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의 서재] 작은 것들을 위한 일기

  • 성은숙 기자
  • 2022.07.13 08:55
(그래픽 구민승)/뉴스펭귄
(그래픽 구민승)/뉴스펭귄

 

'불편하게 하고, 징그러워서'

[뉴스펭귄 성은숙 기자]  얼마 전 서울 서북부 지역과 경기도 고양시 일부 지역에 대규모 벌레떼가 출몰해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9~10mm의 검은색 몸통을 가진, 며칠간 짝짓기 하느라 암수가 함께 붙어 날아다니는 벌레 때문이다. 이 벌레는 털파리의 한 종류인 계피우간털파리(Plecia nearctica Hardy), 일명 사랑벌레(러브버그)다. 곤충 전문가들 뿐만 아니라 살충제를 뿌린 지자체조차도 한 목소리로 "해충이 아니다"고 말했지만, 이 벌레들은 수백 건의 민원 이후 지자체 방역에 스러져 갔다. 이같은 일은 1~2년 전에도 있었다. 당시 주인공은 '대벌레'였다. 그 때도 사람들은 서울  봉산, 경기도 수리산· 청계산 등 일대를 점령한 대벌레들을 없애버릴 방법을 찾았다. 대벌레가 나무를 고사시킬 가능성은 낮다는데도 산림병해충이나 돌발병해충으로 분류되어 죽임을 당했다. 사랑벌레와 대벌레는 같은 이유로 죽었다. '주민 불편을 초래하고, 미관상 좋지 않아서'. 

 

 

 

"그럴 권한이 없다"

(사진 성은숙 기자 및 마포구청, 은평구청, 경기도청, 군포시청 홈페이지 갈무리)/뉴스펭귄
(사진 성은숙 기자 및 마포구청, 은평구청, 경기도청, 군포시청 홈페이지 갈무리)/뉴스펭귄

이렇게 곤충은 사람의 기준에 따라 해충과 익충으로 나뉘다가 불편하게 하고 징그럽다는 이유로 대량살상되곤 한다. 아무리 많은 전문가들이 특정 곤충이 갑자기 많아진 이유로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위기 및 생태계파괴로 인한 종 다양성 감소 등을 꼽고, 무작정 살충제를 뿌리는 게 생태계에 더 위협적이라고 말해도 소용없다.

"그럼 너네 집에 데리고 가서 키워라"는 목소리가 훨씬 크게 울린다. 어찌됐든 전적으로 내 책임은 아닌 것 같은 기후위기나 살충제 위험성 얘기보단 당장 불편하고 징그러운 벌레가 사라지는 게 더 중요해 보이는 사람들의 아우성 틈으로  "지금 이 순간 이 땅에 존재하게 된 생명을 좌지우지할 권한은 인간에게 없다"고 외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마흔에 대학원에 입학해 국내 유일 거저리(딱정벌레목 거저리과의 곤충) 전문가이자 버섯살이 곤충 연구자로 우뚝 선 정부희 박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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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를 사랑하는 기분

(사진 unsplash)/뉴스펭귄
(사진 unsplash)/뉴스펭귄

정 박사는 이름 모를 곤충의 사생활을 알고 싶어 죽겠는 마음에 생물학과 대학원에 덜컥 입한한 일부터, 구형 코란도 화물칸에 간이 연구실을 차려놓고 채집과 논문 작업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했던 순간까지 열정 가득한 문장으로 전한다. 그는 '벌레를 봐도 징그럽거나 생경하거나 무섭지 않지만, 그렇다고 예쁘거나 감동적이지도 않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하지만, 곤충을 향한 그의 애정은 책 곳곳에 단단하게 박혀있다. 

정 박사는 숲에 죽어 쓰러진 나무를 환경미화나 안전을 이유로 말끔히 치워버리는 일은 썩은 나무에서 밥 먹고, 살고, 쉬는 수 많은 곤충들을 살상하는 일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쓰러진 나무를 삶터 삼아 사는 곤충들이 '어느 장작 숯불구이 식당에서, 어느 집의 화목 난로 속에서, 소각장에서 화장당하고 있다'면서 '침묵의 숲'이 되지 않도록 죽은 나무를 그저 내버려두라고 역설한다.

그는 온난화로 인한 부화율 증가, 무분별한 개발 및 살충제 살포로 인한 생태계 균형 파괴 등을 이유로 들면서 도대체 왜 대벌레를 죄다 없애야 하는지 묻는다. 조상 대대로 낮에만 노래하던 매미가 사람들이 만든 도시 불빛에 밤잠 없이 힘들게 울게 됐는데, 왜 애꿎은 매미를 원망하는지도 묻는다. 또 사람 때문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먼 곳에 외로이 상륙했지만, 그곳 사람들 탓에 이미 느슨해진 생태계의 틈을 잘 파고들어 무사히 정착한 외래 곤충은 도대체 왜 혐오하는지 묻기도 한다. 

정 박사는 곤충이 있어야 번식할 수 있는 식물의 입장에서도 곤충은 익충이나 해충이 아닌 그저 곤충일뿐이라고 말한다. 곤충은 남의 밥상을 탐내지 않고 자신의 주식인 먹이식물만 먹는데다 초식 곤충이 식물을 먹고, 상위 포식자가 그 곤충을 먹고, 새나 포유류가 그 포식자를 먹는 사슬이 건강한 생태계라는 것이다. 그는 "생태계에서는 다 제 역할이 있으니 '이 곤충은 이래서 있어야 하고, 저 곤충은 저래서 없애야 한다'는 논리는 사람의 논리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바라볼 것 그리고 행동할 것

(사진 unsplash)/뉴스펭귄
(사진 unsplash)/뉴스펭귄

정 박사는 우리에게 두 가지를 제안한다. 밖으로 나가 '곤충 멍'을 할 것, 회복 시스템이 고장난 자연 생태계를 위해 나설 것. 

우선 찾아오는 곤충이 많은 버드나무 앞에 서 있거나 땅에 앉아있길 권한다. "뜀박질하면 나 자신만 보이고, 뛰다가 걸으면 나무와 숲이 보이고, 걷다가 서면 자연의 대합창 소리가 들리고, 서 있다가 앉으면 작은 우주가 보인다"는 것이다. 곤충을 발견하면 되도록이면 휴대폰이 아닌 카메라로 사진 찍는 걸 추천한다. 맨 눈이 아닌 휴대용 돋보기로 살펴보는 것도 곤충과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이다. 초여름부터 가을까지 울려 퍼지는 곤충 소리에 귀 기울이고 메뚜기아목인지 여치아목인지 구분하다보면, 그 소리의 주인공을 오래오래 기억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그렇게 곤충을 온 몸으로 느끼다보면, 곤충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고 정 박사는 알려준다. 스스로 회복하는 능력이 있는 지구의 자연 환경 시스템이 고장난 탓이다. 지구가 점점 뜨거워지면서 북방성 곤충과 남방성 곤충의 운명은 갈렸다. 우리나라 곤충들의 사정도 마찬가진데, 온난화는 식물보다 곤충에게 더 치명적이라고 한다. 기후 변화에 그럭저럭 적응해 꽃을 피우는 식물과 달리 곤충은 적응이 느릴 수 있단다.

정 박사는 이렇게 식물의 시간과 곤충의 시간이 어긋나는 그 순간이 악순환의 시작이라고 설명한다. 기후 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된 어느 토종 곤충의 빈 자리를 생존력 강한 소수의 외래종이 지나치게 크게 차지하게 되면, 생태계 균형이 파괴되기 때문이다. 정 박사는 이 모든 일의 중심에 인간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다시 묻는다. 인간 때문에 생긴 악순환이라면 "지구의 생명을 살리는 일은 어쩌면 인간의 손에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그래픽 구민승)/뉴스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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