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장 멸종위기종 #54] 거제사곡만에 생매장 당할 뻔한 멸종위기종 갯게

  • 조은비 기자
  • 2022.07.30 00:00
왼쪽부터 잎사귀 아래 숨어 있는 방게, 굴에서 막 나온 갯게 (사진 조은비 기자)/뉴스펭귄
왼쪽부터 잎사귀 아래 숨어 있는 방게, 굴에서 막 나온 갯게 (사진 조은비 기자)/뉴스펭귄

[뉴스펭귄 조은비 기자] 직접 만나본 갯게는 매우 조심성이 많은 성격이었다. 먼 거리에서도 작은 인기척이 느껴지면 빠르게 굴 속으로 몸을 숨겼다.

이렇게 민첩하게 움직이는 종이 어쩌다가 멸종위기까지 내몰리게 됐을까. 원인은 으레 다른 종들이 그렇듯이 생물 서식을 고려하지 않고 인간 맞춤형 개발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울산, 포항에서도 발견됐지만 최근에는 개체 수가 급격히 감소해 서해안 일부 지역과 제주도, 남해안 일대에서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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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게는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하구 기수역 주변이나 갈대밭이 있는 곳에서 굴을 파고 서식하는데, 해안개발을 하면서 갯게가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줄어들었다.

갯게를 포함해 다양한 종의 게들이 파놓은 굴 (사진 조은비 기자)/뉴스펭귄
갯게를 포함해 다양한 종의 게들이 파놓은 굴 (사진 조은비 기자)/뉴스펭귄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으며 갑각 길이 약 30~40㎜, 너비 약 40~50㎜에 보랏빛이나 황갈색을 띄고 있다. 국내를 포함해 일본, 대만, 중국 일부 지역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살아있는 갯벌 이야기', '한국의 게' 저자로 알려진 백용해 녹색습지교육원장은 "갯게는 서식환경이 다른 종들에 비해 까다로운 종이다. 호흡, 먹이, 서식지 등의 특이성으로 인해 서식지가 협소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국내에 서식하는 게들 중에서 개체 수가 가장 적은 종"이라고 <뉴스펭귄>에 27일 말했다.

백용해 원장은 갯게가 서식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해 "담수가 흘러드는 기수역이 있어야 하며 해수의 영향을 벗어난 부분에 서식굴을 확보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먹이는 곤충, 개구리, 육수지렁이 등으로 갯벌생물보다는 육상생물에 의존한다"라며 "번식과 안정된 호흡을 위해 해수가 일정한 간격으로 공급되는 장소가 필요하다. 이런 장소는 1960~1970년대 근대화 과정에서 대부분 사라졌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에는 이 같은 환경이 있는 장소가 비교적 많았지만, 그렇다고 이 종이 흔하게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조간대 종에 비해 개체 수가 많지 않은 종이다. 서식 환경이 대부분 사라진 현시점에서는 전국의 기수역이 남아있는 몇 곳에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7월 12일 거제사곡만에서 발견된 갯게 (사진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뉴스펭귄
7월 12일 거제사곡만에서 발견된 갯게 (사진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뉴스펭귄

경남 거제시에 위치한 거제사곡만도 갯게가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보전돼있는 주요 서식지 중 한 곳이다.

하지만 최근 갯게 서식지를 포함한 거제사곡만 약 100만평 일대를 모두 매립해 '거제 해양플랜트 국가산업단지'를 설립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거제 해양플랜트 국가산업단지 예상 위치도 (사진 거제시)/뉴스펭귄
거제 해양플랜트 국가산업단지 예상 위치도 (사진 거제시)/뉴스펭귄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경남은행 등이 환경영향평가 협의 만료일인 이달 17일 전에 개발 승인을 받기 위해 속력을 냈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앞서 5년 전에 이뤄진 환경영향평가에서는 갯게와 달랑게가 서식한다는 사실이 포함되지 않았다. 최근까지 거제사곡만에서 서식하는 법정보호종은 수달, 기수갈고둥 등 30여 종으로 파악되고 있다.

거제사곡만에 서식하는 달랑게, 기수갈고둥 (사진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 조은비 기자)/뉴스펭귄
거제사곡만에 서식하는 달랑게, 기수갈고둥 (사진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 조은비 기자)/뉴스펭귄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 측은 추가적인 해양플랜트산업단지 설립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 다양한 생물이 살아가는 환경만 파괴하는 무리한 투자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은 하동갈사만 해양플랜트산단 투자 실패로 하동군과 770억 원 반환 소송을 하고 있고, 지난해 적자는 1조7000억원, 올해 상반기 부채비율은 547%에 달한다. 외부의 강압이 있지 않았다면, 투자의향서를 자출한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

삼성중공업에 대해서는 이미 7만평 매립승인을 받고 그곳에 착공조차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추가적인 매립지가 필요해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원종태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말이 안 된다. 사업성도 없고 사업할 주체도 없고 천문학적인 비용을 감당할 업체도 없다"라며 "또 해양플랜트산업은 심해에서 석유를 채취하는 사업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맞지 않는 사업"이라고 말했다.

매립 계획에 포함됐던 거제 사곡해수욕장 전경 (사진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뉴스펭귄
매립 계획에 포함됐던 거제 사곡해수욕장 전경 (사진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뉴스펭귄

원종태 사무국장은 "환경영향평가를 할지 안 할지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여기서 사업을 하려면 이제 새롭게 환경영향평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환경영향평가는 바로 되는 게 아니고 최소한 2년 정도가 걸린다. 우리는 2년 정도를 벌은 셈이 된다"라고 말했다.

이어 "만약 환경영향평가에서 갯게 서식이 확인돼도 대체서식지로 이주하라고 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생태총량이 있기 때문에 100마리가 살고 있는 서식지에 다른 100마리를 이주시킨다고 해도 200마리가 되는 게 아니라 100마리만 남을 뿐이다. 서식지가 늘어나지 않는 이상은 그렇다"라고 설명했다.

백용해 원장은 "생태학적으로 보면 대체서식지는 억지주장에 불과하다. 자연의 이치상 해당 종이 서식하지 않은 지역은 어떤 이유에서든 서식 환경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체서식지를 인간의 관점에서 잘 관리해 이전한다고 하더라도 해당 종이 새로운 서식환경에 안착하기는 쉽지 않다"라며 "대체서식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해당 종의 서식 환경 조사가 선행돼야 하고, 상당기간 적응기간을 갖고 진행해야 한다"고 짚었다.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은 그동안 갯게 보호를 위해 해변청소를 수차례 진행하고, 카카오같이가치로 모금을 통해 갯게 서식 사실을 알리는 팻말을 설치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갯게와 기수갈고둥 서식 사실을 알리는 팻말 (사진 조은비 기자)/뉴스펭귄
갯게와 기수갈고둥 서식 사실을 알리는 팻말 (사진 조은비 기자)/뉴스펭귄

또 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서 진행하는 '이곳만은 꼭 지키자!' 공모전에 거제사곡만을 응모한 상태다. 환경 및 문화유산 전문가들의 심사를 거쳐 선정되면 보전 활동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네티즌 평가는 이달 31일까지 한국내셔널트러스트 공식 홈페이지에서 진행된다.

갯게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백용해 원장은 "갯게는 서식 환경이 까다로운 종이므로 서식지를 파괴하지 않아야 한다. 갯게 서식지는 자연해안이어야 하는데 이미 우리나라 연안의 약 80%는 인공해안으로 변해 있는 상황"이라며 "기수환경을 복원하고 인공해안을 자연해안으로 바꾼다면 갯게 서식지가 점차 확대될 수도 있다"라고 전망했다.

또 그는 "갯게는 서식지도 협소하고 개체 수도 적지만, 개발을 하려는 입장에서는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목적 달성을 위해 과정상 필요한 조치를 취하면 그만이라고 여긴다. 이와 같은 인식을 전환하는 근본적인 인식증진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국가적 차원에서 대국민 인식증진을 위한 '해양보호생물을 위한 인식전환 프로그램'을 보다 적극적으로 보급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해양수산부는 국립해양생물자원관과 군산대학교 연구팀이 인공증식한 갯게를 남해 한려해상국립공원, 충남 서천 월호리 일대에 방류하는 등 복원 노력을 하고 있다.

뉴스펭귄의 새로운 기획시리즈 [우리 고장 멸종위기종]은 국내에 서식하는 주요 멸종위기종의 ‘현주소’를 알리는데 초점을 맞춘다.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받는 종이든, 그렇지 않든 사라져가고 있는 종들이 처한 위기상황을 주로 드러내는 것이 목표다. 우리 바로 곁에서 멸종위기종이 살고 있다는 사실과, 그 종을 보존하기 위해 우리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함께 고민하자는 취지다. 공존과 멸종은 관심이라는 한 단어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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