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0조 시장 SMR'이라는데, 정말 꽃밭일까

  • 임병선 기자
  • 2023.09.01 10:13

[뉴스펭귄 임병선 기자] 지난달 29일, 에너지 전환을 담당하는 정부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2024년 예산안을 공개했다. 2024년 예산안에는 에너지 분야에서 윤석열 정부의 대선 공약인 원자력발전(핵발전) 예산 확대가 대폭 이뤄졌다.

이와 함께 산업통상자원부는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 기술 개발 사업(R&D)'에 332억8000만원을 배정했다. 반면 신재생에너지에 대해서는 '부적정하게 집행된 보조금'을 겨냥하고 "과감히 구조조정"했다고 설명했다. 소형모듈원자로는 재생에너지를 대신해 한국 에너지전환을 이끌 만큼 유망한 기술일까.

소형모듈원자로는 줄여서 SMR(Small Modular Reactors)이라고 부르며, 원자력발전기에서 실제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원자로를 작게 만든 것이다. 원자로, 냉각용 펌프 등 한 장소에서 커다란 부품을 건설해 하나의 큰 발전소를 구성하는 대형 원전과 달리 하나의 캡슐처럼 완성품으로 만들어진다. 이후 발전소에 조립하는 방식이 기존 원전과 큰 차이다. 2024년부터 본격 연구되는 혁신형 SMR은 과거로 묻혔던 '스마트(SMART)'라는 원전의 부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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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산업 활성화는 윤석열 대통령의 후보 시절부터 공약이었으며, SMR은 원자력계와 원전에 참여하는 기업들이 미는 '사업 아이템'이다. 올해 4월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만나 SMR 사업을 포함한 협력 약속을 하기도 했다.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는 2021년 문재인 정부 때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했고, 올해부터 예산이 본격적으로 투입된다.

 

(사진 현대건설)/뉴스펭귄
(사진 현대건설)/뉴스펭귄

SMR로 '630조 시장' 겨냥? 9년 전 예측

최근 SMR과 관련해 분홍빛 미래를 점치는 보도가 다수 나오고 있다. 보도에는 특이하게 '630조원'이라는 숫자 하나가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김한곤 혁신형 SMR 기술개발사업단장은 여러 언론과 인터뷰에서 '630조 시장'을 바라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2035년에는 전 세계 SMR 시장이 630조원까지 커질 것이라는 기대다. 조선일보, 매일경제, 연합뉴스, 뉴스웨이 등 일부 언론사는 SMR과 원자력 업계를 함께 조명하며 ‘630조 시장'과 'SMR’을 제목으로 내세웠다. 

이 시장 전망은 현실적인 수치일까. 해당 수치는 2014년 12월 영국 국립원자력연구소(National Nuclear Laboratory)가 발간한 자료에서 인용한 것이다. 9년 전 자료다. 국내에서는 2019년 4월 두산에너빌리티(당시 두산중공업)가 미국 SMR 개발 업체인 뉴스케일파워(Nuscale Power)와 사업양해각서(MOU) 체결 소식을 내놓은 보도자료에서 처음 인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가장 최근인 2023년 4월, 영국의 신기술 관련 시장조사업체 아이디테크이엑스(IDTechEx)가 내놓은 SMR 시장 전망치는 2032년에 95조 8214억원(724억 달러), 2042년 390조 4325억원(2950억 달러)이다. 390조원도 큰 시장이지만, 조사 주체마다 수치가 달라 대서특필되는 것처럼 SMR의 미래가 꽃밭일지는 불분명하다. 

혁신형 SMR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 보고서는 혁신형 SMR 계획에 대해 “SMR에 대한 경쟁적인 개발은 다소 과대한 표현으로 보이며 전 세계적인 주된 흐름으로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선도 업체의 사례를 보면 어려운 길이 예상된다. 뉴스케일파워는 한국의 혁신형 SMR 예비타당성조사에서 계속 언급될 만큼 개발에 앞서 있고, 한국에서 만들 SMR과 작동 방식이 비슷한 업체다. 뉴스케일파워는 미국 아이다호주에서 CFPP를 진행하며 상용화에 다가선 선두주자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현실을 들여다보면 뉴스케일파워마저도 고전하는 중이다. CFPP는 당초 SMR을 여러 개 배치해 720MW 규모로 짓기로 했으나, 계획을 줄였다. 현재 462MW 규모 발전소 건설 예정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력을 구매하겠다던 지자체 3개가 건설 비용 상승, 전력 비용 상승 문제 등으로 탈퇴했기 때문이다. 계획된 462MW 중 116MW만 약정이 됐고, 추가적으로 120MW를 살 지자체를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다.

 

속내는 기업 수출 돕기

한국이 SMR을 개발해야 될 이유는 무엇일까. SMR이 개발된다고 해서 한국에 안전한 원전이 설치되는 일은 기대하기 어렵다. 탄소중립 수단으로 원전을 밀어붙일 때 가장 문제가 되는 '안전성'을 SMR이 담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SMR은 전력 공급이 어려운 지역에서 쓰는 발전 수단으로 개발되고 있다. 대형 원전과 비교해 크기가 작고 설치가 쉽기 때문이다. 전력 수요처가 밀집돼 있는 국내에서는 SMR이 대형 원전 대비 이점이 적다.

뉴스케일파워는 기존 원전을 소형화하고, 냉각 펌프가 없이 설계됐으나 기존 원전과 근본은 크게 변하지 않은 ‘가압경수로’다. 2032년 가동이 목표인 한국의 혁신형 SMR도 가압경수로다. 반면 ‘빌게이츠가 투자한 SMR'이라 많은 주목을 받는 테라파워는 차세대 원전에 속하는 ‘소듐냉각고속로’를 개발 중이지만, 상용화 예정은 불분명하다.

SMR 자체는 새로운 기술이 아니다. 1963년에 미국에서 소형 원전이 최초로 가동됐고, 1990년대에 현재와 비슷한 형태 SMR이 개발됐다. 한국은 1997년부터 한국형 SMR인 SMART를 개발하고 2012년 7월 표준설계인가를 받았다. 당시 경제성 문제 때문에 사업이 급격히 축소됐다. 개발 중인 혁신형 SMR은 기본적으로 SMART와 거의 비슷하다. 

안전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새로운 기술은 ‘원전의 소형화’보다 ‘4세대 원자로’다. 4세대 원자로는 기존 원전과 달리 물로 한정됐던 냉각용 액체를 다른 물질로 바꾼 게 특징이다.

대표적인 4세대 원자로는 녹은 소금(융용염)으로 원전을 식히는 MSR, 소듐이 냉각재인 SFR 등이다. 원자력계는 이런 냉각재에 핵연료를 섞어 쓰기 때문에, 혹여나 연료가 유출되더라도 원자로 안에서 굳어 방사성 물질이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소듐을 냉각재로 쓰는 테라파워는 4세대 원자로 기술의 SMR을 개발한다. 가압경수로를 쓰는 뉴스케일파워는 3세대 원자로인 SMR이다.

(사진 두산에너빌리티)/뉴스펭귄

한국원자력학회가 2021년 10월 발간한 '뉴토피아'에서 정재훈 당시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은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와 SMART의 차이점은 계통을 보다 단순화하고 모듈화 개념을 강화했다는 점에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도 "혁신형 SMR은 SMART와 원리는 거의 동일하다"고 홈페이지에서 언급하고 있다.

기업계와 산업자원부가 SMR을 강조하는 이유는 기업의 수출 때문이다. SMR이 수출을 목표로 개발된다는 점은 산업자원부가 만든 규정만 봐도 명백하다.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 기술개발사업 공동운영관리규정’ 중 제5조 기본운영방침 5항에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의 수출·사업화가 원활히 진행될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하여 사업을 추진한다"고 서술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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