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방비폭탄 뒤엔 에너지위기, '두 가지' 돌파구는?

  • 이수연 기자
  • 2023.02.23 14:18

에너지 전문가들 "수요관리·공급전환 필요"
수요관리는 '단열 지원'
공급전환은 '재생에너지로 히트펌프'

도시가스 계량기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도시가스 계량기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뉴스펭귄 이수연 기자] 난방비 폭탄은 세계 3번째 천연가스 수입국인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천연가스 가격 인상으로 가스비가 1년 새 38% 오르면서 시민들의 생존이 위협받자 정부는 급히 난방비 지원에 나섰다. 난방비 상승은 눈앞에 닥친 문제이지만 그 이면에는 '에너지 위기'가 있다고 에너지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단기적인 대책을 넘어 장기적인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에너지 위기는 이번 겨울에만 국한하는 현상이 아니며, 기후위기처럼 그 피해가 공평하지 않아서다.

에너지 위기를 돌파할 방법으로 전문가들은 '수요관리'과 '공급전환'을 말한다.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에서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동시에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의 양 자체를 줄여야 한다는 의미다. <뉴스펭귄>은 기후위기 시대이자 난방비 폭탄시대에 우리가 나아가야 할 '수요관리'와 '공급전환'의 방향이 무엇인지 에너지 전문가들에게 물었다.

에너지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단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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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수요관리란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도록 이끄는 방법이다. 에너지를 많이 공급하는 대신 새어나가는 에너지를 막아 수요를 줄이자는 취지다. 에너지 효율이 높으면 기존보다 적은 에너지를 사용해도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 에너지 절약은 물론 비용 절감도 가능하다.

전문가들이 꼽은 가장 쉽고 효과적으로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방법은 '단열'이다. 단열은 잘 알려진 에너지 효율화 수단이다. 영국에서는 2021년부터 '영국을 단열시켜라(Insulate Britain)' 운동이 커지면서 이듬해 영국 정부가 "2025년부터 주택 단열과 같은 에너지 효율 개선 사업에 60억달러를 사용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은 "난방비 문제는 주거 상태와 관련 있는데, 우리나라 주택 단열은 편차가 심하다"며 "1980년대 전에 지어진 주택의 단열재는 50㎜ 정도인데 지금 짓는 집들은 220㎜짜리를 넣는다. 두께만 봐도 4배 이상 차이가 난다"고 밝혔다.

국토교통부가 2022년 발표한 '전국 건축물 현황'을 보면 전국에서 30년 이상 된 건물은 39.6%, 그중 주거용 건물은 전체 49.1%로 우리나라 주택 절반 가까이가 노후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국토교통부 '전국 건축물 현황' 갈무리)/뉴스펭귄
(사진 국토교통부 '전국 건축물 현황' 갈무리)/뉴스펭귄

에너지 쓸 돈만큼 아낄 돈도 지원해야

이헌석 정책위원은 "우선 노후 주택에 거주하는 취약계층 대상으로 적극적인 단열 지원사업이 필요하다. 실제 창문에 유리 대신 비닐 끼운 집도 있고 합판으로 벽 세운 집도 있는데, 그런 가구에 '뽁뽁이 붙여라', '친환경 보일러 놔라'고 할 수 있겠느냐. 무엇보다 기후위기가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난방비 지원에만 머물 수는 없다"고 꼬집었다. 에너지 쓰는 돈을 지원할 뿐 아니라 에너지 아끼는 돈도 전폭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지난 15일 난방비 절약 '꿀팁'으로 친환경 보일러 교체를 제안했다. 친환경 보일러란 에너지 효율이 높은 가스 보일러다.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은 "가스 보일러는 친환경이 아니"라며 "기후위기 시대에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민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신축 아파트 가보면 단열이 굉장히 잘 되니 가스비도 적게 나오는데 노후 주택은 단열이 안 되는 곳이 많아 단열 지원하는 사업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2030년까지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안보에 3690억 달러를 투자한다. 그 목적으로 백악관이 직접 '모두를 위한 청정에너지(Clean Energy for All)' 사이트를 열고 시민들이 에너지를 줄이기 위해 주택 단열, 지붕 태양광 설치 등 받을 수 있는 지원을 소개한다. 주택 단열 개선을 위해 일반 가구는 4000달러, 저소득층은 8000달러까지 받는다. 

이유진 부소장은 "난방비 논쟁을 기후위기 대응과 연결해야 한다"며 "단열과 같은 그린리모델링에 정부 재원을 투입하는 제도는 난방비 대책과 기후위기 대응이 연결되는 지점"이라고 말했다.

(사진 백악관 '모두를 위한 청정에너지' 홈페이지 갈무리)/뉴스펭귄
(사진 백악관 '모두를 위한 청정에너지' 홈페이지 갈무리)/뉴스펭귄

전문가들 주목한 '히트펌프', 그게 뭔데?
해외에선 유명하지만 한국에선 생소

에너지 공급전환이란 에너지원을 화석연료에서 친환경 에너지로 바꾸는 것이다. 난방에 쓰이는 화석연료를 퇴출할 현실적인 대안으로 '히트펌프'가 꼽힌다. 히트펌프란 전기를 사용해 바깥의 열을 안으로 옮기는 기기라는 게 김민성 교수의 '쉬운' 설명이다. 땅이나 물, 공기 등 자연에 존재하는 열을 압축해 온도를 높인 다음, 실내로 보내 냉·난방에 이용하는 방식이다. 주로 지열을 많이 활용한다.

김민성 교수는 "히트펌프는 전기히터와 다르다. 실외에 이미 존재하는 열을 전기로 압축해 끌어올리는 일종의 변환기라서 전기를 1만큼 쓰고 열을 3배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가스나 전기를 직접 사용해 냉·난방하는 것보다 에너지 효율이 3배 뛰어난 셈이다.

유럽, 일본 등에서는 히트펌프를 '난방비 해결사'로 여기며 설치를 확대하는 추세다. 그중에는 삼성·LG 등 한국 기업이 생산하는 히트펌프도 있다. 2022년 삼성전자는 "최근 유럽에 에너지난이 닥치면서 저렴한 난방비와 친환경 에너지를 찾는 유럽 소비자들 사이에서 히트펌프가 기존 보일러의 대체재로 크게 성장하고 있다"며 "유럽 히트펌프 매출은 전년 대비 118% 성장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가 유럽에서 판매하고 있는 히트펌프 (사진 Samsung Newsroom 갈무리)/뉴스펭귄
삼성전자가 유럽에서 판매하고 있는 히트펌프 (사진 Samsung Newsroom 갈무리)/뉴스펭귄

유럽히트펌프협회는 2022년 유럽 내 히트펌프 판매량이 약 38% 증가해 300만대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천연가스 40억㎥을 대체해 탄소 800만톤을 줄일 수 있는 규모다. 지난해 프랑스에 새로 설치된 난방기기 96%는 히트펌프였으며, 같은 해 네덜란드는 히트펌프 11만대를 새로 설치하는 등 히트펌프 시장이 57% 성장했다.

러시아 화석연료 대체를 위한 EU의 '리파워EU(REPower EU)' 계획에 따르면 앞으로 5년간 유럽 내에 히트펌프 1000만대를 설치해 2030년까지 천연가스 소비를 40% 줄인다. 연간 3000만톤의 탄소를 저감하면서 천연가스 수입 비용 630억 달러를 절감할 수 있다.

아파트에도 히트펌프 쓸 수 있지만…
얽힌 에너지전환 논의부터 시작해야

우리나라에서도 히트펌프는 난방비 사태 이전부터 탄소중립을 이루는 친환경 기술로 각광받았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이 2021년 발표한 '분야별로 살펴보는 탄소중립 달성의 열쇠' 보고서에서 손정락 당시 산업통상자원부 MD는 "열에너지 탈탄소화의 가장 강력한 수단은 전기화이며 핵심 수단은 히트펌프"라고 언급했다. 권필석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장은 "난방공급에서 신규 화석연료 열기기를 초기에 금지하는 규제가 필요하고, 전력화기술 즉 히트펌프 등이 보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필석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장이 말한 '건물 부문 탄소중립 방법' (사진 분야별로 살펴보는 탄소중립 달성의 열쇠 보고서 갈무리)/뉴스펭귄
권필석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장이 말한 '건물 부문 탄소중립 방법' (사진 분야별로 살펴보는 탄소중립 달성의 열쇠 보고서 갈무리)/뉴스펭귄

현재 국내에서도 상업용 건물은 히트펌프 사용이 점차 늘고 있지만 주택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이유로 시민들에게 생소한 편이다. 해외와 달리 아파트가 많은 우리나라 주택에서는 설치 자체가 어려운 걸까. 김민성 교수는 "우리가 생활할 때 쓰는 열 정도는 아파트라 해도 히트펌프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답했다.

김 교수는 "다만 아파트의 경우 각 세대별로 히트펌프를 설치해야 하는데 전력 공급이나 누진세 문제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히트펌프를 사용하면 가스 사용량은 줄지만 전기 사용량이 늘고, 누진구간을 넘어서면 기본요금도 오르는 누진세 제도로 전기료 대란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헌석 정책위원은 "히트펌프가 실질적인 대안이라고 보지만, 연탄 때서 난방하는 8만 가구에 곧바로 히트펌프 설치하라고 얘기할 순 없다. 에너지 전환에는 단계가 있어 일단 연탄부터 확실하게 퇴출해야 하는데 정부는 계획이 없는 상태"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집마다 히트펌프를 설치한다면 엄청난 양의 전기가 필요한데 어떻게 공급할 것인지 등의 문제가 얽혀 있다. 우리 사회도 에너지 전환에 대한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열에서 전기로만 바꾸면 해결?
재생에너지로 전력 생산하는 구조 전제해야

두 에너지 전문가의 우려처럼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의 화석연료를 직접 사용하지 않고 히트펌프와 같은 전기를 이용해 난방한다고 해도 문제는 생긴다. 우리나라는 아직 전력을 생산할 때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비중이 크고, 난방을 전기화해 전기 사용량이 늘면 지금으로선 화석연료를 많이 사용하는 모습은 똑같기 때문이다.

결국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에서 전력을 생산하는 구조를 전제해야 화석연료를 퇴출하면서 '진짜' 탄소중립을 이룰 수 있다. 히트펌프 설치를 고려할 때 재생에너지 확대 논의가 함께 가야만 하는 이유다.

이유진 부소장은 "독일은 EU 국가 중에서도 특히 러시아 천연가스 수입 의존도가 높았는데, 이번 사태로 혹독한 경험을 했다. 독일은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앞당기기로 했고, 2030년까지 전력 중 재생에너지 비중을 80%로 늘리기로 했다. 물론 히트펌프 수요도 늘고 있어 설치를 위해 10개월 기다려야 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원전은 재생에너지도 아니고,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어떻게 처리할지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반면 태양광 패널은 재활용할 수 있어 폐기물 처리가 쉽다. 유럽은 지역마다 태양광 재활용 센터를 마련해 순환 체계를 만들고 있고 우리나라도 충북 진천에 있다. 사람들이 원전보다 태양광 폐기물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가 도시에서 만드는 쓰레기양에 비하면 적다. 재생에너지 늘리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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