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막 속에서 사라지는 새들을 종이로 기록하다

  • 남예진 기자
  • 2022.10.08 00:15
이재혁 작가의 전시가 9월22일부터 10월9일까지 서울시 노원구 경춘선숲길 갤러리에서 진행되고 있다.(사진 남예진 기자)/뉴스펭귄
이재혁 작가의 전시가 9월22일부터 10월9일까지 서울시 노원구 경춘선숲길 갤러리에서 진행되고 있다.(사진 남예진 기자)/뉴스펭귄

[뉴스펭귄 남예진 기자] 수십 마리의 새들이 모인 경춘선숲길 갤러리. 시끌벅적한 지저귐이 울려 퍼질 것만 같지만, 고요한 적막만이 흐른다.

이 곳을 가득 채운 것은 진짜 새가 아니다. 페이퍼 아티스트 이재혁 작가가 종이의 원초적인 특성인 '기록'에 초점을 두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들의 사연을 기록한 작품들이다. 그는 새들의 어떤 이야기를 기억하기 위해 기록을 남긴 것일까?

이재혁 작가는 비둘기가 전형적인 새처럼 생겨 작업 시 가장 재미있는 동물이라고 말했다.(사진 남예진 기자)/뉴스펭귄
이재혁 작가는 비둘기가 전형적인 새처럼 생겨 작업 시 가장 재미있는 동물이라고 말했다.(사진 남예진 기자)/뉴스펭귄
왼쪽부터 스칼렛 마카우와 물총새 페이퍼아트(사진 남예진 기자)/뉴스펭귄
왼쪽부터 스칼렛 마카우와 물총새 페이퍼아트(사진 남예진 기자)/뉴스펭귄

전시된 작품 속에는 우리에게 친숙한 비둘기, 까치, 앵무새도 있었지만,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는 새들도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작가 생활을 시작한 이후, 동물을 소재로 활용하다보니 자연스레 멸종위기종을 다루게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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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의 많은 생물이 멸종에 처해있고 안타까운 사연을 지니고 있지만, 사람들이 그 사실을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라며, "적절한 보호 조치가 이뤄지기 위해선 사람들이 그들의 현실을 인식해야 하다 보니, 멸종위기종 작업을 계속해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에 발간한 <편지가 왔어요>도 그 연장선이라고 덧붙였다.

이재혁 작가는 유리창에 부딪히기 일보 직전인 새를 페이퍼 아트로 묘사했다.(사진 남예진 기자)/뉴스펭귄
이재혁 작가는 유리창에 부딪히기 일보 직전인 새를 페이퍼 아트로 묘사했다.(사진 남예진 기자)/뉴스펭귄
유리창에 충돌하는 새들의 머리뼈는 충격에 견디지 못한다. 작가는 결국 그들이 유리창 아래서 고요히 죽어나간다고 밝혔다.(사진 남예진 기자)/뉴스펭귄 
유리창에 충돌하는 새들의 머리뼈는 충격에 견디지 못한다. 작가는 결국 그들이 유리창 아래서 고요히 죽어나간다고 밝혔다.(사진 남예진 기자)/뉴스펭귄 

전시장의 다른 한쪽에는 유리창 충돌로 고통받는 새들의 기록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국내에서 매일 2만 마리의 새들이 유리창 때문에 생을 마감하지만, 사람들이 직접적인 피해를 보지 않다 보니 그간 무시돼 왔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불과 몇년새, 유리창 충돌로 죽어가는 새들이 대중에게도 많이 알려지면서 신축 공공시설 유리창에는 충돌 방지 스티커가 많이 부착되고 있어요. 전 이 상황이 대중들과 함께 문제를 개선한 좋은 사례라고 생각돼 작품들을 제작하게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작품을 손보는 이재혁 작가(사진 남예진 기자)/뉴스펭귄
작품을 손보는 이재혁 작가(사진 남예진 기자)/뉴스펭귄

그는 종이의 특성상 생물들을 완벽하게 구현할 수는 없지만, 최대한 실물에 가깝게 만들기 위해 실루엣이나 동정 포인트 등에 신경을 많이 기울이는 편이라고 전했다.

각각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서 국내 조류원이나 동물원을 방문하거나 박제를 살펴보는 편이지만, 멸종위기에 처한 종은 볼 수 있는 경우가 적다보니 사진이나 영상 자료에 파묻히는 일도 허다하다며 웃었다.

집비둘기와 비슷한 생김새를 한 양비둘기는 집비둘기와 교잡되면서 멸종위기에 처해있다.(사진 남예진 기자)/뉴스펭귄
집비둘기와 비슷한 생김새를 한 양비둘기는 집비둘기와 교잡되면서 멸종위기에 처해있다.(사진 남예진 기자)/뉴스펭귄

다만, "국내 자생종임에도 자료가 거의 없어, 해외에서 자료를 찾아야 할 때는 아쉬움이 많다"며, "해외 자연사 박물관처럼, 신체 치수 같은 세밀한 부분까지 기록한 자료가 풍부했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그는 도도 작업을 할 때 박제나 사진은 없고 우스꽝스럽게 묘사한 그림만 남겨져 있는 걸 보고 다시 한번 '기록'의 중요성을 느끼게 됐다며, 이번 전시가 끝나면, 표본 박제사 시험을 치를 것이라고 했다.

또한, "유리창 충돌로 사망한 새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야생화된 집고양이가 사체를 훼손하거나, 물어가는 경우가 잦아 데이터에 오류가 자주 발생하게 된다"며, "고양이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들도 조명해 보고 싶다"고 조심스레 밝혔다.

이재혁 작가가 작품을 바라보고 있다.(사진 남예진 기자)/뉴스펭귄
이재혁 작가가 작품을 바라보고 있다.(사진 남예진 기자)/뉴스펭귄

끝으로 이재혁 작가는 "멸종위기종이나 환경을 주제로 작업하다 보면,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좋은 소식을 듣기 힘들다 보니 미래에 대한 비관적인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중들을 한없이 비판하고, 상황을 비관하기 보단, 대중들을 설득해 인류세를 인간의 부정적인 영향을 나타내는 시대로 남기지 않고, 인간이 자연을 회복시킨 지질 시대로 바꿔나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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