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의 서재] 바나나의 멸종이 다가온다?

  • 손아영
  • 2022.10.12 16:56
(그래픽 손아영)/뉴스펭귄
(그래픽 손아영)/뉴스펭귄

 

 

미생물을 보면 세상이 보인다


미생물을 본 적이 있나요? 대답은 당연히 ‘아니오’겠죠. 미생물은 말 그대로 너무 작아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체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작은 미생물은 사실 온 세상에 존재한답니다. 한 사람의 신체 안에 있는 세균만 해도 100조 개에 이르죠. 우리가 즐겨 먹는 초콜릿, 빵, 치즈도 미생물이 없었다면 존재할 수 없었을 거예요. 때문에 미생물을 이해한다는 것은 세상을 이해하는 것과 같아요. 왜 우리가 지금과 같은 존재가 되었는지, 스스로 멸절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죠.

 

바나나의 멸종이 다가온다? 푸사리움 옥시스포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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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뉴스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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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마트에서 바나나를 볼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바나나의 멸종이 다시 찾아오고 있기 때문이죠. 놀랍게도 바나나는 이미 한 번 멸종된 적이 있습니다. 1960년대 초까지 수출되는 바나나는 대부분 ‘그로 미셸’ 종이었는데요. ‘푸사리움 옥시스포룸’이라는 곰팡이 균이 등장하며 바나나 병충해가 전 세계로 확산됐습니다. 바나나는 무성번식을 하기 때문에 두 그루의 바나나 나무가 필요치 않아요. 굉장히 실용적으로 보이겠지만, 이는 바나나가 환경 변화에 적응하기 힘들게 만듭니다. 아무리 세대를 거듭해도 진화된 바나나 유전자를 갖출 수 없기 때문이죠. 그로 미셸 종 바나나 또한 모두 유전적으로 동일했기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곰팡이 균에 당하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당시에는 곰팡이 균에 저항성을 가진 개량종이 존재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1990년대부터 푸사리움 옥시스포룸의 새로운 변이균이 등장했고, 우리에게는 대안으로 재배할 수 있는 바나나 품종이 없습니다. 설사 그런 품종이 나온다 해도 근본적인 문제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바나나가 계속 단일경작 시스템으로 재배되고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바나나만이 생산되는 이상, 새로 등장하는 미생물에게는 이들을 감염시키는 것이 너무나 쉬운 일이기 때문이죠.

 

잉어를 잡는 가장 위험한 방법, 잉어 헤르페스 바이러스


(사진 unsplash)/뉴스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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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는 크리스마스와 섣달그믐에 잉어 요리를 주로 해 먹고, 정원의 연못과 수족관에서는 화려한 비단잉어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잉어가 인기 있다 보니, 사람들은 원래 잉어 서식지가 아닌 지역에도 잉어를 유입시켰고, 결과적으로 잉어가 급격히 증식해 지역 생태계를 위협하게 됐습니다. 이에 호주 정부는 ‘잉어 헤르페스 바이러스’를 물에 살포해 잉어를 말살시키려는 계획을 세웠죠.

하지만 과학계에서는 이 방법에 우려를 표했습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 잉어들이 이 바이러스로 인한 타격을 비교적 빨리 회복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기 때문이죠. 잉어 암컷 한 마리가 1년에 낳는 알의 개수는 1000만 개 이상이기 때문에, 개체군에서 몇 퍼센트만 바이러스에 면역이 돼도 개체 수를 빠르게 회복하는 데 무리가 없습니다. 또한 죽은 잉어들을 처리하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수백만 톤의 잉어 사체들로 호주의 강이 썩게 되면 더 큰 생태계 파괴로 이어질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 바이러스가 현재로서는 사람에게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계속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인간을 숙주로 삼는 순간, 코로나19 팬데믹 같은 상황이 다시 반복될 수 있습니다.

 

핏빛 눈에 빙하가 녹는다, 클라미도모나스 니발리스


(사진 unsplash)/뉴스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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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봄, 남극 대륙의 하얀 눈 속에 피처럼 붉은 눈이 섞여 있는 모습이 찍혀 화제가 됐는데요. 눈을 핏빛으로 물들인 장본인은, 현미경으로 봐야만 겨우 보이는 ‘클라미도모나스 니발리스’라는 녹조류입니다. 이들은 녹조류라는 이름에 걸맞게 초록색으로 삶을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서식에 최고로 적합한 환경을 찾을 때까지 눈 속에서 이동하죠. 그러다 어느 순간 양분이 바닥나고 햇빛이 너무 강해지면, 자외선과 태양광선을 차단하는 ‘아스타잔틴’이라는 붉은 색소를 만들어냅니다. 태양의 자외선에 가장 취약하기 때문이죠.

이 붉은 색소는 눈이 따스한 햇빛을 더 잘 흡수하도록 만들어 눈이 녹는 속도를 더 빨라지게 합니다. 실제 연구 결과, 이 녹조류는 눈과 얼음이 햇빛을 반사하는 비율을 평균 13퍼센트 정도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인간의 활동으로 지구가열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극지방의 빙하를 녹이는 과정을 촉진하고 있는 것이죠. 더 무서운 것은 이 녹조류가 기온이 올라가는 것을 반가워한다는 것입니다. 기온이 오르면 평소에 척박했던 지역에서도 양분이 더 많아져, 이들이 찾던 최적의 서식 환경이 주어지기 때문이죠. 

 

작은 것들을 위한 시(時)


(사진 unsplash)/뉴스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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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은 우리를 둘러싼 환경뿐만 아니라, 우리의 체내에도 존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그들의 모습과 행동도 달라지죠. 미생물처럼 작은 존재가 인간의 일상을 뒤흔들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작은 행동이 지구에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미생물의 존재를 증명하는 작은 흔적을 유심히 들여다볼 줄 아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그래픽 손아영)/뉴스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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