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의 서재] 지구의 조각은 인류세를 알고 있다

  • 손아영
  • 2023.01.18 18:16
(그래픽 손아영)/뉴스펭귄
(그래픽 손아영)/뉴스펭귄

 

 

우리가 사는 시대는 ‘인류세’?


[뉴스펭귄 손아영] '인류세'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단어만 보았을 때는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지구에 내야 하는 세금처럼 느껴지는데요. 공식적인 정의에 따르면 인류세는 ‘너무나 강력해진 나머지 자기 자신을 포함한 지구 전체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힘을 갖게 된 생물종이 지배하는 시대’를 지칭합니다. 우리는 어쩌다 인류세를 살아가게 되었는지, 지질학적 역사를 통해 살펴볼까요?

 

 

인류세 이전에 ‘홀로세’가 있었다

뉴스펭귄 기자들은 기후위기와 그로 인한 멸종위기를 막기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정기후원으로 뉴스펭귄 기자들에게 힘을 실어 주세요. 이 기사 후원하기


(사진 unsplash)/뉴스펭귄
(사진 unsplash)/뉴스펭귄

현재의 공식 지질시대는 ‘홀로세’입니다. 홀로세는 빙하기 이후 지금까지의 비교적 따뜻한 시기를 말하며, 약 1만년의 시간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이 홀로세가 등장한 시점을 증명해낸 것은 바로 ‘얼음코어’라 불리는 얼음 조각인데요. 여기서 ‘코어’는 해저나 빙하를 굴착해 뽑아낸 샘플을 뜻합니다. 그린란드와 남극의 얼음은 단순히 물이 언 것이 아닌 눈이 응축된 것이라 눈송이 사이 모든 공간에 공기가 갇혀 있어 옛날 공기가 그대로 보존됩니다. 즉, 얼음코어를 분석하면 과거의 기후를 읽을 수 있는 것이죠. 1945년 원자폭탄에서 나온 방사성 탄소, 1963년 미국과 러시아의 핵폭탄으로 오염된 대기까지 인간의 활동 내역이 모두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00년, 멕시코에서 열린 국제 지권-생물권 프로그램 회의에서 처음으로 ‘인류세’ 개념이 제안됐습니다. 바로 네덜란드의 대기과학자 ‘파울 크뤼천’에 의해서 말이죠. 그는 우리가 더 이상 홀로세에 살고 있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바다와 대기, 얼음 등에서 홀로세에서는 보지 못했던 수준의 변화가 인류세의 탄생을 뒷받침해줄 증거로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죠.

 

 

매섭게 다가오는 인류세의 모습


(사진 unsplash)/뉴스펭귄
(사진 unsplash)/뉴스펭귄

2020년 1월 1일, 호주 캔버라는 두꺼운 연기로 뒤덮였습니다. 호주 남동부 지역에서 발생한 들불이 4개월 넘게 지속되며 피해가 캔버라까지 번진 것이죠. 이 최악의 들불로 서울의 100배가 넘는 면적이 타버렸고 국가비상사태까지 선포됐습니다. 미국의 기후학자 ‘윌 스테픈’은 이를 인류세의 징후라고 이야기합니다. 들불은 자연적인 현상이지만, 기후 변화로 인해 ‘화재 체계’가 악화되며 화재의 강도, 빈도, 피해 규모가 비정상적으로 증가했다는 것이죠. 가장 큰 원인은 바로 화석연료입니다.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 사용으로 자연재해는 더 잦아지고 맹렬해졌죠. 전 세계 석탄 수출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호주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는 못했습니다. 더불어 2007년 발표된 논문에서 언급된 “거대한 가속(The Great Acceleration)”의 정의는 인류세 담론에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1950년대부터 많은 사람들이 빈곤에서 벗어났고 삶의 질이 올라가는 동시에 지구시스템을 변화시켰습니다. 교통수단, 도시인구, 물·에너지 사용 등이 증가하며 열대우림 손실, 오존층 파괴, 생물다양성 감소도 함께 증가한 것이죠.

 

 

‘지구의 절반’을 구하라!


(사진 unsplash)/뉴스펭귄
(사진 unsplash)/뉴스펭귄

인류세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더 이상 희망은 없는 것일까요? 그도 그럴 것이 20만년 전에 등장한 인류가 46억년을 버텨온 지구를 파괴했습니다. 여섯 번째 대멸종은 진행 중이고, 여전히 플라스틱은 산처럼 쌓이고 있으며, 포화 상태의 도시는 신음하고 있죠. 다행히 인류세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학자도 있습니다. 바로 세계에서 가장 저명한 생물학자인 ‘에드워드 윌슨’. 현재 윌슨 교수는 지구의 절반을 자연 보호 구역으로 지정하자는 ‘지구의 절반(Half Earth)’ 개념을 만들어 생태계를 보존할 현실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는 태평양, 인도네시아, 인도의 섬을 연구하며 섬의 절반을 보존하면 80% 이상의 식생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죠. 이를 행성 전체에 확대해 지구의 절반을 보호하면 모든 생명체의 85%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이 이 ‘지구의 절반’ 운동의 핵심입니다. 학자에게서 시작된 이 환경운동이 희망적인 이유는, 내셔널지오그래픽이 한국을 포함해 12개국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대부분의 응답자가 이 운동에 동의했다는 것입니다.

 

 

지구가 달걀이라면


(사진 unsplash)/뉴스펭귄
(사진 unsplash)/뉴스펭귄

지구가 달걀이라면,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대기는 달걀 껍데기에 속합니다. 그만큼 깨지기 쉬운 존재입니다. 그리고 인류세가 되며 지구의 대기 속 이산화탄소 농도는 엄청난 양으로 증가했죠. 지금도 달걀 껍데기는 사정없이 갈라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희망을 품고 미래를 그릴 수 있는 이유는, 껍데기 속 얇은 막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 얇은 막은 출혈을 멈추고 상처를 치유하는 데 효과적입니다. 지구의 절반을 위한 인류의 선택이 이 막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픽 손아영)/뉴스펭귄
(그래픽 손아영)/뉴스펭귄

 

뉴스펭귄은 기후위험에 맞서 정의로운 해결책을 모색하는데 초점을 맞춘 국내 유일의 기후뉴스입니다. 젊고 패기 넘치는 기후저널리스트들이 기후위기, 지구가열화, 멸종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분투하고 있으며, 그 공로로 다수의 언론상을 수상했습니다.

뉴스펭귄은 억만장자 소유주가 없습니다. 상업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일체의 간섭이 없기 때문에 어떠한 금전적 이익이나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리의 뉴스에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뉴스펭귄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여러분의 후원을 밑거름으로, 게으르고 미적대는 정치권에 압력을 가하고 기업체들이 기후노력에 투자를 확대하도록 자극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적은 금액이라도 여러분의 소중한 후원은 기후위험으로부터 우리를 지키는데 크게 쓰입니다.

뉴스펭귄을 후원해 주세요. 후원신청에는 1분도 걸리지 않으며 기후솔루션 독립언론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만듭니다.

감사합니다.

후원하러 가기
저작권자 © 뉴스펭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