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의 서재] 곰의 최애는 연어가 아니다?

  • 손아영
  • 2023.07.19 09:24
(그래픽 손아영)/뉴스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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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와 함께 변화하는 동물들


[뉴스펭귄 손아영] 곰이 물살이가 아닌 베리류의 열매를 따 먹고, 오징어가 낚시의 미끼만큼 작아진다면 어떨까요? 조금 생경한 모습에 우리는 놀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것들이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입니다. 곰은 더 이상 어렵게 물살이를 사냥할 필요도 없으며, 오징어는 더 이상 이전 성체의 크기만큼 생장할 필요가 없어졌죠. 기후가 변화하는 것에 맞춰 조금 슬픈 진화를 경험 중인 이들의 이야기, 함께 살펴볼까요?

 


곰의 최애는 연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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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뉴스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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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연어는 곰의 최애 식단으로 알려졌는데요. 동면을 앞두고 체중을 늘려야 하는 곰에게 연어는 단백질이 80%에 이르는 필수적인 영양 섭취의 수단입니다. 하지만 지난 2014년, 어쩌면 곰의 최애가 연어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실험 결과가 나왔습니다. 연어의 수가 절정에 다다른 어느 날, 곰들이 모두 보따리를 싸 계곡을 떠나버렸기 때문이죠. 바로 ‘엘더베리’를 먹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열매는 곰팡내가 심해 인간이 생으로 먹으면 구역질을 일으킨다고 알려졌지만, 알래스카 해안가의 붉은 엘더베리는 곰에게 완벽한 영양을 제공합니다. 13%의 단백질이 포함된 것은 물론, 나머지 열량은 탄수화물 형태이기 때문에 어떤 식단보다 빠르게 곰을 살찌울 수 있습니다. 더불어 기후위기로 뜨거워진 계절 탓에 2주 빠르게 결실을 맺으며 지상 최고의 식단이 되었죠. 유일한 문제는 곰이 연어가 아닌 열매를 먹게 되면서 계곡 주변의 연어 사체가 줄어들어 이를 먹고 살던 다양한 청소동물 또한 줄어들었고, 결과적으로 바다에서 육지로 이어지는 중요한 에너지 흐름이 제한되었다는 것입니다. 

 


플라스틱 오징어가 탄생했다!


(사진 flickr)/뉴스펭귄
(사진 flickr)/뉴스펭귄

앞서 이야기한 곰의 식단 변화와 같은 현상을, 전문가들은 ‘가소성’이라고 이야기하는데요. ‘가소성(plasticity)’이란 환경의 변화에 맞춰 습성을 바꾸거나 심지어 몸을 늘리고 구부릴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키는 말로, 우리에게 익숙한 플라스틱과 어원을 같이 합니다. 쉽게 말해 개체가 제 수명 안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조정을 뜻하죠. 인간을 포함한 많은 종에게서 성체의 몸 크기는 초기 발달 단계에서 받은 신호에 일부 좌우됩니다. 영양실조와 같은 환경적 스트레스는 생장하는 태아에게 ‘필요한 자원이 부족한 상황이니 몸을 키우면 안 된다’고 신호를 주게 되죠. 멕시코 칼리포르니아만에 서식하는 홈볼트오징어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 두족류는 2009년에서 2010년 사이의 큰 수온 상승 탓에 전통 어장에서 사라졌지만, 오히려 개체수가 크게 늘었습니다. 살던 곳을 떠나는 대신 전혀 다른 전략으로 열 스트레스에 대응했던 것인데요. 과거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생장을 마쳤고, 성체의 몸은 크기가 훨씬 줄어 이 오징어를 낚기 위해 사용한 미끼를 물지 못할 정도로 작아져 버렸죠. 결과적으로 그들의 수명 또한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그늘 아래 도마뱀은 번식하지 않는다


(사진 unsplash)/뉴스펭귄
(사진 unsplash)/뉴스펭귄

“더위를 좋아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무더위를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30년 넘게 도마뱀을 연구한 배리 시너보가 했던 말입니다. 도마뱀은 생물학 용어로 ‘외온동물’, 즉 햇볕을 쬐어 그 열기로 체온을 조절하는 동물입니다. 몸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체온이 상승해야 하죠. 시너보가 오랫동안 조사한 지역에서 덥고 메마른 곳일수록 도마뱀 개체 감소율이 더 높다는 사실에 놀란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사막에 사는 도마뱀 또한 햇볕이 너무 강하면 유기체가 기능을 멈추는 온도인 상임계온도를 초과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그늘로 들어가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후위기로 날씨가 점점 뜨거워지면서 도마뱀들은 더 많은 시간을 그늘에서 보내게 되면서 원래 먹이를 찾아다녀야 할 귀중한 시간을 포기하게 됩니다. 그렇게 놓쳐버린 열량이 점점 쌓이면 번식기 암컷의 경우 아예 새끼를 낳지 않기로 선택합니다. 번식할 만큼의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죠.

 


변화의 시작에 서 있는 우리에게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이들의 변화는 참신하고 영리한 듯 보이면서도 슬프게 느껴지는데요. 환경에 적응하는 대가로 식단을 바꾸고, 수명을 줄이고, 번식을 포기하는 일을 단순한 진화로 여기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겠죠. 살기 위해 애쓰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그 변화를 일으킨 시작점에 있는 우리 인간은 어떤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픽 손아영)/뉴스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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