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척 명연기 선보인 개미

  • 이후림 기자
  • 2023.05.08 15:22
단체로 죽은척하는 개미들. (사진 호주동물학저널 AJZ)/뉴스펭귄
단체로 죽은척하는 개미들. (사진 호주동물학저널 AJZ)/뉴스펭귄

[뉴스펭귄 이후림 기자] 산에서 곰을 마주치면 도망치지 말고 죽은 척하라는 이야기가 있다. 실제 2021년 미국 알래스카에서는 스키를 타다 곰을 만난 남성이 죽은 척해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사례가 있다.

사람뿐 아니라 일부 동물도 포식자를 피하기 위해 죽은 척 명연기를 선보인다. 가장 잘 알려진 동물계 명배우는 '버지니아주머니쥐'다. 버지니아주머니쥐는 포식자 앞에서 입을 벌리고, 혀를 내밀고, 장을 비우고 심지어 악취가 나는 액체를 배설한다. 자신을 먹기에는 시간이 한참 지났음을 포식자에게 알리기 위해서다. 

과학적으로 '긴장성 부동화'라고 불리는 이 현상은 공포 때문에 일시적으로 몸이 굳어 꼼짝하지 못하는 상태이거나 의도적으로 죽은 척하는 행동이다. 조류에서 포유류, 어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동물은 이처럼 생존을 위해 명연기를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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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성 부동화 상태에 있는 레몬상어. (사진 Research Gate 보고서)/뉴스펭귄
긴장성 부동화 상태에 있는 레몬상어. (사진 Research Gate 보고서)/뉴스펭귄

이번에는 개미다. 호주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대학교 야생생태학 소피 쁘띠(Sophie Petit) 교수 연구진은 애들레이드 인근 캥거루섬에 서식하는 토착 개미가 포식자를 만나면 단체로 죽은 척한다는 연구결과를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발표했다. 관련 논문은 호주 동물학저널(AJZ)에 실렸다.

이 개미는 불개미아과 가시개미속으로 호주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에서만 관찰되는 고유종이다. 학명은 '폴리라키스 페모라타(Polyrhachis Femorata)'다.

연구진은 과거 대형산불로 황폐화된 산림에 설치한 인공둥지 901개를 조사하던 중, 일부 둥지 안에서 죽은 것처럼 보이는 개미 군집을 우연히 발견했다. 대부분은 산불로 심각한 멸종위기에 처한 토착나무 '유칼립투스 케노피폴리아'에 설치한 인공둥지에서 발견됐다.

토착나무에 설치한 피그미주머니쥐 인공둥지. (사진 호주동물학저널 AJZ)/뉴스펭귄
토착나무에 설치한 피그미주머니쥐 인공둥지. (사진 호주동물학저널 AJZ)/뉴스펭귄

연구 주 저자 쁘띠 교수는 "둥지를 열었을 때 죽은 것처럼 보이는 개미들이 있었고 이중 일부는 살짝 움직였다. 일부는 움직임을 완전히 멈추는 데까지 시간이 걸렸다"면서 "죽은 척하는 개미들의 연기는 거의 완벽했다. 개미군집이 단체로 죽음을 가장하는 사례가 발견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또 "산불로 피해를 입은 특정 토착나무에서만 발견되는 것으로 볼 때 해당 개미종 역시 산불 영향을 크게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우려했다.

이 개미의 생태와 행동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연구진은 "개미는 생태계에서 없어선 안 될 존재다. 죽음을 가장하는 개미종이 캥거루섬에 서식한다는 건 매우 흥미로운 일이고 이들 생태를 알아가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단체로 죽은 척하는 개미들. (사진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대학교 트위터)/뉴스펭귄
단체로 죽은 척하는 개미들. (사진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대학교 트위터)/뉴스펭귄

한편 개미, 버지니아주머니쥐 외에도 기니피그, 토끼, 메뚜기, 상어 등 다양한 생물이 생존을 위해 죽은 척하는 사례가 확인된 바 있다. 특히 곤충은 잡히기 전보다는 잡힌 이후 최후의 수단으로 죽음을 가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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