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서식지 말고 원형보전, 맹꽁이가 살아남을 용인 땅

  • 임병선 기자
  • 2023.08.26 08:08
서농동행정복지센터 내 맹꽁이 서식지가 원형 그대로 보전돼 있다. (사진 임병선 기자)/뉴스펭귄
서농동행정복지센터 내 맹꽁이 서식지가 원형 그대로 보전돼 있다. (사진 임병선 기자)/뉴스펭귄

[뉴스펭귄 임병선 기자] 경기도 용인특례시 기흥구에 위치한 서농동행정복지센터로 들어서자 나무와 수풀이 우거진 땅이 나타났다. 돌을 쌓아 만든 울타리 뒤에는 맹꽁이가 산다. 이곳은 서농동행정복지센터와 서농도서관을 지으면서 발견된 맹꽁이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원형 보전지’다.

울타리 뒤로 펼쳐진 풍경은 흔히 멸종위기종이 발견된 공사 현장에서 쓰이는 ‘맹꽁이 대체서식지’와 완전히 달랐다. 대체서식지는 공사 구간에서 발견된 생물을 인위적으로 만든 서식지에 옮기는 방식으로, 공사를 하지 않고 그대로 남긴 원형 보전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원형 보전지에는 데크도 최소한으로 설치돼 주변 경관이나 서식지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서식지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데크는 사람들이 땅을 밟지 않고 걸어 다닐 수 있게 바닥에서 띄워 놓은 구조물을 의미한다.

뉴스펭귄 기자들은 기후위기와 그로 인한 멸종위기를 막기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정기후원으로 뉴스펭귄 기자들에게 힘을 실어 주세요. 이 기사 후원하기

원형 보전 서식지임을 알리는 표지판. (사진 임병선 기자)/뉴스펭귄
원형 보전 서식지임을 알리는 표지판. (사진 임병선 기자)/뉴스펭귄

행정복지센터와 도서관이 완공된 지 2년, 맹꽁이는 아직 잘 산다. 올해 여름에도 맹꽁이가 힘차게 울었다. 맹꽁이 외에 참개구리 등도 함께 발견된다.

서농동행정복지센터 원형 보전지에서 발견된 맹꽁이 성체(어른). (사진 용인환경정의)/뉴스펭귄
서농동행정복지센터 원형 보전지에서 발견된 맹꽁이 성체(어른). (사진 용인환경정의)/뉴스펭귄

맹꽁이 서식지를 그대로 지킨 건 한 주민의 제보에서 시작됐다. 2017년 8월, 서천동에 사는 주민이 행정복지센터 공사 예정지에서 맹꽁이 소리가 들린다고 환경단체에 제보했다. 

지역 환경단체 용인환경정의는 제보 이후 관찰한 결과를 바탕으로 맹꽁이가 사는 곳을 그대로 두자고 용인시에 건의했다. 시는 건의를 받아들였고 설계 과정에서 부지 중 맹꽁이가 살기 좋은 지역 일부를 그대로 두게 됐다.

용인환경정의 의뢰를 받아 원형 보전지 조성에 함께하고 있는 최순규 강원대 박사는 첫 방문을 회상하며 “처음 와보니 확실히 맹꽁이가 살 것 같은 장소였다. ‘맹꽁이가 이런 데 살아요’라고 말하며 흙을 들어올렸는데 바로 맹꽁이가 발견됐다”고 말했다. 

25일, 원형 보전지에서 차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용인시의회 대회의실에서는 ‘멸종위기 2급 맹꽁이 서식지 원형 보전 성과 공유 토론회’가 열렸다. 건물을 지으면서 맹꽁이 서식지를 원래 모습 그대로 보전한 사례를 다루고 있다. 설계까지 변경해 그대로 서식지를 놔둔 사례는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처음 설계에는 원형 보전지가 웅덩이 위주에만 있어서, 전문가 지적을 통해 주변 지역을 더 확장하는 방향으로 설계 변경이 이뤄지기도 했다. 

(사진 용인환경정의)/뉴스펭귄
(사진 용인환경정의)/뉴스펭귄

서농도서관에는 시민들에게 서식지 원형 보전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그 과정이 전시돼 있으며, 관련 주제로 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이동경 서농도서관장은 “맹꽁이 관련 교육이 도서관 대표 교육이기도 하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이정현 용인환경정의 사무국장은 “서농동행정복지센터 맹꽁이 서식지는 사람이 살기 전부터 맹꽁이가 알을 낳던 곳이고 맹꽁이는 우리가 지켜내지 못하면 영영 사라질 종”이라면서 “원형 보전 맹꽁이 서식지는 지역주민, 시민단체, 전문가, 용인시가 함께 이루어낸 결실”이라고 말했다.

서농동행정복지센터 원형 보전 서식지에서 발견된 맹꽁이 (사진 용인환경정의)/뉴스펭귄
서농동행정복지센터 원형 보전 서식지에서 발견된 맹꽁이 (사진 용인환경정의)/뉴스펭귄

이오이 환경정의 전문위원은 “이런 사례가 널리 알려져 원형 보전 사례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정현 사무국장은 “한강유역환경청에서 처음 현장에 오자마자 대체서식지를 언급할 정도로 대체서식지 개념이 일반화돼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대체서식지는 원래 사라진 서식지만큼 새로운 장소를 마련하는 게 취지였지만, 최근에는 공사 현장에서 발견된 멸종위기종을 부지에서 빼내는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다만 앞으로 사람들의 최소한 개입이 필요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예를 들어 행정복지센터 주차장 건설로 인해 물이 흘러들어 가는 양이 줄어들어 웅덩이가 육지로 변할 위험이 생겼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물 공급 방안이나 빠져나가는 물을 막을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장창집 용인시 환경사업위생소장도 이에 동의하고 준비 의사를 밝혔다.

맹꽁이 원형 보전지가 늘어나고 이미 만들어진 서식지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주의도 중요하다. 맹꽁이가 이동 철에 보도에서 밟혀 죽는 경우도 있다.

(사진 임병선 기자)/뉴스펭귄
(사진 임병선 기자)/뉴스펭귄

장창집 소장은 “인근 지역인 서천동 맹꽁이 서식지에는 맹꽁이 소리가 시끄럽다는 민원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박병상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은 “사람이 중요하냐 맹꽁이가 중요하냐 질문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람은 맹꽁이 소리가 들려도 살 수 있지만 맹꽁이는 서식지가 사라지면 살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토론회에 참여한 서천동 주민 노영미 씨는 “원형 보전지에서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는 표지판 너머로 플라스틱 컵 몇 개와 킥보드가 던져진 걸 본 날은 걱정스럽고 부끄러웠다”며 “영문도 모른 채 서식지를 잃은 상황을 동물들의 처지에서 이해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 ㄷ
돌로 쌓은 울타리에 맹꽁이 서식지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사진 임병선 기자)/뉴스펭귄

뉴스펭귄은 기후위험에 맞서 정의로운 해결책을 모색하는데 초점을 맞춘 국내 유일의 기후뉴스입니다. 젊고 패기 넘치는 기후저널리스트들이 기후위기, 지구가열화, 멸종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분투하고 있으며, 그 공로로 다수의 언론상을 수상했습니다.

뉴스펭귄은 억만장자 소유주가 없습니다. 상업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일체의 간섭이 없기 때문에 어떠한 금전적 이익이나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리의 뉴스에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뉴스펭귄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여러분의 후원을 밑거름으로, 게으르고 미적대는 정치권에 압력을 가하고 기업체들이 기후노력에 투자를 확대하도록 자극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적은 금액이라도 여러분의 소중한 후원은 기후위험으로부터 우리를 지키는데 크게 쓰입니다.

뉴스펭귄을 후원해 주세요. 후원신청에는 1분도 걸리지 않으며 기후솔루션 독립언론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만듭니다.

감사합니다.

후원하러 가기
저작권자 © 뉴스펭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