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인터뷰] 점으로 멸종위기종 그리는 작가, 고민정

  • 남주원 기자
  • 2023.05.09 18:03
고민정 작가가 점묘화로 그린 작품. (사진 고민정 작가 제공)/뉴스펭귄
고민정 작가가 점묘화로 그린 작품. (사진 고민정 작가 제공)/뉴스펭귄

[뉴스펭귄 남주원 기자] ‘우리 모두 큰 그림을 이루는 중요한 점이겠죠?’

고민정 작가의 화폭에서 '점'은 세계가 된다. 이 세계에는 반쪽짜리 기린 몸통 안에 쪼그려 앉아 우는 소녀가 있다. 또 단잠에 빠진 것 같기도, 영원한 꿈나라로 떠난 것 같기도 한 코끼리가 있다. 선인장을 은신처 삼은 수리부엉이는 정면을 뚫어질세라 쳐다보고, 긴꼬리딱새는 존재만으로 아름다움을 뽐낸다. 바다거북과 수달은 제각각 바다와 강을 헤엄치고, 알락꼬리여우원숭이는 능숙하게 나무를 탄다.

기린, 코끼리, 수리부엉이, 긴꼬리딱새, 바다거북, 수달, 알락꼬리여우원숭이의 공통점은 이들 모두 멸종위기종이라는 점이다. 고민정 작가는 현실과 동화의 경계에 있는 듯 독특하고 매력적인 점묘화를 통해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을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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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펭귄>은 점으로 그림을 그리는 작가 고민정 씨를 만나봤다. 그는 점묘화와 자신이 닮아있다고 말하는 사람, 하루하루 점을 쌓아 존재의 소중함을 담아내는 사람이었다. 다음은 고민정 작가와 일문일답.

고민정 작가가 점으로 그린 코끼리. (사진 고민정 작가 제공)/뉴스펭귄
고민정 작가가 점으로 그린 코끼리. (사진 고민정 작가 제공)/뉴스펭귄

Q. 독자분들께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A. "점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고민정이라고 합니다. 동물과 이야기, 그림을 좋아하다 보니 어느새 그림책을 만들고 전시를 하며 여러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하고 있어요. 작품 활동을 해온 지는 7년 정도 됐습니다. 2017년에 그림책 <the box>를 내놓으며 자연스럽게 시작하게 됐죠."

Q. 동물과 자연에 대한 애정을 줄곧 점묘화로 풀어오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A. "처음에는 추천받아 점묘화를 시작했어요. 하지만 그리면 그릴수록 점묘화가 저와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림의 점을 들여다보면 엉성하고 제멋대로 얽혀있는 완벽하지 않은 점들로 이뤄져 있지만, 이것들이 조금씩 천천히 쌓이고 모여 제가 보여주고 싶은 이미지와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어요. 이 부분에서 매력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점묘화를 그리는 것 같습니다."

Q. 본인의 작품 중 사람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고민정 작가가 점으로 그린 바다거북. (사진 고민정 작가 제공)/뉴스펭귄
고민정 작가가 점으로 그린 바다거북. (사진 고민정 작가 제공)/뉴스펭귄

A. "아름다운 무늬를 가진 생물들을 몇 종류 그렸었는데 그중 하나인 바다거북 그림입니다. 동물들의 무늬를 보면 어떻게 저런 무늬가 나올까 신기해요. 마치 누군가 디자인해놨다고 해도 믿을 만큼, 정교하고 아름다운 무늬들이 가득합니다. 무늬에는 각 생물들의 시간과 질서가 들어있고, 그것은 거대한 자연의 작은 축소판이 아닐까 생각해요. 생물 하나하나가 자연의 축소판이라는 생각으로 그림을 그리다 보니 더욱 그들의 존재가 소중해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고민정 작가가 점묘화로 그린 곤충들. (사진 고민정 작가 제공)/뉴스펭귄
고민정 작가가 점묘화로 그린 곤충들. (사진 고민정 작가 제공)/뉴스펭귄

다른 하나는 빛을 좋아하는 야행성 곤충들을 그린 작품이에요. 가로등은 사람들에게 길을 찾아주지만 곤충들에게는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리게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만들어요. 그들에게 달빛을 찾아주기는 어렵지만, 함께 살아갈 방향이 생기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그렸습니다."

Q. 특히 기억에 남는 작품의 에피소드는 무엇인가.

고민정 작가가 점묘화로 그린 혹등고래. (사진 고민정 작가 제공)/뉴스펭귄
고민정 작가가 점묘화로 그린 혹등고래. (사진 고민정 작가 제공)/뉴스펭귄

A. "혹등고래는 친구의 타투를 위해 작업한 그림입니다. 고래를 보러 가는 것이 현재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버킷리스트인데요. 언젠가 함께 자연 속 멋있는 고래의 모습을 눈에 담아보자는 바람을 갖고 작업했습니다.

고민정 작가가 점묘화로 그린 작품. (사진 고민정 작가 제공)/뉴스펭귄
고민정 작가가 점묘화로 그린 작품. (사진 고민정 작가 제공)/뉴스펭귄

집 근처 작은 하천을 따라 걷다가 마주한 아이들을 그렸어요. 나름 도시의 하천이었는데 아이들이 강에 소변을 보고 뛰어다니는 모습이 신기하더라고요. 마치 동물과 같은 야생적이고 순수한 모습이 인상 깊어 아이의 몸에 동물의 얼굴로 그림을 그려봤어요."

Q. 가장 각별하게 느끼는 작품과 그 이유는.
A. "아무래도 첫 작업인 그림책 <the box>가 가장 각별합니다. 그 작업으로 인해 저의 아이덴티티가 만들어지기도 했고, 아마도 앞으로 그때처럼 열정적으로 작업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이 들기 때문이에요. 조금 마음이 풀어진다는 생각이 들 때면 그 그림책을 보며 마음을 다잡고는 해요."

Q.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어떤 작업 과정을 거치나.
A. "종이에 펜으로 점을 찍고 그리며 작업하기도 하고, 아이패드로 작업하기도 합니다. 먼저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간단히 스케치를 해보고, 자료를 찾아보며 구체적인 스케치에 들어가요. 점 작업이 들어가기 전에는 명암의 단계를 나누는 작업을 진행합니다. 점의 크기, 모양에 따라 나눠지는 단계가 있는데 그것을 먼저 설정해 놓아야 편히 점으로 작업을 할 수 있어요. 그다음에는 진한 단계부터 차례로 점을 쌓아나갑니다."

고민정 작가가 점으로 그린 알락꼬리여우원숭이. (사진 고민정 작가 제공)/뉴스펭귄
고민정 작가가 점으로 그린 알락꼬리여우원숭이. (사진 고민정 작가 제공)/뉴스펭귄
고민정 작가가 점으로 그린 호랑이. (사진 고민정 작가 제공)/뉴스펭귄
고민정 작가가 점으로 그린 호랑이. (사진 고민정 작가 제공)/뉴스펭귄

Q. 일상 속에서도 환경보호를 실천하고 있나.
A. "조금 부끄럽지만 눈에 띄는 큰 활동을 하고 있지는 않아요. 제품을 구매할 때 재활용이 잘 되는 제품인지, 화장품은 비건 제품인지 살펴보고 결정합니다. 일상생활에서 최대한 저로 인해 나오는 쓰레기를 줄여보려고 해요."

Q. 지금까지 진행해온 전시나 프로젝트, 작업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A. "같이 활동하고 있는 작가 그룹인 '이삼공피' 멤버들과 함께 책을 만들거나 단체전을 열기도 합니다. 피노키오를 재해석하기도 했고, 각자의 병에 대해 공유하며 작업을 하기도 했어요. 갤러리에서 동물을 주제로 한 다양한 분야의 작가분들과 단체전을 했고 개인전을 한번 열었습니다. 책의 표지 일러스트 작업도 조금씩 꾸준히 하고 있어요."

Q. 가장 기억에 남는 피드백은.
A. "전시회 방명록에 남겨진 메모 중 ‘우리 모두 큰 그림을 이루는 중요한 점이겠죠?’라는 글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Q. 평소 가장 애정하는 동물이 있다면.
A. "좋아하는 동물이 많아서 가장 애정하는 대상을 고르기는 참 어려워요. 제가 동물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양한 생김새와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가장 애정한다는 말을 '가장 잘 알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한다면, 15년을 함께 살았던 개를 가장 애정한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고민정 작가가 점묘화로 그린 수리부엉이. (사진 고민정 작가 제공)/뉴스펭귄
고민정 작가가 점묘화로 그린 수리부엉이. (사진 고민정 작가 제공)/뉴스펭귄
고민정 작가가 점묘화로 그린 긴꼬리딱새. (사진 고민정 작가 제공)/뉴스펭귄
고민정 작가가 점묘화로 그린 긴꼬리딱새. (사진 고민정 작가 제공)/뉴스펭귄

Q. 어렸을 적 꿈은 무엇이었나.
A. "어렸을 때 백과사전을 보며 새를 그리는 것을 좋아했어요. 미래의 제 모습으로 새를 그리는 화가를 그렸던 기억이 납니다."

Q. 취미나 관심사는.
A.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이야기가 담겨있는 이미지들을 보는 것을 좋아해요. 전시나 영화, 만화, 게임과 같이 여러 매체를 통해 이미지를 접합니다. 그 안에 숨겨진 메시지를 발견할 때 기쁨을 느끼고, 같은 메시지라도 각자의 방식으로 다르게 풀어나가는 것에 흥미를 느껴요."

Q. 본인만의 철학이나 삶의 모토가 있다면.
A. "사람은 겉으로는 그저 나이 들어가는 것 같아 보이지만, 각자가 겪는 하루하루가 쌓여가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나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때로는 그 내용을 꽉꽉 채워 넣을 때도 있고, 때로는 공백으로 남겨두기도 하며 하루를 쌓아가고 있어요. 그것들이 쌓여 마지막이 되었을 때, 특별하지는 않아도 후회하지 않을 온전한 나의 모습이기를 바랍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는.
A. "앞으로 작업한 책들이 조금씩 나올 것 같고, 6월에는 이삼공피 멤버들과 함께하는 단체전이 있어요. 식물과 관련된 다양한 색깔의 작업들을 보여드릴 예정입니다. 작은 목표가 있다면 평소 펜으로 작은 크기의 작업만 진행했는데 큰 캔버스에 새로운 재료로 작업을 시도해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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