빨리 피는 것에 그쳤다. 연구진은 호박벌이 이파리에 구멍을 내는 도중 특정 신호를 식물에 발산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연구진은 현재까지 밝혀진 호박벌과 식물 간 상호작용에 대해서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잎에 구멍이 난 식물이 꽃을 일찍 피우는 원인에는 ‘호박벌이 꽃을 빨리 피워 꽃가루를 얻기 위해 조작을 가한 것’, 혹은 ‘식물이 호박벌에게 더 일찍 꽃가루를 제공해 수분에 성공하기 위해서’ 등 여러 가능성이 있다.

모든 호박벌이 '구멍 내기'를 활용하는지도 연구가 더 필요하다. 이번 연구에서는 꽃부니호박벌(학명 Bombus terrestris), 붉은꼬리호박벌(학명 Bombus lapidarius). 흰꼬리호박벌(학명 Bombus lucorum) 총 세 종이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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