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 아닌 '공존'...제주 남방큰돌고래 법인격 부여로 첫발 뗀다

  • 박연정 기자
  • 2023.11.15 11:58
남방큰돌고래. (사진 돌핀맨 캡처)/뉴스펭귄

[뉴스펭귄 박연정 기자] "단순히 인간이 '보호'를 하는 게 아니다. 보호라는 것은 강자가 약자에게 시혜적으로 베푸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과 동등하게 법적 권리를 주는 것이기 때문에 '공존'에 가깝다"

생태법인 제도 추진에 대해 해양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 조약골 공동대표는 이같이 말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생태법인 제도 도입 제주특별법 개정' 공동회견에서 생태법인 제도를 통해 제주 남방큰돌고래를 법적으로 보호할 것이라고 13일 밝혔다. 이에 따라 2025년 남방큰돌고래를 생태법인 제1호로 지정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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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법인이란

생태법인은 사람 외 생태적 가치가 중요한 자연환경이나 동식물 등 비인간 존재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제도다.

현재 법률에서 법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주체는 사람과 기업 등 법인만 가능하다. 그러나 법인격이 부여되면 개인이 소송을 제기하듯 동식물도 후견인 또는 대리인을 통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국내에선 다소 생소하지만 해외에서는 자연에 법인격을 준 사례가 다수 있다.

에콰도르가 세계 최초로 2008년 헌법에 '자연의 권리'를 명문화했고 볼리비아는 2010년 자연의 권리를 존중하는 '어머니 대지법'을 제정했다. 

그 외 뉴질랜드 '환가누이강', 스페인의 '석호(바다와 강이 만나는 연안에 형성된 호수)' 등도 생태법인의 예다.

생태법인 제도 도입안 발표 기자회견. (사진 제주특별자치도)/뉴스펭귄

제주도는 생태법인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올해 3월부터 생태법인 제도화 워킹그룹을 운영해 총 4차례 회의했다. 생태법인 제도화 워킹그룹은 학계, 법조계, 전문가 등으로 구성돼 있고 최재천 이화여자대학교 석좌교수가 위원장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제주특별법 개정안에서 △남방큰돌고래 법인격을 부여하는 안(제주 연안에 서식하는 남방큰돌고래에 직접 법적 권리를 부여한다) △생태법인 창설 특례를 포함하는 안(도지사가 도의회 동의를 받아 특정 생물종 또는 핵심 생태계 지정한다) 2가지를 구체화했다.

 

왜 남방큰돌고래여야 할까

남방큰돌고래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제주에서만 서식하는 포유동물이며 제주 바다의 상태를 알려주는 지표종이자 핵심종이다.

제주도청 특별자치제도 추진단 측은 14일 <뉴스펭귄>에 "남방큰돌고래가 멸종위기종이기도 하고 고래의 가치가 기후위기 극복 등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 지정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지난 6월 개최된 '2028 해양포유류학회 총회'에서 대만 시마연구소 선임과학자 린지 포터 박사는 해양포유류 보전을 강조했다.

그는 "큰 고래는 바다 밑 영양소를 수면 위로 올려보내고 유해한 탄소 14만5000톤을 몸 안에 격리(수천 년 간 보관)한다"며 "바다를 이동하면서 대양 간 영양소를 옮기는 등 역할이 지대하기 때문에 해양포유류를 보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핫핑크돌핀스 조약골 공동대표에 따르면 2012년 남방큰돌고래가 해양보호생물로 처음 지정된 후 11년이 지난 지금도 제대로 된 보호를 받고 있지 않다. 

올해 4월 선박관광을 제한하는 법률이 시행되기는 했으나 해양생태계법 하위 법령인 시행규칙에서 선박 종류를 제한함에 따라 낚시어선은 제외 대상이 됐다. 따라서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돌고래 관광 선박을 제한할 수 있는 법규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이마저도 단속이 제대로 되지 않는 실정이다. 

남방큰돌고래 삼팔이와 새끼들. (사진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 'MARC')/뉴스펭귄
남방큰돌고래 삼팔이와 새끼들. (사진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 'MARC')/뉴스펭귄

 

남방큰돌고래에게 법인격 부여하면 달라지는 것

생태법인 제도 도입에 대해 조약골 공동대표는 "한국 사회가 개발 중심의 산업 사회에서 생태 중심적 사회로 전환되는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말했다.

조 대표는 "생태법인으로 지정되면 인간과 마찬가지로 남방큰돌고래도 주거권, 행복추구권 등 법적 권리를 갖게 된다"고 말했다.

즉 낚싯줄, 해양쓰레기, 과도한 선박 관광 등 남방큰돌고래의 삶을 위협하는 요소들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생태적 가치가 크고 법적 권리를 주면서까지 보존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비인간 존재들이 많다. 제주도 오름, 곶자왈, 지하수 등이 그 예다. 그들에게 생태법인 제도가 플랫폼으로서 역할을 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했다.

황현진 핫핑크돌핀스 공동대표. (사진 한국환경회의 제6차 환경포럼 영상 캡처)/뉴스펭귄
황현진 핫핑크돌핀스 공동대표. (사진 한국환경회의 제6차 환경포럼 영상 캡처)/뉴스펭귄
황현진 핫핑크돌핀스 공동대표. (사진 한국환경회의 제6차 환경포럼 영상 캡처)/뉴스펭귄
황현진 핫핑크돌핀스 공동대표. (사진 한국환경회의 제6차 환경포럼 영상 캡처)/뉴스펭귄

한국환경회의 제6차 환경 포럼에서 황현진 핫핑크돌핀스 공동대표는 "우리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면, 자본에 의해서 착취되거나 서식처가 빼앗기지 않을 권리가 있다면, 마땅히 지구에 살아가고 있는 다른 구성원에게도 그 권리를 보장해 줘야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최재천 생태법인 제도화 워킹그룹 위원장은 "자연을 바라보는 인식과 태도를 근본적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생태법인 제도가 제주에 도입돼 대한민국이 환경선진국으로 도약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우려도

제주도 어업인들은 남방큰돌고래의 생태법인 지정에 따라 어업활동 일부 제한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제주도청 특별자치제도 추진단 측은 <뉴스펭귄>에 "어업활동 제한 여부에 대해 계속 분석 중이다. 도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영훈 제주특별자치도지사는 "남방큰돌고래에 법인격을 부여했을 때 어업활동 및 경제활동에 대한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우리는 바다를 같이 쓰고 있다. 더 이상 늦추면 안 된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오 지사는 이어 "경제 및 어업활동에 대한 보상은 제주도나 국가가 어느 정도 책임져야 한다. 제주도청 차원에서 어업인들의 일부 수익을 보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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