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늘린다는데… 사용후핵연료 어쩌나

  • 최나영 기자
  • 2022.07.25 09:30

'화장실 없는 아파트' 원전…
사용후핵연료 대책 40년째 '제자리걸음'

원전 (사진 IAEA)/뉴스펭귄
원전 (사진 IAEA)/뉴스펭귄

[뉴스펭귄 최나영 기자] 원전은 ‘화장실 없는 아파트’에 비유되곤 한다. 원전의 연료는 3~5년 동안 연소한 뒤 사용후 핵연료가 되는데, 이를 처리할 시설이 없기 때문이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고준위 방폐물)인 사용후 핵연료는 높은 독성을 지니고 있어 생태계에서 영구 격리해 보관해야 한다. 고준위 방폐물이 자연에 해가 없을 정도가 되려면 10만 년은 걸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원전 확대 정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가 크다. 이에 정부는 최근 고준위 방폐물 처리를 위한 기술개발 로드맵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기술을 개발해야 하는지에 대한 큰 그림을 제시한 것일 뿐 구체적인 대안이 명시된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영구처분장 없는 상태서 사용후핵연료 계속 쌓여가…
임시저장 중인 공간마저 포화 ‘임박’

뉴스펭귄 기자들은 기후위기와 그로 인한 멸종위기를 막기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정기후원으로 뉴스펭귄 기자들에게 힘을 실어 주세요. 이 기사 후원하기

윤석열 정부는 에너지 정책의 핵심으로 원전 확대를 제시했다. 가동 원전 수를 현재 24기에서 2030년 18기로 줄이기로 한 당초 계획을 수정해, 28기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윤 정부 계획이 실현되면 2030년 원전 비중은 30% 이상으로 확대된다. 당초 정부는 2030년 원전 비중을 23.9%로 낮추기로 했다. 지난해 기준 원전 발전 비중은 27.4%였다.

문제는 고준위 방폐물을 영구처리할 시설은 없다는 점이다. 국내에는 경주에 중‧저준위 방폐물을 처분장만 있다. 이에 정부는 현재 고준위 방폐물을 원전 부지 안에 임시저장하고 있지만 임시 저장공간의 포화 시점도 임박한 상황이다. 실제 지난해 12월 월성원전의 사용후핵연료 저장률은 98.8%에 달했다. 지난 3월 월성원전의 임시저장시설(맥스터 7기)을 추가 건설해 2029년까지는 사용후핵연료 등을 저장할 수 있게 됐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고리‧신고리와 한빛원전은 2031년, 한울원전은 2032년, 신월성은 2044년, 새울원전은 2066년에 각각 임시저장시설이 포화될 예정이다. 새 정부가 원전가동률을 높이면 포화 시기는 더 앞당겨질 것으로 보인다.

 

원전 본부별 예상 포화시점 (표 산업통상자원부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 갈무리) /뉴스펭귄
원전 본부별 예상 포화시점 (표 산업통상자원부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 갈무리) /뉴스펭귄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장 지금 마련해도 늦어

사용후핵연료 처분장 확보는 여전히 요원한 상황이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통해 부지 선정 절차 착수 이후 37년 안에 영구처분시설을 확보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하지만 임시저장시설 포화 예정 시점을 고려하면 목표대로 짓는다고 해도 이미 많이 늦은 상황이다.

부지 확보도 넘어야 할 산이다. 앞서 정부는 1980년대부터 사용후핵연료 처리시설 부지 선정을 추진했지만 지역 주민의 반발로 매번 무산됐다. 현재도 기본계획상 사용후핵연료 한시 저장 지역으로 거론되는 곳의 주민 반발이 거센 상황이다. 기본계획에는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시설을 마련하기 전까지 사용후핵연료를 해당 원전 부지에 한시적으로 저장한다’는 내용이 명시됐다.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은 지난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40년 동안 마련하지 못한 영구처분시설 부지를 언제 지을지 불투명하다”며 “이는 원전 지역이 핵폐기장화된다는 것을 뜻한다”며 항의했다. 이들은 “원전 가동으로 개인의 생명과 안전을 40년 동안 위협받으며 살아온 지역에 더 이상 무한희생을 강요하지 마라”며 기본계획 철회를 촉구했다.

 

정부 발표 로드맵, 향후 개발할 기술 항목 제시한 수준
환경단체 “영구처분시설, 기존 발생 방폐물 처분 목적으로만 마련돼야”

정부는 기본계획에 따른 기술개발 후속 조치도 최근 내놨다. 산업부가 지난 20일 발표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연구‧개발(R&D) 로드맵’이다. 하지만 이 또한 개발해야 할 항목이 몇 가지 있는지 등 큰 그림만 제시된 수준이다. 이 로드맵에는 운반‧저장‧부지‧처분 부문 104개 요소기술과 343개 세부기술을 확보한다는 목표가 담겨 있다. 로드맵에 따르면 104개 요소기술 중 22개는 국내 기술로 확보한 상태다. 다른 49개는 개발 중이다. 나머지 33개는 개발이 필요한 상황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2060년까지 1조4000억원을 투입할 방침이다.

송주희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는 “로드맵이 나왔다는 것이 ‘사용후핵연료 처분 문제를 해결할 기술을 찾았다’는 의미가 아니다”라며 “정부는 수명연장으로 훨씬 많아질 사용후핵연료를 로드맵에 나온 기술을 개발하면 다 끌어안을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답도 찾지 못한 상태”라고 비판했다.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이 지난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원전 부지 내 저장 반대'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 / 뉴스펭귄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이 지난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원전 부지 내 저장 반대'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 / 뉴스펭귄

영구처분시설이 마련된다 해도 위험성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부지확보에 어려움도 있는 만큼, 영구처분 기술개발이 이뤄지면 지금까지 발생한 사용후핵연료 처분을 위한 용도로만 활용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임성희 녹색연합 활동가는 “정부가 기술을 통해 안전성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지만 사실 신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고준위 방사능폐기물은 10만 년 이상 보관해야 하는 독성 폐기물인데 그걸 보관한다고 해서 그대로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우려했다.

임 활동가는 “보관 용기는 부식 등의 문제는 없는지, 방폐물을 보관하는 지반은 안전한지 등의 문제 때문에 지금까지도 고준위 방사능폐기물 처분 부지를 마련하고자 했지만 해결하지 못했다”며 “더 이상 핵폐기물을 발생시키지 않는 것을 전제로 기존에 발생시켜 온 사용후핵연료를 처분하기 위한 장소와 기술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스펭귄은 기후위험에 맞서 정의로운 해결책을 모색하는데 초점을 맞춘 국내 유일의 기후뉴스입니다. 젊고 패기 넘치는 기후저널리스트들이 기후위기, 지구가열화, 멸종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분투하고 있으며, 그 공로로 다수의 언론상을 수상했습니다.

뉴스펭귄은 억만장자 소유주가 없습니다. 상업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일체의 간섭이 없기 때문에 어떠한 금전적 이익이나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리의 뉴스에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뉴스펭귄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여러분의 후원을 밑거름으로, 게으르고 미적대는 정치권에 압력을 가하고 기업체들이 기후노력에 투자를 확대하도록 자극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적은 금액이라도 여러분의 소중한 후원은 기후위험으로부터 우리를 지키는데 크게 쓰입니다.

뉴스펭귄을 후원해 주세요. 후원신청에는 1분도 걸리지 않으며 기후솔루션 독립언론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만듭니다.

감사합니다.

후원하러 가기
저작권자 © 뉴스펭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