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의 서재] 황금 털 낳는 늑대 이야기

  • 손아영
  • 2022.10.21 08:46
(그래픽 손아영)/뉴스펭귄

 


황금 털 낳는 늑대


[뉴스펭귄 손아영] ‘황금알 낳는 거위’ 이야기를 아시나요? 가난했던 한 부부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발견하고는 더 많은 알을 얻기 위해 거위의 배를 가르지만, 속은 텅 비어있었고 애꿎은 거위만 죽은 꼴이 되었다는 이야기인데요. 인간의 욕심이 모두의 비극적 결말을 낳는다는 교훈을 주고 있죠. 그리고 여기 또 하나의 비극이 있습니다. 바로 평생을 숫자로 불리며 사육 공장에 갇혀 사는 ‘황금 털 늑대’ 이야기입니다. 

 


늑대 730과 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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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책공장더불어 제공)/뉴스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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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 730과 173, 이들은 모두 카보슈 박사의 거대한 사육 공장에 살고 있습니다. 무려 황금 털이 자라도록 길러지죠. 늑대의 털을 황금으로 바꾸는 비법을 알아낸 카보슈 박사는 이들의 털을 통해 어마어마한 부자가 됩니다. 하지만 이곳의 늑대들은 그 흔한 이름 하나 얻지 못한 채 숫자로 불리고 있죠. 언제 태어나느냐에 따라 이름이 정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정해진 숫자의 바코드가 찍히면 어김없이 레일 위에 올라 차가운 기계에 맨살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늑대 730은 공장 안으로 날아온 새를 통해 바깥세상을 알게 됩니다. 바람 부는 자연이 있는, 털을 뽑지 않아도 되는, 불릴 이름이 있는, 그런 자유의 세상. 그리고 우연히 공장 안으로 들어온 소년이 흘리고 간 이름표에서 지옥을 벗어날 방법을 떠올리게 되죠. 과연 이들은 마침내 자연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숫자로 불리는 동물들


(사진 책공장더불어 제공)/뉴스펭귄
(사진 책공장더불어 제공)/뉴스펭귄

“우리는 해마다 600억 명에 달하는 동물을 죽입니다.”
스웨덴의 환경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생명다양성의 날(5월 22일)’을 기념해 만든 영상에서 한 말입니다. 매년 200만t에 달하는 동물이 인간의 의식주를 위해 희생당한 뒤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카보슈 박사의 공장에 있던 늑대처럼 이름 하나 없이 600억 숫자 중 하나로 짧은 생을 살다 사라집니다. 그러나 툰베리의 말처럼 동물들은 먹히기 위한 존재가 아닌, 생각하고 느끼는 존재입니다. 어떤 동물은 미래를 계획하고 친구와 수십 년 넘게 우정을 쌓아가며, 우리가 ‘공감(empathy)’이라 부르는 감정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재, 지구의 70%에 달하는 동물들이 공장에 살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그 숫자는 99%나 되죠. 여전히 이 끔찍한 숫자를 들어야만 ‘숫자로 불리는 동물들’의 현실에 귀 기울이는 인간의 잔혹함에 다시 한번 생각이 많아지는 지점입니다.

 


현실 속 황금 털


(사진 책공장더불어 제공)/뉴스펭귄
(사진 책공장더불어 제공)/뉴스펭귄

늑대들의 황금 털, 현실에서는 어떨까요? 해마다 10억마리 이상의 토끼, 5000만마리 이상의 여우, 밍크, 너구리, 개 등이 농장에서 태어나거나 야생에서 잡혀 털가죽이 벗겨집니다. 저렴한 가격으로 사랑받는 모피는 동물들의 고통을 통해 생산됩니다.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하나의 모피코트를 위해서는 100마리 또는 그 이상의 동물이 죽어야 하죠. 특히 비좁고 더러운 철제 케이지 안에 살아야 하는 사육 동물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신체가 부러지거나 염증이 발생해도 치료받지 못합니다. 그저 필요한 것을 뽑아내기 위해 존재하는 하나의 기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죠. 그렇게 좁은 케이지에 갇힌 동물들은 극도의 스트레스와 공포를 느끼며 하염없이 케이지 안을 빙빙 도는 정형행동을 반복하기도 하고, 심한 경우 자해를 하기도 합니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공포로 가득한 울음을 참아냈던 늑대 730과 173의 이야기가 동화 속 이야기만은 아닌 듯합니다.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생명이 되었다


(사진 unsplash)/뉴스펭귄
(사진 unsplash)/뉴스펭귄

더 이상 생명이 숫자로 불리지 않는 세상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마 ‘계속해서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아닐까요. 멸종위기 동물의 이름이 희미해지며 더 이상 나의 일이 아닌 게 되어가는 것처럼, 인간이 만든 울타리 안에 갇힌 동물들이 이름을 잃지 않도록 그들의 이야기를 소리 내어 알리는 것이죠. 우리가 외친 이름이 그들에게 닿아 마침내 야생의 품으로 돌아갈 그날까지요.

 

 

(그래픽 손아영)/뉴스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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